생명은 어릴수록 귀엽고 아름답다
어린이는 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
어린이는 미(美)의 극치요 아름다움의 정상이다
어린이의 맑은 눈동자는 수정처럼 아름답다
어린이의 고사리 같은 손은 볼수록 귀엽다
어린이의 부드러운 피부를 보라, 희고 연하고 따뜻하고 보드랍다
어린이가 평화스럽게 잠자는 모습은 흡사 어린 천사와 같다
어린이의 맑은 웃음 속에는 아름다운 천국의 표정이 있다
눈에 넣어도 조금도 아플 것 같지 않은 그 귀여운 모습.
소꿉장난에 일심분란(一心不亂)으로 열중하는 어린이의 정열,
자유자재로 상상화를 그리는 어린이의 분방한 천재성,
어린이는 분명히 신(神)의 귀여운 자녀다
세상에 동안(童顔)처럼 좋은 얼굴이 없다
동안은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어린이는 아직 더러운 때가 묻지 않았고
죄와 악의 어두운 그림자가 끼지 않았다
천진난만은 어린이의 덕(德)이요
순수무구(純粹無垢)는 어린이의 자랑이다
안 병 욱 - 어린이 예찬中
지금이야말로 어린이 같은 마음에서 어제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적기라고 보인다
5월 하면,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은 1923년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하는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정해졌다. 그 취지는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우리 모두가 보호하고 배려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린이가 따뜻한 사랑 속에서 독립된 인격체로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또한 불우한 어린이도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위로하자는 것이다. 어린이는 대개 4, 5세부터 초등학생인 13세까지의 아이를 말한다. 이런 어린이를 두고 예찬하고 소중함을 강조하는 말들이 많다. 방정환은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결코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묘비명에는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안병욱 교수는 “어린이는 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하면서 미의 극치이고 아름다움의 정상이라고 설파했다. 괴테는 그의 저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나의 마음에 가장 친근한 것은 어린아이들이다. 우리와 동등한 그들, 우리의 스승으로 존경하여야 할 그들을 오히려 우리는 아랫사람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낭만파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그의 시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읊었다. 잠시 눈을 감고 이 시를 다시금 음미해본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노라면/ 내 가슴 벅차오르노니/ 삶의 유년기에도 그러하였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나 늙어서도 필시 그러하리/ 그리 아니하면 차라리 죽음이 낫겠소/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삶의 나날들이 자연의 거룩함과 꼭 함께하길” 어린이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다. 순진무구함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움이 가장 돋보인다. 어린이는 생명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에 늘 새로움으로 웃고 말하고 움직인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어린이의 특징도 나이 듦에 따라 여러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흔히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고 노년기에 접어들면 가슴이 벙벙해지고 아쉬움을 많이 안게 된다. 따라서 노년기는 청년기를 되살렸으면 하고 유년기를 그리워하면서 눈시울을 적실 때가 많아지는 시기다. 이때 우리는 미국의 시인 사무엘 얼먼의 시 ‘젊음’을 접하고 많은 위로를 받는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요, 마음의 상태이다/ 장밋빛 볼과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의지와 풍부한 상상력과 활기찬 감정에 달려 있다” 그는 우리가 단지 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것이 아니고 이상을 버릴 때 늙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우리는 늘 삶의 출발선에 서 있다. 낡은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어제에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삶에서 희망과 활기, 용기와 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실히 느껴야만 한다. 희망이란 무엇일까. 저기 하늘에 걸려 미소 짓는 무지개이다. 어린이들은 빗속에서도 저 무지개를 따라간다.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뛸 때 희망이 솟는다. 우리 안의 희망의 소리가들리지 않으면 어린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자. 그러면 희망이 꿈틀거리며 피어오르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희망이 곧 축복이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 서문에서 “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다. 그러나 이를 기억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어린이와 같은 특징을 상실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지 못함을 경계한 말로 여겨진다.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정신세계는 변화를 거듭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변화를 세 단계로 요약하였다. 처음은 낙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자신의 사막을 걷는다. 그 다음은 사자로 변한다. 자유를 구가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그리고 아이가 된다. 해야 한다는 규칙에서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바를 추구한다. 요컨대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가 자유로움과 새로움으로 자신의 세계를 그려나가듯이 말이다. 불교에서도 어린이를 ‘천진불’이라고 부르며 진리의 접근 과정에 동자승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화엄경의 선재동자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선재동자는 많은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청하고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이 말은 어린이가 진리의 문을 두드리는데 적임자라는 것이다. 어찌 어린이와 같지 않겠는가. 또한 노자는 ‘도덕경’에서 갓난아이가 도를 상징한다면서 도를 따르는 것은 갓난아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갓난아이가 무위로 기를 잘 보존하며, 순수하고 부드러워서 완전한 조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5월의 신록, 이것은 분명코 생명력이 활기차게 꾸밈없이 샘솟는 어린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이 얼마나 큰 창조적인 분위기인가. 지금이야말로 어린이 같은 마음에서 어제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적기라고 보인다.
·이수오 창원대학교 前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