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
최아영
빽빽하게 들어앉은 신발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걸 맞는 신발을 고르려 하니 영 마뜩찮다. 내 키가 보통사람에 비해 좀 작은 편인지라 키가 커 보이는 신발이 필요해서다.
한두 켤레 정도는 있을 법도 하건만 얼른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굽 높은 신발이 당장 필요한데 어쩌나 싶다. 있긴 하나 구지레하다. 구두 밑창이 폭염 속 강아지 혓바닥처럼 휘늘어져 있는가 하면 어디서 심하게 고꾸라지기라도 했는지 신발 코에 상처가 심하게 나있다. 난감하다.
이 삼십대였을 때는 짜리몽땅한 키를 보완해 주는 높은 굽을 주로 선호했다. 도심 속 우뚝 솟은 빌딩처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신발을 신고 거리에 나서면 내가 더없이 멋져 보였다. 게다가 키와 비례하여 자신감이 쑥쑥 솟아올랐다. 사십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낮은 신발이 편하고 좋아졌다. 그때만 하여도 무슨 일이든 척척 자신감이 넘치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콤플렉스였던 작은 키를 굳이 감추려 들지는 않았다. 자신감과 열등감 그리고 신발 굽의 높이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뻣뻣하던 귀도 말랑해진다는 이순(耳順)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이쯤 되고 보니 굽 높이뿐만 아니라 더 낮추고 더 비우고 좀 더 숙이고 해야 할 무엇인가가 분명 있을 법 하다. 택배가 도착했다. 며칠 전 주문해 두었던 높이가 7센티나 되는 앵글부츠다. 여태껏 나지막한 신발을 불편함 하나 없이 잘 신고 다녔는데 무슨 일일까. 갑자기 높은 신발이 내게 왜 필요했던 것일까.
일상에서 옷매무시 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 직업에 맞게 또는 외출의 성격에 맞는 옷을 선택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에도 세심할 필요가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무시의 완성은 역시 신발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빼어난 차림새라 하더라도 신발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거나 또는 의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면 전체가 다 망가져버리기 쉽다. 가령 우아한 한복을 입고 나비 걸음을 할 때 마다 뾰족하고 번득거리는 하이힐이 치마 폭 사이사이로 보인다든지 날렵하고 세련된 정장슈트 차림이지만 붉은 벽돌 같이 뭉툭한 통굽으로 된 신발을 신는다든지 하는 경우일 것이다.
얼마 전이었다. 충북 청주시의 ‘문화 공간 우리’라는 곳에서 내가 속해 있는 무심 수필 문학회 회원 중 한 분의 북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패널로 참석한 어느 작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깔끔한 정장 슈트 차림에 과하지 않은 메이크업 그리고 단아한 헤어스타일이 나의 관심을 훅 끌어당겼다. 무엇보다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울의 인자를 깡그리 녹여버릴 것만 같은 그 분의 온화한 미소였다. 그 미소의 근원을 발견한 나는 그만 ‘심쿵’ 하였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낮은 그분의 신발 굽이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 무엇보다도 평온하였으며 심지어 겸손해 보이기까지 했다. 굽이 겸손해 보이는 것도 겸손한 굽을 보는 것도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선한 충격이다.
신발 굽의 속성이 모성과도 닮아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굽은 주인의 무게를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먼지투성이 땅이거나 질척한 땅이라 해서 거부하지도 않는다. 제 살이 닳고 닳아도 구두코에 달랑 올라앉은 장밋빛 리본을 행여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굽은 속내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은은하면서도 반짝반짝 수정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그 작가님의 구두 코 위로 근간의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나는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 타향에서 자발적 이방인이 되다시피 한 나의 삶은 참으로 쓸쓸했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는 무엇을 끊임없이 지껄이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문학 하는 사람이 좋았고 문학 활동이 활발한 곳이 좋아보였다. 다양하고 폭 넓은 문학세계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정작 내가 갈망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말동무였다. 소통하고 지낼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활동적인 성향의 나였음에도 정작 공감대를 형성하여 소통하기에는 나의 반경이 협소하여 숨이 막혀왔다. 답답했다. 그래서였다. 뭉그적거리고 있던 둥지를 털고 일어나 보다 넓은 세상에서 보다 멀리 보는 삶을 선택했지만 아직은 좌불안석인 내 모습이 그 분의 구두 끝에 안쓰럽게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막 도착한 새 신발을 신고 실내를 왔다 갔다 해 보았다. 후들거리고 삐거덕거린다. 그럼에도 한 동안 신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높은 굽이 필요했던 거였구나. 낯선 곳, 광활한 곳에서 미성숙 된 날갯짓을 해보려하니 긴장감에 자신감마저 떨어졌던 것이다. 설상가상 여태 보지 못했던 제 깜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 했으니 어찌 주눅이 들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욱 졸아들었을 것이다. 당분간 굽이 높은 신발을 고수할 참이다. 약간의 불편함이 뒤따르겠지만 머지않아 안정된 굽의 신발을 신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낮추고 비우고 숙여야 할 이즈음에 된바람 맞은 내 영혼을 응시할 차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마음의 굽 하나 둘 쯤은 어느 한 곳에 새겨 놓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富)가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하다못해 그것이 외양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포함한 대개의 사람들이 자칫 잊고 사는 것이 하나 있다. 어렵고 힘들게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영혼의 굽 말이다. 그 굽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거침없이 추락하는 영혼들을 간간이 보아온 터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내 안의 굽을 잘 다스려야 하는 이유다.
이참에 새로 산 신발의 굽이 너무 모나지 않게 고루 잘 닳아 진중한 걸음걸이로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족적(足跡)이 될 그날이 내게로 오고 있는 걸까.
첫댓글 구두 굽이라는 일상에서 영혼의 굽이라는 철학적 해석을 이끌어낸 수필적 상상이 돋보입니다.
수필이 신변 잡사가 아니라 신변과 체험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잘 살려내서
앞으로 수필문단의 문학성을 단단하게 지켜 줄 크게 기대되는 작가라 생각하여 추천합니다.
인문학이란, 실천하는 문학이라면 수필은 삶 자체라고 배웠습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않고 실천하는 삶, 마음을 닦는 수필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보잘것 없고 위태로웠던 저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충북수필 사랑합니다^^
굽은 그 사람의 마음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굽과 편한 안식처 같은 굽.
나를 지탱하는 마음의 굽도 잘 다스려야겠지요.
조금은 진중하게.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굽 높이도 맞추어 나가야지요.
잘 읽었습니다.
김순옥 선생님~고맙습니다.
한동안 뵙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자주 뵙게되길 희망합니다^^
영혼의 굽이라...
이방주 선생님께서 "신변과 체험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쓴다."라고
저번에 추천을 하셨는데 역시나 무서운 신인입니다.
환영하면서 대작을 기대합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난다신 선생님~~ 신난다에서 따온 닉네임이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하신 표현이 저를 더욱 채찍질을 합니다.ㅎ 과하신 댓글에 저도 넘치는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등단 작품이 아주 좋으네요.
앞으로 열심히 작품활동하셔서 충북수필을 빛내주세요.
네~~우리 무심수필문학회 회장님~~ㅎ 모두가 덕택입니다. 늘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가 매일 착용하는 신발에서 굽이라는 대상을 발견하였군요.
글을 읽으며 사람의 굽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등단을 축하하며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하겠습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최아영 선생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아름다운 족적이 될 그날은 벌써 와있는 것 같습니다. 등단을 계기로 수필문학의 큰별로 빛나시길 바랍니다.
격려해 주심에 고맙습니다~로라선생님^^
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으로 뽑힐만한 작품입니다. 모지인 수필과비평과
충북수필문학회를 통해 승승장구하는 문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아영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어서 부터 허리가 안 좋았는지 하이힐을 신어본적은 없습니다.
옷은 그런대로 입으면서 늘 폼 없는 편한 신발만 선호하다보니
멋진 구두를 사다놓고 눈요기만 했던 기억이 나서 웃음이 나오네요
신인의 글인라 할 수 없는 체험에 철학적 사유에 감성까지
겸비한 훌륭한 작품 감상 잘 했습니다
과한 칭찬에 ~~감사합니다~~수행하는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최아영 선생님, 이방주 선생님이 칭찬하시던 말씀이 과언이 아니었네요. 사물을 대하는 남다른 시선이 돋보이는 수필이네요. 신발 굽에 인생을 녹여내는 선생님의 잔잔한 음성 잘 들었습니다.
말씀이 비교적 없으시던가요? 박종희선생님 모 행사장에서~~멀리서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영혼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최아영 선생님,글로 먼저 인사하게 되네요.범상치 않은 글 솜씨이시군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이웨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