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회 사이펀문학상
진학 / 김정수
어린 시의 손을 잡고 외출했어
구름이 측백나무 가지에 내려온
궂은날이었지
종일 집에서 칭얼대던 어린 시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림책처럼 쫑알거렸어
학교 운동장은 질척거렸지
소금쟁이의 물웅덩이엔
하늘이 거꾸로 처박혀 사부작거렸지
어린 시가 물을 첨벙 밟아대자
구름과 하늘이 사라지고
옷이 젖고
몸이 젖고
웃음도 젖을 만큼
마음껏 놀고 나니
양껏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온통 흙탕물
몰골이 봐줄만 했어
길을 되짚어
무용담처럼 웃으며 귀가했는데
한바탕 혼이 났지
세탁기의 세상이 깨끗해지는 동안
욕조에 들어가 구석구석 씻겨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자
해맑은 시가 훌쩍 커 있는 거야
이제 학교에 보내도 될 것 같아
-----------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주관하는 「제9회 사이펀문학상」 수상자로 김정수 시인을 선정합니다. 수상작은 31호(2023년 겨울호)에 발표된 「진학」이라는 시입니다. 강은교 심사위원은 “시 진학은 다른 시인들의 시보다 수사적 화려함은 없었지만 은유에 의한 상큼한 이미지의 부드러움이 눈길을 끌었”으며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시인은 너무도 편안한 느낌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사유적 깊이가 남다르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제8회 사이펀문학상 / 최휘웅
조깅 / 최휘웅
새벽 4시 10분.
이곳의 여름은 해변의 바람을 부른다. 간밤의 꿈을 털어냈다. 별자리는 더 이상 우리의 이정표가 아니다. 별 없는 창밖. 하늘의 눈썹도 보이지 않는다. 발을 떼는 순간부터 허공이다. 우리는 땅에 기대어 허공으로 직립한다. 허공을 떠도는 기호들이 자기 공명의 영상을 만든다.
4시 30분. 간편 복장.
어둠이 깔려 있는 거리. 아직 죽지 않은 불빛. 지붕 위의 여자와 사다리를 타는 남자의 위험한 곡예가 잠든 밤. 이월된 문자의 홍수, 헛간의 구호가 폰을 덮고 있다. 볼세비키 혁명은 벌써 오래전에 죽었는데 흑백 이념의 광기는 서로 여전히 새벽이 오면 닭이 울 것이라고 믿는다. 빨간 색이 푸른 등을 밟고 있다. 푸른색이 붉은 가슴을 누른다.
지금 도시는 울어줄 닭이 없다
영하의 진열장에 알몸으로 누워서 절대 울지 않는다.
걷는다. 걸을 때마다 머리가 투명해진다. 운동화 끝을 눈이 따라간다. 바다를 끼고 가는 길 위에 내가 있다. 바다에 한 발 더 다가왔다고 생각했지만 바다는 늘 멀리 있다. 늘 바다를 보고 있지만 바다는 늘 낯선 행성 어느 지점.
바다 위에 뜬 부표는 검은 과거, 흔들리는 미래.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현재다. 바다와 겉돌며 걷기를 한다. 바다와 함께 걷고 있다고 착각한다.
5시 10분.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뛰는 강아지도 있다. 강아지 목줄에 매달리어 가고 있는 여자. 가로등이 고개를 숙이고, 수상
한 해바라기. 접시꽃이 덩달아 낯을 붉히는 시간.
과거와 현재가 머릿속에서 나란히. 미래도 잠깐 잠깐 나타났다 지워진다. 등과 앞이 시야에 동시에 들어온다. 많은 내가 나의 영역 밖에서 달린다.
정확하게, 그때 저 멀리 그녀가 나타났다. 다리를 다 들어낸, 순식간에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숨 가쁜 숨소리를 들은 것 같다. 어제도 그제도 그 시간에 그렇게 지나갔다. 앞에서 와서 뒤로 사라진다. 나는 늘 그녀를 기억에서 24시간 까맣게 비운다. 그러나 마주치는 순간 아, 탄성을 목 뒤로 넘김. 양 뒤에 숨은 철의 얼굴 가죽이 지나간다. 그 뒤에 내가 있다. 아니 앞을 보였다가 금방 등을 오랫동안 남긴다.
5시 30분. 뒤에서 달려온 청년이 앞지른다.
경쟁을 한 것도 아닌데 숨이 가빠짐. 자꾸 뒤처지는, 유쾌하지 않은 나이를 곱씹으며 반환점을 도는데 해가 반, 반의 원을 내민다, 수평선이 환해지고 있다. 물색 환한 종교가 떴다. 종교는 엄숙하다. 작은 배 한 척이 수평선 끝에서 받들고 있다 나도 언제부턴가 신을 찾고 있었다. 간절한 기도가 저 배 밑에 있다.
죽음을 강탈당한 자가 죽음을 짐 지고 달린다. 골절된 생이 세월의 끝을 당긴다. 죽음이 생을 끌고 간다. 죽음은 생의 구경究竟이다. 드디어 우주의 어두운 내공內空으로 뛰어든다. 꽃 곁에 누워 허공을 보니 허공 또한 나비의 천국이네. 천상의 소리가 내 귀를 덮는다.
나는 난로가 없다.
난로와 함께 한 시간이 없다.
내 곁에는 네가 없다.
너와 함께한 시간도 없다.
고로 나는 비의를 상실한 빈 우주다.
해를 두 손으로 받는 순간, 기억의 울대를 치고 올라온, 멍든 누이의 사과가 공중에 떴다. 귀에 누이의 울음이 벽을 치기 시작했다. 파도는 그렇게 먹먹하다. 먹먹한 산의 능선도 보였다. 기억은 부재하는 현재의 연속. 기억은 현재를 계속 삼키고 있다. 저 멀리 소나무 몇 그루가 걸어온다. 그리고 지나갔다. 과거의 귀퉁이에 둥지를 튼다.
5시 50분 웬 중년이 황급히 내 앞에서 몸을 돌려 달려간다.
무엇을 놓치고 온 것일까 해를 등지고 가는 뒤 꼭지에 안개 한 가닥 서렸다. 안개에 갇힌 눈, 잃어버린, 허전한 빈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다. 곱셈에서 제로는 영원한 제로다. 아무리 곱하고 곱해도 제로다. 나는 제로 지점에서 곱셈을 열심히 하고 있다.
여명의 숨소리에 귀를 바짝 대고, 나는 수평선 이쪽에 있지만 늘 저쪽에 빨대를 대고 있다. 빨대는 물 한 모금 건지지 못한다. 수평선 저쪽에는 육중한 코끼리가. 꿈만 먹고 사는 사슴도, 아니 악마의 수염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평선은 언제쯤 이 막막함을 내려놓을지 모르겠다. 흰 이가 밀려온다. 무게 중심이 자꾸 한쪽으로 기운다.
6시 30분. 시인의 방,
그 시간, 그 문을 통과하는 중.
시는 연필 깎을 준비운동만 한다.
발음하지 못한 음계가 목에 걸려 있다.
동창이 밝았는데 노고지리는 울지 않는다. 그래도 시 한 줄 눈 뜨기를 기다린다. 창을 열었다. 바다 건너서 아침이 들어왔다. 몸과 분리된 빛 뒤에 바다가 있다. 8월이 발정하기 직전이다. 뚜껑 열린 하루가 또 시작한다. 견자의 몫을 위하여 하루는 저승 문턱까지 가서 싸늘한 저녁상을 차릴 것이다.
무명無明의 시간,
시는? 글쎄.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 사실 시는 없다. 그것을 나는 매일 인정하지 않는다. 시를 죽이는 언어의 광기가 시라고 착각한다. 원본을 상실한 이미지들이 떠도는 노트 북. 자판을 두드리며 시가 발화하기를 기다리지만 거기에 꽃은 없다. 꿈꾸는 자 자멸하리라. 무지개는 서산을 넘는 순간 없었던 것이 된다.
[수상소감] 몽상가의 시 쓰기
2023년 10월 23일 조깅을 하고 막 돌아온 이른 아침, 배재경 시인으로부터 올해 사이펀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물상들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창밖 바다를 한참동안 바라봤습니다. 병풍처럼 세워진 수평선 끝에 가물가물 내 작은 조어등 하나 떴다는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시의 꿈을 키웠던 20대부터 계산하면 50년이 넘는 시 인생인데, 이제 그 허무의 절정에서 시업의 끝을 보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왠지 허전함으로 가득해지는 요즈음입니다. 내 나이 또래가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겠습니다만은 유독 저는 가슴앓이가 심한 편입니다. 이때 사이펀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가슴앓이를 달래 줄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옵니다. 제 시 인생에서 아직 희망이 조금은 남아 있다는 격려로 다시 눈을 뜨게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몽상적 시 쓰기로 일관해왔던 것 같습니다. 제 삶은 활달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직장과 집 사
이를 오가며 나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퇴직 이후의 삶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시 쓰기는 그때그때, 내 안에서 명멸하는 의식의 지평을 열어 보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방심의 상태에서 무의식에 잠복되었다 돌출하는 이미지들을 자동기술하기도 하고, 나만의 상상의 세계를 시로 형상화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저는 비가시적 세계를 가시화하는 작업이 시 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현실 너머를 꿈꾸는 일이고, 현실을 초월하는 일이며, 죽음의 미래를 예감하는 일입니다. 시 「조깅」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순간, 순간 스치고 가는 의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 꿈, 좌절, 절망 같은 심리적 기재들이 작동하는 몽상가의 정신세계가 있습니다.
올해 저에게 주어지는 사이펀 문학상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의 석양을 바라보며 시업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는 시점. 이때 주어지는 상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시에 대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아직 시를 더 개척할 여력을 확인시켜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심사평] 산책자의 눈에 비친, 생의 성찰이 꼼꼼히 직조된 시
예심을 통해 필자에게 넘어온 작품은 총 10명의 20편이었다. 본심에서는 작년, 2022년 ‘사이펀’ 겨울호부터 2023년 ‘가을호’까지 1년 동안 ‘사이펀’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해서 뽑은 우수작들이었다.
심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체적인 평가로는, 예선을 통과한 작품들이라 주제가 분명하고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유가 깊고 자유로운 상상으로 쓴, 매력적인 작품들이 보여, 그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시집이 아닌, 작품 두편 만으로 시인의 시 세계를 평가해야만 한다는 한계점도 분명 있었다.
몇 해에 걸쳐 지금까지 ‘사이펀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비록 부산에 자리한 ‘사이펀 문학상’이지만, 수상자들은 한국의 시단에 튼튼한 중견들로 성장하면서 활동하고 있어, ‘사이펀 문학상’에 대한 위상이 앞으로도 점점 더 높아지리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
2023년도 ‘사이펀 문학상’ 본심, 심사 대상에 오른 작품으로는, 정우영의 「너머의 세계」 외 1편, 배주열의 「단음절」 외 1편, 최휘웅의 「조깅」 외 1편, 이성수의 「사과를 깍다가」 외 1편, 이재연의 「밤하늘에 너를 놓고 지나갑니다」 외 1편, 유기택의 「가을비 내리는 정경」 외 1편, 김전한의 「찰나」 외 1편, 김려의 「정부는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 외 1편, 이어진의 「성냥팔이 소녀」 외 1편, 이동엽의 「잠에서는 장미가 이름을 붉히고」 등이었다.
고심 끝에 어렵게 심사를 끝냈다. 2023년 제8회 ‘사이펀 문학상’에, 최휘웅 시인의 시, 「조깅」을 선정했다. 최휘웅 시인은, 개성있는 자신의 시 세계를 꾸준히 유지해 오면서, 시단의 어떤 유행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뚝심 있게 지켜온 중진 시인이다. 시인은 소소한 삶의 기미들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시에 적극적으로 들여오면서 시인의 세계를 크게 확장시키고 있고, 사유가 깊어져 있음을 시 ‘조깅’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한 편의 짧은 영화 같은, 수필 같은 산문시다, 꼼꼼히 잘 직조된 수작이다.
시는, “새벽 4시 10분”으로.... 시작한다. 별 없는 창밖, 발을 떼는 순간부터 허공이다. 허공 같은 현실이다. 우리는 땅에 기대어 허공에 직립한다. 걸을 때마다 머리가 투명해진다.(......생략)
시, 「조깅」은 단순한 산책의 시가 아니다. 시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평이해 보이는 문장 같지만, 평이하지 않다. 직관이 빛나는 사유의 시다. 다양한 삶의 이미지들이 연쇄되면서 물 흐르듯, 독자들을 다른 풍경 속으로 옮겨 놓는다. 자유로운 상상의 흐름도 매혹적이다.
시인의 정진을 바라며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 김성춘, 배재경 시인, 원무현 시인, 정훈 문학평론가
제7회 사이펀문학상 / 노태맹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에 당신의 어린양이 / 노태맹
- 불의 레퀴엠 6
보소서! 금속의 뜨거운 화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졌나이다.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라 한들 무엇이 달라졌겠나이까? 꿈은 때때로 검은 재가 되기도 한다 한들 그것이 푸른 나무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나이까? 금속의 뜨거운 쇳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졌나이다. 기름 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 튀어 오르는 순간처럼, 그가 보았을 마지막 풍경이 날카롭게 우리의 심장을 찌르나이다.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라 한들 누가 그를 황홀이라 이름 하겠나이까? 우리의 노래는 노래가 되지 못하고, 통곡은 입술에서부터 불타오르나이다.
그를 우리 앞에 현현顯現케 해 주소서.
완벽하게 사라진 죽음을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니
그를 우리의 이 노래로 이별케 해 주소서.
그를 우리 앞에 현현顯現케 해 주소서.
불의 몫이 아닌 물과 공기의 몫만이라도 와서
그와 우리의 이 물노래로 이별하게 해 주소서.
오, 황금으로 들끓는 불멸의 꿈이여,
살과 뼈조차 다 녹여버리는 노동 없는 노동이여,
온 세상이 신전神殿인 무릎 꿇린 노동자여,
보소서!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 앞에서 우리는 물의 기억도 없이 소멸하고 있나이다. 이곳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이 불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있나이다. 금속의 뜨거운 화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지고, 우리의 노래는 곡조를 잃은 화염처럼 이리저리 펄럭이나이다. 보소서! 보소서!
올해로 일곱번째를 맞은 '사이펀문학상'은 노태맹(60·대구) 시인한테 돌아갔다.
계간 시전문지 <사이펀>(발행인 배재경)은 지난 한 해 동안 신작시를 대상으로 한 심사 결과, 노 시인이 2021년 겨울호에 발표했던 시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에 당신의 어린양이"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심사위원 강은교 시인과 조창용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일괄된 주제의식을 매끄럽고도 자연스러운 이미지들로 이끌어내는 튼실한 기교적 내공이 있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에서 시인은 인간의 모태적 슬픔을 담고는 있지만 그 화염은 새로운 창조로 귀결된다"며 "그렇기에 노태맹 시인의 시를 접하는 독자는 생경스러움과 함께 모든 것을 녹아버리는 화염의 뜨거움에 흠칫 놀라게 된다"고 했다.
노태맹 시인은 소감을 통해 "가장 적게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에 대해, 그 죽음들이 포개어져 만들어진 삶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며 "지금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시는 노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시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경북 성주 노인요양병원장인 노태맹 시인은 199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 <유리에 가서 불탄다>, <푸른 염소를 부르다>, <벽암록을 불태우다와 산문집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이 있다.
제6회 사이펀문학상 / 조말선
환대 / 조말선
당신은 뒷모습이 없고 둥근 아치형입니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의 아들이 되어본 적이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식사 때면 오른손을 사용하느라 눈에 띄지도 않고 살인을 저질렀을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발과 저 발을 번갈아 사용하는 산책과 달리 들리지 않는 사실을 말할 생각은 없어요 쌍욕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거든요 그렇게 안 보인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으니 진심으로 대해주시겠습니까 긴 아치를 지나갈 때는 환영받는 기분입니다 목구멍으로 꿀꺽 넘긴 굳은 빵조각을 다시 내뱉을 생각이 없는 내 식도가 떠올랐거든요 대체로 건강한 육체를 가졌지만 오빠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경청하기 위해 태어난 귀 같군요 이 경우에는 침묵이 악덕이므로 오른손과 왼손을 마주치려합니다 오른발과 왼발을 동시에 구르며 답례를 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바로 당신을 돌보러 온 자가 틀림없지만 누가 누구를 돌보게 될지 지켜봐야 합니다 두 팔을 옆으로 쭉 뻗어 올려서 당신은 둥근 아치형입니다 능소화처럼 매달린 빨간 귀들이 쫑긋거리며 윙크하느라 나는 별꼴이라는 표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능소화가 그런 당신을 켜둘 참이군요 당신이 하는 접대에 당신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하고...... 언니, 라고 부르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선생 말고도 다른 호칭이 있을 겁니다 아, 지금 삼키는 알약은 비타민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당신의 눈동자가 능소화처럼 빨갛습니다 오늘 밤 당신은 잘 생각이 없어 보이고요 내가 잠들기 전까지 돌볼 자는 누구입니까 나는 잠깐 잃어버린 우산을 생각하다가 잠들 겁니다 초대장처럼 오른손을 내밀었지만 당신은 줄곧 두 팔을 들고 있어서 언제 악수 할까요
* 페르난두 페소아
[수상소감]
시를 쓰는 동료들을 만나보지 못한지 거의 2년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가 같은 고통을 겪으며 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고,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손님이 불현 듯 그 울타리를 넘어와 세계를 혼란 속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의심이 공존하게 되었다. 안에서 비롯되는 원심력이 밖에 의해 추동되어 왔던 시가 그리워하게 된 것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갔다. 그만큼 시간이 멀어지고 공간이 멀어지고 사람이 멀어졌다. 시가 간절해지기보다 가볍게 나누었던 안부들이 간절해져갔다. 사람이 간절해져 갔다. 사실은 아주 편하고 좋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웠다는 말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절실해야 하는 것이 시!라고 하는 님들 빼고 2박 3일 생활 얘기만 하자던 먼 동료와의 통화가 제일 따뜻했다.
그런 2년 내내 오랫동안 묶지 않은 시들을 뒤적이며 보낸 것은 아니지만 시집 준비를 했고,
절판된 첫 시집의 복간도 앞두고 있다. 계속 ‘시’의 가운데를 쳐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그 근처를 빙빙 돌며 어떤 관계를 맺을지 아주 조금 생각하다 말다 했다. 시집 이후의 시에 대한 생각도 일부 하게 된다. 하지 않으려 해도 빈자리를 찾아들어온다. 사이펀에서 주시는 상이 그 생각을 빨리 정리하게 할 것 같다.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심사평]
올해로 6회를 맞는 「사이펀문학상」 심사를 보면서 순도 높은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본심에 오른 분들은 현재 우리 문단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분들로 권민경, 김수우, 김왕노, 김점미, 김정수, 리호, 박춘석, 백인덕, 송유미, 안민, 안상학, 전영관, 조말선, 천병석 등이었다. 이 분들의 시는 누구에게 수상자를 결정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이 좋으면 한편이 눈 밖으로 나는 등 고르지 못한 작품들이 눈의 티가 되는 분들이 몇 분 있어 다시 꼼꼼히 볼 수밖에 없었다.
시적 내밀성에 초점을 둔 서정시와 현대시의 특징 중 하나인 기호적 시법 등 다양한 시들을 일별하면서 《사이펀》에 발표되는 작품들이 상당한 깊이와 폭을 넓히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권민경 김정수 안민 조말선 네 분의 시들을 두고 고심한 끝에 조말선의 「환대」를 결정했다.
조말선 시인의 「환대」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시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 “둥근 아치형”과 “능소화”의 두 이미지를 축으로 하여 오밀조밀 언어의 다양한 협곡을 드나드는 기술이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시적 긴장미를 떨구는 것도 아니다. 독자들이 이 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할지는 미지수지만 시인의 상상력이 마치 봄바람의 훈풍처럼 자유롭게 행간을 타고 다니는 것이 언어를 다루는데 있어 주저함이 없다. “쌍욕”과는 변별되는 발랄성이 이 시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만큼 시적 내공이 차올랐다는 반증이리라. 함께 발표된 「이행」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더욱 큰 문학의 여울을 퍼트리기를 빈다. 아울러 본심에 오른 모든 시인들에게도 크나큰 문운을 기원 드린다.
제5회 사이펀 문학상 / 김참
미궁 / 김참
사흘 내리 내린 눈이 모든 것을 덮었다. 구층 우리집도 눈 속에 파묻혔다. 냉기 도는 계단을 밟으며, 나는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관을 박살내고 들이닥친 눈이 우편함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오월도 끝나 가는데 무슨 눈이 이토록 퍼붓는단 말인가. 누군가 뚫어놓은 통로를 따라 막장 광부처럼 조심조심 걸었지만 눈 밖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언 손 비비며 천천히 걷다 발을 헛디뎌 다른 통로로 굴러 떨어졌다. 꽁꽁 얼어붙은 사람 몇이 차가운 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온기도 생기도 없었다. 어두운 통로를 휘감고 돌며 낮은 기타소리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한참 걸었지만 통로는 막혀 있었다. 언 손 불어가며 길을 내는 동안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배고프고 춥고 졸음도 쏟아졌으나 잠들면 얼어 죽을 것 같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갔다. 머리부터 발톱까지 꽁꽁 얼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눈을 파헤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벽이 허물어지고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얼어붙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 누가 있냐고, 아무도 없냐고, 아무도 안 계시냐고, 커다랗게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상소감]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
어떤 말로 수상소감을 시작할지 한참 고민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10월 어느 오후,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이었습니다. 조만간 어느 문학상을 받을 예정이라, 제가 또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소식을 알려온 배재경 선생님이 다른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사이펀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려왔기에, 상을 받아도 된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은 통화하는 동안 상을 또 받아도 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집에 와서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눈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시입니다. 저는 올해 들어와 Jazz 연작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도 Jazz 연작에 포함시킬까 고민하다가 따로 제목을 붙여 발표했습니다. 사실은, 며칠 전 어느 잡지에 두 편의 시를 넘기며, 시작 메모에 Jazz 연작을 마무리 한다고 적었습니다. 올해엔 신작시 청탁이 더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해 시 농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수상을 하며, 두 편의 시를 더 쓰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합니다. 시를 쓰는 시간은 늘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모두가 힘든 해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어나 처음 마스크를 써 봤고, 발을 다쳐서 깁스도 했습니다. 병원에선 입원을 하라고 했지만,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라도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아픈 발로 절뚝거리며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행복한 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한 해에 두 번의 상을 받게 되는 행운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사이펀 문학상은 더 특별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심사를 해주신 강은교 선생님, 김성춘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참 시집 <초록 거미>(신생시선 58)
[심사평] 미궁, 그 현실의 고통에 도전하는 큰 폭의 상상력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정익진의 「유리 바다」 외 1편, 최휘웅의 「코로나」, 한정원의 「조슈아 나무 아래의 감자」 외 1편, 최은묵의 「리플리 증후군」 외 1편, 김참의 「미궁」 외 1편이었다.
본심에 오른 다섯 분의 작품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시력과 뛰어난 시적 테크닉 그리고 개성적인 언어의 운용을 보여주고 있어 수상작 한 분을 선정하는데 고심이 많았다
시적 긴장을 잃지 않고 주제를 치열하게 밀고 가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성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대상 작품들은, 현재 한국시의 다양한 목소리와 그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사이펀 문학상의 높은 위상을 짐작 하게 했다.
그 가운데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참 시인의 작품들은, 불확실한 미궁 같은 삶 앞에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고통스런 현실의 삶을 큰 폭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전개 시키고 있어 높은 신뢰감을 주었다.
오월에도 눈이 내리는 이곳, 통로는 막혀 있고, 거리에는 얼어붙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암울한 도시, 그러나 어두운 통로 끝에서 들려오는 낮은 키타 소리가 있고, 멀리 불 켜진 창들이 아직도 보이는 도시,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고,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가는 이 곳, 우리 사는 곳, 음악과 눈송이, 꽃을 감각적으로 대비시킨 김참 시인의 환상적인 시편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수상자 김참 시인께 축하를 드리고, 본심에 오른 시인들께도 건강과 건필을 빈다.
- 심사위원 김성춘(시인. 전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
제4회 사이펀 문학상 / 성윤석
빙장氷葬 / 성윤석
먼저 시신의 몸속에 있는 칩들을 제거해야 하오 팔뚝이나 무릎에 있는 폰들과 인공지능이 감시하는 대체장기들 스스로 진화한 랜섬웨어 더블들 잔여파일들까지 수은과 납 성분 기타중금속들은 나중 문제지 다른 지역에선 어떻게 하는 진 모르지만 여기선, 우리는 액화질소가스를 사용하오 구시대적이지요 영하 200도로 시신을 얼려버리오 그리곤 분쇄하는 거지 그리고 나면 딱 30cm 짜리 관에 들어간다오 냉동 부활 그거 실패한 정책이오 부활은 성공했지만 자살률이 90프로지요 나머지 10프로도 정신수용소로 보내지오 어느 나라냐고 물으셨소 이 별엔 이제 나라 따위 국경 따위는 없다오 지도자 뭐 이런 존재도 없다오 더 나은 인간이 없다는 거지 오래전에 이 별은 투표를 통해 빙장을 승인했다오 그때도 지도자는 없었지 발기인은 있었어도, 투표는 10분 만에 끝났고 모두 빙장을 선택 했소 토양이 모두 오염되었거든 방금 화성을 얘기 했소 ㅎㅎ 오염되었어도 이 곳 만 한 곳은 없소 분쇄처리가 끝난 관은 모두 오염지역으로 보내지오 그곳 땅에 묻히는 거지요 관도 모두 한 달 안에 분해되오 미생물들이 다 분해하지요 놀라운 것은 이 분쇄된 시신이 묻힌 곳의 땅들이 살아나고 있다는 거요 시신의 영양을 빨아먹고 꽃들이 벌레들이 살아나는 장관을 보인거요 근데 아까부터 수상했는데 당신은 어디에서 왔소 냉동에서 부활한 것이오 부활이라니, 그럴리가! 이리 온전할 수가 없소
[수상소감] 고향 같은, 부산에서 휘두르는 채찍
먼저 졸작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사이펀’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소식을 듣고 부끄럽고 당혹스러웠습니다. 등단한지 올해로 30여년이 다 되었지만, 사실 그동안 꾸준히 시를 쓰지도 못했고 15년 정도는 시 쓰기를 완전히 멈추고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돌아와 다시 쓸 수 있고 시집을 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영광인데 상까지 받으려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내면서 저는 주로 제가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기록에 치중해왔는데 최근엔 어떤 시간들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공간과 달리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으로 다가왔고 이번 작품 또한 미래의 어떤 시간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뜻밖에 갓난아기 때부터 스무 살까지 자란 부산에서 이 작품을 선해주셔서 기쁜 마음입니다.
부산은 저에게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고등학교 까지를 여기서 마쳤고 처음으로 시인이 되고 싶었던 도시입니다. 오늘을 계기로 좀 더 치열하게 시에 대한 저의 인식과 태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윤석 시집 <멍게>(문학과지성 시인선 447)
[심사평] 현실에 대한 고통의 인식 가열하게 표현
본심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논의된 작품들은 윤병무, 성윤석, 조현석, 김선태, 김재근 다섯 시인의 시 열 편이었다. 모두 만만치 않은 시력을 가진, 현재 그 기운들이 한창 발화되고 있는 시인들이어서 그 중 한 명만의 선택에 꽤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시들은 한국 시의 현 실정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들이어서 이 상의 심사는 우리 문학의 시사적인 중심의 말들을 맛보는 쓰면서도 달콤한 미각의 성찬 자리이기도 했다. 본심 심사에 오른 작품들은 무엇보다 언어의 기운에 무게를 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말들은 때로 예민하고도 까다롭게 소통의 열망을 드러내는 욕망들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 말들을 뿜어내는 현실에 대한 녹록치 않는 고통의 시각들이 다들 만만치 않았다.
그 가운데 수상자로 성윤석을 뽑은 것은 현실을 드러내는 도구로 언어를 쓰는 데 따르는 한계를 정직하게 수용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고통의 인식을 누구보다도 가열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그 모순의 통합이 우리 시의 새로운 전망을 가늠하는 한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작의적’으로 자신을 드러냄을 경계하면서, 몸에 ‘쿡쿡 찍히는’ 직접성과 진정성의 소통의지야말로 그런 현실 인식을 넘어서는 변할 수 없는 힘으로 여기는 듯하다. 결핍된 시대의 자화상을 그러한 직접성과 진정성으로 그려내고 스며들려는 욕망을 우리는 그의 시에서 느끼기에 신뢰한다.
- 심사위원: 이하석(시인, 대구문학관 광장)
제3회 사이펀 문학상 / 길상호
혀로 염하다 / 길상호
트럭에 치인 새끼 목덜미를 물고와
모래 구덩이에 눕혀놓고서
어미 고양이가 할 수 있는 건 오래 핥아대는 일
빛바랜 혀를 꺼내서
털에 배어든 핏물을 닦아댈 때마다
노을은 죽은피처럼 굳어가고 있었네
핥으면서 식은 숨을 맛보았을 혀,
닦으면서 붉은 눈물을 삼켰을 혀,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묻어놓고 어디에다 또
야옹, 옹관묘 같은 울음을 내려놓을까
은행나무가 수의를 입혀놓은 저녁이었네
[수상소감] 체온이 가득한 시
13년 전 북아현동 어느 시인의 방에서 아주 작은 생명체를 처음 만났습니다. 눈도 뜨지도 못한 채 젖병을 물고 있던 고양이 물어, 그날 물어는 분유를 다 먹고는 졸렸는지 따뜻한 곳을 찾아 제 무릎 밑을 자꾸만 파고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따뜻해진 것은 정작 저였습니다. 작은 몸이 갖고 있던 체온과 보드라운 털의 감촉은 얼어있던 저의 마음을 어느새 흥건히 녹여놓고 있던 것입니다. 가족이란 이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부대끼는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맞닿음이 인연이 되어 물어는 10년 넘게 저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가족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시는 세상에서 과연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찾아드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물어와의 첫 만남을 기억해내고는 했습니다.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해왔던 삶에도 체온을 담아낸다면, 누군가는 그 삶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고, 물어는 야옹야옹 끊임없이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물어가 옆에 있어서 저는 한동안 헤매다가도 다시 시의 길을 찾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물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나란히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운문이, 산문이가 일어나 손에 머리를 부비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깊이 따뜻해지는 아침이었습니다. 이 온기를 잊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 시의 길에 확신을 갖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의 수상은 시의 온기를 잊지 말라는 격려로 제게는 받아들여집니다. 옆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마음 잊지 않고 세상의 차가운 곳을 찾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시를 더 많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요즘은 좋은 길동무를 만나 걸을 일이 참 많아졌습니다. 논둑길, 밭둑길, 들길, 산길, 강변길… 길들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그가 제게 물어오곤 합니다. “저 꽃은 이름이 뭔가요?” 물음은 종종 “당신은 무슨 꽃인가요?”로 귀에 와 닿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던 향기와 색깔도 찾아내서, 그 따뜻한 물음에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시는 그 대답을 찾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길상호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걷는사람 시인선 014)
[심사평] 서정적 이미지의 담백함이 돋보여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라온 작품들은 총 일곱 시인의 13편이었다. 이선형의 「나를 꼭 닮은 말」 외 1편(2017, 겨울), 길상호의 「혀로 염하다」 외 1편(2018 봄), 김윤배의 통일시 「도보다리, 밀어가 되다」(2018 여름) , 정익진의 「청색의 순간」 외 1편(2018 여름), 최휘웅의 「달이 보인다」 외 1편(2018 여름), 조해훈의 「그릇」 외 1편(2018 가을), 최옥의 「뿌엔떼 라 레이나를 위하여」 외 1편(2018 가을) 등이었다.
일곱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고민한 부분은 시의 이미지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가 고민이었다. 일곱 시인 모두 각자의 개성을 확연히 갖고 계신 분들이라 선자를 무척 힘들게 하였다. 그만큼 연륜에 맞는 시어들이 행간마다 잘 우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후보작 들 중 그래도 가장 안정적이며 표현력과 서정적 이미지가 잘 조화된 작품이 길상호의 시들이었다. 테크닉의 화려함 보다는 내밀한 어조의 이미지가 차분하고도 명료하게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시인들이 보여준 언어의 성찬들을 제칠 수 있었다. 물론 시마다 장단점이 있긴 하나 독자의 시각에서 기술이냐? 안정이냐? 오밀조밀한 내구성이냐? 등을 여러 잣대로 맞추어 보아도 길상호의 시들이 안정적이고 단조로운 듯 하나 뛰어난 내구성을 갖춘 표현력 등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특히 ‘혀로 염하다’에서 새끼를 향한 어미의 모성과 객관적 관찰이 주는 시각과 감각적 표현 등이 뛰어난 담백한 이미지로 녹아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문학에는 끝이 없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하며 한국문학의 미래로 자리매김 되기를 -----
- 심사위원 : 유병근, 배재경, 송진 시인
제2회 사이펀 우수작품상 / 윤의섭
향기 / 윤의섭
꽃밭을 뒤덮은 건 시포 같은 향의 기운이었다
가벼워서 끝끝내 짓누르는 중압
충매를 치르기 위해 꽃은 몸의 입자를 쏟아낸다
그러니까 꽃향기는 정확히 생과 사의 한 가운데를 흐른다
비장해 보이거나 죽음의 냄새가 배어있는
향그러움 슬픔의 독 한계절의 국부마취
달빛은 꽃향기를 통과하다 아련해지고
바람은 물들어 바람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조만간 산책이 애도로 바뀌는 지점에 다다를 것이다
향기의 성층권이 낮아지면 꽃들은 별의 최후를 닮아간다
파편 되어 흔적 없이 바스러지는
종말이 다가올수록 향기의 자장은 꽃을 중심으로 좁혀진다
꽃이 지면 향기가 걷히는지 향기가 사라지면 꽃이 지는지
꽃밭을 둘러싼 건 생무덤이었다
[수상소감] 늘 시
계간 사이펀을 알게 된 것은 지난겨울이었습니다. 2016년 여름호로 출범하여 지금까지 순항 중인 사이펀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갈수록 양적, 질적인 면에서 변화와 발전을 보이며 창간 당시 배재경 발행인 겸 주간이 밝힌 ‘진지한 문학으로의 변화’라는 추구 정신을 이루어 나가는 중입니다. 콘텐츠도 조금씩 진화해왔고 늘 가독성을 고려하려는 의식이 반영되어 글자체도 바뀌었고 내지 디자인도 매 호마다 바꾸면서 계절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글을 싣게 해준 필진의 역량과 작품성은 그 수준과 진정성이 빼어납니다. 이 모두가 사이펀을 최고의 시 계간지로 만들고자 하는 운영진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상황은 수많은 문예지와 거기 실린 수많은 시로 인해 그야말로 양적으로만 보면 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시가 많이 창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행복하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저는 시는 많이 나올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고여 있으면 안 되는 예술장르여서, 언제나 새로운 시가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의 시는 아직 일정한 독자층의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시가 대중적인 예술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를 읽는 독자는 생각보다 한정적입니다. 문예지는 많지만 그 안에 수록된 시가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읽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를 수록할 수 있는 매체의 지속적인 독자 확보 노력과 양질의 시 발표가 증가해 나간다면,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 ‘낭중지시’, 즉 언젠가는 어떠한 한계라도 뚫고 더 나은 시의 세상으로 시가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서두에 계간 사이펀이 추구하는 정신과 면모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와 관련됩니다. 계간지가 좋은 시를 보여주려는 의지가 높을 때 좋은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저는 20대부터 거의 25년 동안 시를 써오고 있습니다. 다른 시인도 그렇겠지만 시를 쓰면서 저는 매번 어떻게 쓸까, 어떻게 해야 좋은 시가 될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어떤 세계를 보여주어야 하는가 등등에 대해 고민합니다. 생각난 대로, 떠오른 그대로 쉽게 쓰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끊임없이 어제보다 더 다르고 나은 시를 쓰기 위해 고민합니다. 그런 과정 중에 올 봄 계간 사이펀에 발표한 시가 우수작품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흡한 시를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히 늘 시를 생각하고 써 나가는 일상 속에 주어진 소중한 격려와 독려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시를 쓰는 모든 사람들이 늘 시를 생각하고 삶을 밀고 나가고 있다는 점,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함께 걸으면서 시가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애독되는 날을 바라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시를 쓰는 데 힘을 보태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배재경 선생님, 송진 선생님 등 계간 사이펀의 편집, 추진, 운영위원 선생님들과 심사하고 선정해 주신 강은교, 유병근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윤의섭 시집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민음의시 264)
[심사평] 탄탄한 주제의식 위의 이미지 돋보여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라온 작품들은 총 네 시인의 8편이었다.
김백겸의 “하늘나라” 외 1편, 윤의섭의 “향기” 외 1 편 손순미의 “해변모텔” 외 1편, 여정의 “마스터베이션” 외 1편, 채수옥의 “오카리나” 외 1편.
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전해오는 것은 심사자로서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네 시인 모두 시를 너무 잘 쓰는 시인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미지들의 화려함이 그 장점 중에 가장 먼저 짚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이 만드는 공간이 없음으로써, 즉 시의 육체성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그 장점들은 동시에 단점을 이루고 있기도 했다. 소리심(리듬)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이미지와 소리심, 그리고 이들과 함께 있는 주제의식은 한데 합침으로서 이미지들이 이룬 시의 공간에 육체성을 준다, 고 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장점 곧 단점을 보면서, 네 시인들에게 죄송한 일이나, 테크닉이 시에 봉사하지 못하고 있는 시를 젖혀나가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윤의섭 시인의 시에 우수작품상 수상의 영광을 드리기로 하였다. 윤의섭 시인은 탄탄한 주제의식 위에 이미지들을 올려놓음으로써 시의 육체성을 잘 이루어내고 있었다. 앞으로 소리심의 문제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보인다.
정진을 바란다. 한국현대시의 희망이 되기를.......
- 심사위원 : 강은교 유병근 시인
제1회 사이펀 우수작품상 / 이중기
억수 무덤 / 이중기
기룡산 아래, 낙락장송으로 병풍을 친 곳
어느 문중 산소 아흔아홉 풍광 압권은 따로 있다
일찍이 내가 노래하다말고 악보를 찢어버렸던
그 시총詩塚* 아래
노비,
억수 무덤 있다
홍진에 죽은 아이 애장 터 만한 거기
굳이 '충노억수지묘忠奴億壽之墓'라고 새긴 빗돌이 좀 생뚱맞다
한심한 임금 몽진할 때 영천성 탈환하고
경주성 되찾으로 간 의병장 아들 몸종으로 갔다가
전사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한 노비
시신, 애써 거두어 왔다는 사실
압권이다
시신 아예 찾을 길 없는 의병장 아들은
그가 입던 옷 들고 가 훠이, 훠어이 초혼을 하고
여기저기 유림에 시문을 받아
그 문장 태운 재로 만든 시총 아래
억수 무덤,
400년 지나 조악한 빗돌 하나 세웠다
억수는 그 선비 후손들 술잔에 큰절도 받을까?
무엇보다 그거 억수 무덤 맞아?
* 임진왜란 때 영천성을 수복하고 경주전투에 나간 의병장 정세아(鄭世雅) 아들 정의번(鄭宜藩) 시신을 못 찾아 선비들의 시문을 받아 묻은 묘.
[수상소감] 시가 내게 묻는다
‘영남 무림’ 중심, 그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촛불잔치’를 했다. 정수리에 관솔을 박아 불을 밝히고 싶은 심정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여자중학생들이 세상 등짝에다 죽비를 내리쳤고, 여자고등학생들이 우레 같은 사자후를 토해냈으며, 이게 내란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아줌마들이 울분을 터트렸다. 이런 한 마디 한 마디가 박정희 신화를 깨트리기 시작한 금강석 같은 시편들이었다. 흘러내리는 촛농을 손등으로 받으며 나는 묵묵히 그 시편들을 가슴에 받아 적었다. 수많은 장삼이사들이 몰려나와 나라를 걱정할 때, 그나마 배웠다는 작자들은 여행 중이거나 술집에 앉아있었다. 회원이 수십이나 된다는 어느 문학단체 시인 나부랭이들은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촛불잔치 중간 중간에 누군가의 시를 들고 나와 낭송을 하곤 했다. 누구는 서울로, 또 누구는 대구로 촛불을 밝히러 갔다는 말이 들려왔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촛불을 들기 위해 자신이 발 딛고 선 세계의 중심, 그 현장을 팽개치고 굳이 대도시로 가야하는 이유가 천민자본주의 각다귀세상(혹은 문학 동네) 축소판 같아 씁쓸했다. 우리가 촛불을 내릴 때까지, 영천 길바닥에 펑퍼져 앉으라고 여자중학생이 나이 먹은 것들의 정수리에다 죽비를 내리쳤다.
그 와중에 ≪사이펀≫에서 전해온 소식을 듣고 한참이나 난감해했다. 나는 늘 문학권위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놀이’와 그 ‘놀음’을 경계해왔던 터. 들판 가운데 독가촌에서 필부의 삶을 살아가는 내게 이런 일은 너무 낯선 것이라 참 뜬금없다거나, 어처구니없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은 찾을 수 없다. 누군가가 어설픈 내 시에 잣대를 대고 뜯어보았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여기에서 내가 무슨 흰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겠는가. 오래, 시는 내 삶의 방부제 같은 존재였다. 시가 있어 내 생이 그나마 요만큼이라도 싱싱할 수 있었던 것. 그런데, 시가 내게 묻는다. 다시 ‘격문’을 썼어야할 신자유주의 시대 한 복판을 가로질러 마침내 막장에 닿아버린 지금, 시가 내 정강이를 걷어찬다, 우얄래?
이중기 시집 <어처구니는 나무로 만든다>(한티재 시선 011)
[심사소감] 대지의 고향, 건강하고 생생한 방언으로 되살려
선자에게 넘어온 최종 시편들을 놓고 그렇게 많은 고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시인의 작품은 너무 산문적이었고 시의 본래의 영역인 노래, 음악성을 거의 의도적이라 할 만큼 벗어나 있었다. 감각적인 내재율과 어느 정도의 서정적 시각미를 보여주고는 있었다하더라도 시의 보편적인 형식미라고 말할 수 있는 음악성과 회화성을 소홀하게 여긴 것이 우선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특히 요즘 한국시단에 너무 쉽게 뿌리를 내려버린 듯한 산문형식의 시편은 시적 긴장을 완화시킨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음으로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시정신 혹은 시적 에스프리는 그 시인의 시를 가늠하는데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의 외적형식(die Ausssere Form)도 형식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내적형식(die Innere Form)은 바로 시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형식이 먼저냐 내용이 먼저냐를 따지기 전에 이미 시는 형식과 내용 혹은 내용과 형식을 가를 수 없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는 형식적인 하드웨어 못지않게 내용을 담아내는 소프트웨어가 시의 생명력과 그 존재가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시에는 왕도는 없지만 시가 가는 길은 위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본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들여다봤을 때 이중기 시인의 두 편의 시 ‘억수 무덤’과 ‘영천능금농사 70년사’는 마지막에 오른 여타 시인의 시보다는 덜 산문적이었고 또 나름대로 내적형식을 담보하고 있었다. 특히 그의 시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해체주의 문학으로 말하여지는 작금의 한국시에 하나의 반성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시사적이다. 모더니즘의 지류에서 출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본래의 기능 즉 문명세계에 대한 비판적 미학을 비껴가면서 시문학의 경우, 카오스로 전락하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심각하다. 20세기 영국의 시인 딜란 토마스의 지적대로 ‘시는 카오스 상태를 지양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인데 작금 한국시는 오히려 카오스 속으로 흡입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독자와의 결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런 일련의 시작행위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중기 시인의 시적 정공법은 오히려 돋보이고 탄탄하다.
우선 ‘억수무덤’만을 놓고 볼 때 이중기의 시는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식과 나아가 오늘에 대한 현실적 뉘앙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 속의 주인공 억수와 화자인 이중기 시인이 서로 가슴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말하여 이중기 시인의 삶이 그의 고향 경북 영천에서 지금까지 다부지게 쌓아올려져 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대지와 살 비비는 정직함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쑥냄새처럼 묻어나는 흙으로부터의 삶, 나아가 고향의 오랜 역사와 그것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을 빼앗기지 않고 되살려내고 있다는 것이 큰 미덕이다.
시 ‘억수무덤’은 흔히 말하듯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시(詩)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백성들을 뒤에 두고 신의주로 몽진할 때 왜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영천성과 경주성의 의병장 정세아의 아들 정의빈, 그의 무덤과 나란히(위치는 위아래지만) 만들어진 노비 억수의 무덤을 두고 얘기되는 소위 ‘사람’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풀어놓은 ‘인물시’다. 거의 전설적이라 할 수 있는 먼 옛날의 구전 팩트(fact)를 가져와서 드라마틱한 서사를 보여주는 이 시는 400년 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오늘날 영천에서 살고 있는 이중기네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니 어느 특정 지역에만 해당되지 않는 한반도 도처에 살아가는 ‘홍익인간들’의 체취와 그들 마음의 향기를 구수하게 담아낸 시다. 그러면서도 이중기의 장점은 서울 중심의 ‘표준말’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대지의 고향, 생생하고 건강한 경상도 방언으로 시 ‘억수 무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억수 무덤,
400년 지나 조악한 빗돌 하나 세웠다
억수는 그 선비 후손들 술잔에 큰절도 받을까?
무엇보다 그거, 억수 무덤 맞아?
시의 마지막을 뭉쳐서 보여주는 결구, “무엇보다 그거, 억수 무덤 맞아?”에서 이 땅을 살아왔던 민초들의 ‘본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되받아치는 혹은 되묻는 화법으로 “억수, 무덤 맞아?”라고 시의 결미에 쐐기를 박는 이중기 시인, 그의 시는 바로 이들 민초들의 삶 속에서 태어나서 비로소 물려받고 얻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한 편의 ‘영천능금농사 70년사’ 역시 그가 두 발을 넣고서 살고 있는 영천 사과밭농사에서 체득한 이야기 시다. ‘억수 무덤’에서 보이는 시적 긴장감이 조금은 느슨하여 흠으로 지적되지만 그의 인생체험에서 도드라지게 나오는 경구, 아포리즘 미학도 쉽지 않게 얻어진 시다. 첫 행 “몸은 살수록 낡고 세월이야 묵어서 발랄해진다”는 경구가 그 일례다. 마지막 행도 이중기 시인의 성깔, 예컨대 개성이랄까 오기랄까, 이 땅 농민들의 줄기찬 에너지와 맥박 소리를 잘 그려주고 있어 일품이다.
시월 영천능금이 그 본색을 드러내기 전에
능금나무 그늘이 이마에 닿으면 마침내 숨 거둘,
한 해 능금농사 끝내듯 덜컥, 눈 감을
저 늙은이 죽어서도 아삭아삭 능금, 씹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북 영천에서 능금농사를 짓는, 70년을 오직 능금농사만을 지어왔던 노인은 결코 ‘늙은이’가 아니다. 우선 흙냄새가 오래도록 풍기는 농민이다. 대도시의 문명에 끌려가는, 끌려가며 자기 자신을 놓쳐버리기도 하는 오늘의 군상들한테는 표상이 될 만한, 아삭아삭 능금을 씹을 힘을 그래도 갖고 있는 ‘대지의 사람’이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노인, “간병인이 와서 기저귀”를 갈아주는 처지가 되었지만 죽어서도 능금농사를 지으며 아삭아삭 능금을 씹을 것으로 이중기 시에 전이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억수 무덤’에서 억수와 능금농사를 짓던 노인이 이중기의 시 속에 들어와 누리는 건강하고 소박한 ‘오기의 미학’에 다름 아니다. 오기의 미학은 시인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당연한 미덕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오기야말로 시인들로 하여금 시를 ‘청춘의 미학’으로 승화시켜주는 바로미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계간 사이펀 제1회 우수작품상으로 이중기 시인의 두 편의 시 ‘억수무덤’ ‘영천능금농사 70년사’를 흔쾌히 밀어올린다. 이제 그의 시가 또 다른 수확을 위하여 정진할 것을 믿으며 그가 이 땅에서 사랑하였던 ‘억수 무덤’을 다시 보살피고, 많은 독자들이 그의 시를 영천 능금처럼 ‘아삭아삭’ 싱싱한 맛으로 씹을 것을 기대한다. ‘사이펀 제1회 우수작품상’ 수상을 거듭 축하드리며 때마침 출간된 그의 시집 [영천 아리랑] 출간에 대하여도 경하의 뜻을 전한다.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말을 이중기 시인에게 전하고 싶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고향의 재발견이다.”
- 심사위원 김준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