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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들(고린도전서 2:12~14)
2024년 10월 20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린도전서 2:12~1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은, 또 함께 교회를 이루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늘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영적인 인도를 받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살고, 영적인 나라로 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함께하는 목적을 세상 것으로 혼동해서 우리를 결국 영원한 나라로 갈 수 없도록 붙잡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세상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주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아직 대예배를 함께하지 않는 영혼들이 있어서 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우리가 지난 한동안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삼으시고 부르셔서 우리로 온 우주와 온 영적 존재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것은 이 세상의 혈과 육으로 만지고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결이 완전히 다른 영원한 나라의 상식과 영원한 나라의 지식과 영원한 나라의 원칙과 방법과 또 언어와 성품과 또 의지와 자세로 움직여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영적인 이 신앙생활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자꾸 오해가 생기고, 잘못된 방식과 가르침들이 끼어들어서, 혹은 잘못된 일련의 자세들이 들어와서 영적으로 채워져야 될 우리의 입장을 바꿔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망칩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 교회가 어떨 때는 지나치게 어떤 자부심만 있었습니다. 영적 환경이 되기보다는 한없이 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이런 것들을 더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야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손잡고 같이 걸으며 하나님과 식사를 할 것입니다. 이 땅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걸 다 떼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세상과 계속 맞부딪쳐서 대면하고 또 관계를 하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순간에 끊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다 보면, 우리가 염려해야 되는 것들 또 필요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만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존재는 이 육신의 기간만이 아닌 것입니다. 이를테면, 태어나 팔구십 세까지 산다고 하면, 그 후는 끝입니까? 이 인생이 한 단위가 아니라, 인생은 진짜 올 것에 대한 예고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닌데, 온 세상은 기독교회를 구석에다 놓고 ‘종교 집단’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백 년 전부터 계속 경고해오고 있습니다. ‘세상은 다 헛되지만 영원한 하나님이 계시니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이 있고, 애초에 영원한 창조자가 계시고, 너희를 인도하시는 자가 있다.’
여러분과 내가 함께 달려나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의 약속을 받고, 영생을 확보하고, 성령으로 인침을 받고, 이 약속이 영원히 우리를 바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으며 오늘 세상을 참고 그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것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화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잘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곧 혜택입니다. 다만, 그 기회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자들은 나중에 가서 굉장히 후회할 것입니다. 나사로는 여기서 가난하고 어렵고 슬프고 정말 핍박받은 인생이었지만, 그 인생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정받았습니다. 이처럼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내가 함께 교회에 모인 것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늘 시민입니다. 지금 하늘은 텅 비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피조물로 지으신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늘은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here are my children.’ 우리가 다 거기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세상 것과 하늘의 것을 자꾸 섞어서 하늘의 자녀를 세상으로 끌어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이 목회를 잘한다 말합니다. 우리 사태 때도 저를 향해 무능하다 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 자가 검찰에 가서는 저를 향해 옥스퍼드 나온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말을 바꿉니다. 목사는 누가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하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뭘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처럼. 그는 한 사람이 백 명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가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새에게 아들이 여럿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 자는 제일 막내, 코 흘리는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멋있고 잘생긴 형들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다릅니다. 어떤 기준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마음이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마음이 애통하는 자, 착한 자, 긍휼이 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주 명철 있고 일에 능숙한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굴 택하실까요? 긍휼한 자를 택하시는 것입니다. 긍휼한데 긍휼이 좀 모자란 사람도 목사가 됩니다. 그런 자라도 ‘너는 10년짜리’, ‘너는 15년짜리’ 이렇게 하나님께서 단기적으로 사용하시는 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갖고 와서 목사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 근본을 갖고 있지만, 목사로 세워졌다 하면,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 시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천지의 주재되신 분이 그에게 임무를 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명예를 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 자를 처단하라!’ 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아무도 목사에겐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분적으로 잘못 배운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결과만 보는 것입니다. 훌륭한 일을 많이 해 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다 탕감 받는다고, 하나님은 그 훌륭함을 높이 사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옛날 70년대의 부흥사 시절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결과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우리의 속을 다 보십니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열매는 회개한 우리의 자세로서 새롭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의의 행실들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자기에게 하나 이익이 없는데도 자기를 그분 앞에 드리는 것, 자기에게 남는 것은 쏟아지는 땀과 코피와 피곤이고 시간도 돈도 잃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의의 열매로 간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심령을 사용하십니다. 더러는 선하고, 더러는 좀 까칠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그런 자도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 하나를 뽑아 놓고 영원히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도 하나님께서 원하는 자를 보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어서 일하게 하십니다. 능력도 없고 세상에서 별볼일 없는 사람이 교회 일은 잘할 수 있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놀림받던 사람이라도 우리가 함께 기도하여 능력 있도록 하고, 교회를 치리하도록 하고, 역사해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간구한 그런 기도의 제목이었던 목사는 기도한 만큼 그가 능력을 받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거두어지면 ‘왜 내게 아무것도 없지?’ 하고 빈 껍데기를 다시 실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영적인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군인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세상으로 시각으로 보고 다루는 건 맞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 가면 목회자가 강하게 성도들을 인도합니다. ‘아유, 저렇게 하면 성도들이 힘들어 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이 맞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대충 대충한다? ‘교회의 시스템이 천국 가는 길이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물론 교회의 시스템은 절대 필요합니다. 시스템 없이 교회가 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시스템이 구원은 아닙니다. 우리의 변화되고, 순종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헌신이 확정된 우리 구원을 수월하게 완수해 주는 마지막 장치입니다. 여러분의 하늘을 향한 영적인 신실함이.
물론 육적인 것들도 함께 다루어 주어야 합니다. 위로도 해야 되고, 성도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도 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 치열한 전쟁 중이라 그런 것은 돌아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우리의 신앙을 세우자. 신앙인을 세우자. 그리스도인을 세우자.’ 하고 사람을 세우는 데에 우리는 굉장히 투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천국 사람을 만들어 놔야 되니까!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놔야 되니까! 십자가 앞에서 회개한 사람들을 만들어 놔야 되니까! 예수의 피가 회개시키게 만든, 변화시키게 만든 영원히 새로 낳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들어야 되니까! 그것이 시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성과로 판단합니다. ‘이렇게 잘 했으니까 괜찮다.’ 합니다. 과정, 성품, 오늘의 행복, 이런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고 그냥 밀어붙여!’ 이것만 합니다.
저는 한 살부터 헌신되었습니다. 우리 가정 대대로 헌신되었습니다. 우리 가정 대대로 우리의 의견, 우리 삶에 대해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요? 말도 못 꺼냅니다. 그냥 하나님의 일에 쓰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 말로 하면, 희생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 이거 싫어요.’ 하고 판단을 할 수 있는 그런 권한도 주어지질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피를 쏟고 죽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좀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사람들은 저희 가정을 향해 욕을 했습니다. 제 자녀들이 너무 놀랬습니다.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천국시민을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같이 자기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대변하는 자들입니다. 누구를 만나면 내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런 것도 몰라? 넌 나 정도 실력이 되냐?”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과정을 불문했습니다. 죄 같은 것은 신경도 안 썼습니다. 진정성이 없습니다. 지금 교회에 고통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다 교회를 사업에 연결해서 봅니다. 속입니다. 그들 중에는 우리 가정에 엄청난 은혜를 받은 자가 있습니다. 저에게 돌아올 것이 다 그에게 갔습니다. 지금 그 사람은 저를 공격하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베풀었건만, 그는 우리 가정을 폭파시키려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얻을 지분마저도 그가 다 삼켰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교회 안에 와서 교회를 어떻게 해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교회에는 하늘나라로 갈 사람들만 있길 원합니다. 하늘나라 갈 사람들이 참으로 자기를 헌신하기 원하고,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를 사랑해 주고 떠나기 원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회를 괴롭히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주고 가길 원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신자의 기준이 이상한 데 다 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닮은 사람이 천국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사람이 하늘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헌신하고, 희생하고, 사랑하고, 동정하고, 공감하고, 긍휼하고, 자기를 헌신, 투자하는 자들입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데 육신들뿐이고, 탐욕적 요소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뚝 잘라내지 않으면 우리는 소망도 없습니다. 다음 세대들이, 우리의 미래, 중둥부, 고등부 미래가 있는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천국이 없는 자들이 신나서 찬양한다고, 무슨 소용입니까? 하늘나라를 불러올 수 없는 사람인데, 하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는 일들, 말이든 행동이든 다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되고, 하나님의 사역을 오해하지 말아야합니다. 실적 있는 사람을 훌륭하게 보는 그런 오해들 말입니다. 투쟁으로 교회의 것을 빼앗아서 폭파시키고, 누구를 감옥 보내고 그 자리를 빼앗아서 “여기서 우리 다 같이 예배 드립시다.” 합니다. “아아, 저쪽 파괴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구하고, 그러면서 교회를 부수고, “이번에 저들이 징역 10년쯤 나오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과정은 생각 안하고 결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뽀개서 교회를 차지하고 “하나님, 계속 교회를 이어가겠습니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도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결론이 이미 와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무서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 것으로 하자!’ 해서 “같이 기도합시다. 통성으로 하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많은 의심을 갖고 있다가 실제로는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사람은 그렇게 안 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저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 성락교회에 불신이 다 떠나가기 원합니다. 영감이 없는 교회, 정말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말씀을 선포하든 찬양을 하든, 뭘 하든지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혹 그런 영향력이라도 주지 않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저도 찬양할 때 춤추고 합니다. 제가 왜 춤출까요? 춤을 좋아해서 그럴까요?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아픈데도 춤추며 찬양합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때를, 죄를 털어버려라! 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같이 느끼려 하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하나님 안에서 춤추고, 춤추는 세대가 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목사님들은 어떻습니까? 부목사님은 나를 돕는 분들입니다. 나의 분신들입니다. 적어도 감독이 이렇게 애를 쓸 때는 같이 또 애를 쓰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왜 춤 춥니까? 저는 극복해야 합니다. 저는 인도자로서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 시늉도 한다 그러는데, 저도 극복하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노래가 잘 안 익혀집니다. 연세 많으신 성도분이 “아유, 어려워서 못 따라가지. 율동과 함께 따라하는 거 더욱더 어렵고…” 하시는데, 저도 그 마음 압니다. 저는 어떨까요? 저라고 보면 자동적으로 확 나와서 노래가 나오고 할까요? 저도 되게 어렵습니다. 저도 음악 공부, 굉장히 하는 것입니다. 제 머리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미칩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하는 줄 아십니까? 요즘 찬양들이 제가 원래 부르는 노래 스타일도 아닙니다. 저도 옛날에 속한 사람이라, 70년대, 80년대 음악이 저에게 맞습니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스타일이 맞지 않는데 스타일을 오늘에 맞췄습니다. 일부러 제가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어렵고 곡이 밉습니다. 밉고 바쁘지만 익히려고 합니다. 그렇게 선곡 하나하나 하면서 그 곡이 나에게는 사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그래도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좋아하는 노래니까 하자.’ 이렇게 하는 것이 있고, 그래도 성도들이 이 찬양을 대할 때, 그런 즐거움과 기쁨과 감동으로 하기 원합니다. 그냥 쓱 내놓는 곡이 없습니다. 어떤 것은 6개월, 수 개월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계속 고민합니다. 그런 곡들이 많습니다. 누가 ‘아이, 목사님, 그 노래 싫습니다.’ 할까 봐 고민이 됩니다. 저도 어느 정도 되면 빠져야 할 것입니다. 제 나이가 가능할 때까지 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참 버겁고 힘듭니다.
오늘 대예배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점점 더 확대되고, 점점 더 진실하고, 점점 더 은혜 받은 자들이 되고, 우리로 인해 더 구속받고 새로 거듭난 사람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정말 신앙인인 사람들도 있지만, 교회를 끌어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들이 함께 있지만 그냥 데리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천국 갈 것입니다. 저는 저를 미워하고 섭섭하게 한 자들이라도 제 지도를 받고 천국 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너희는 나의 영광이라.’ 사도 바울 말씀처럼 말입니다.
‘목사’라는 것이 무슨 타이틀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으려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고 매일 죽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짜낼 수도 없습니다. 다들 연약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자기 뒤에 자기가 담당하는 성도들이 찬양하고 있는데 자기는 건방 떨면서 팔짱 끼고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도 목자입니다. 양을 치는 자들입니다. 헤드 셰퍼드(head shepherd)가 있고, 그 아래 펠로워(follower) 목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돌보는 양들이 있으니 찬양할 때 열심히 하는 척이라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자세가 맞는 것 아닙니까? 교회가 싫다고 떠나간 자들이 아니라 여기 남아 있는 목사님들이라면 신실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진실하고, 신의가 있는 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 영향력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 말고요. 교회에서 무언가 취하려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현실을 직시하는 자들이길 바랍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그런 의식을 아직도 갖고 있고, 회개가 안 된 그런 모습이 없길 바랍니다.
오늘 오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땅에서는 굉장한 영적 싸움 중입니다. 원래 사단은 하나님을 충실히 섬기는 자로 창조되었는데, 자기가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하나님과 겨루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선동을 해서 많은 천사들을 속였습니다. 천사의 수가 천천만만이라고 했으니 그 수가 수억대 일 텐데, 그중에 3분의 1을 마귀가 떼어갔습니다. 하늘이 분열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쫓아내서 땅에 내던져 버리셨습니다. 이제 다 영원한 멸망할 것입니다. 그들이 여기 있습니다. 어디에 있나요? 이 세상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공중에 있다 했습니다. 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힘든 것입니다.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안 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눈으로는30%만 보고 70%는 영적인 영향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 영에 속한 사람들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이 알랴?[1]’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심폐를 보신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생각도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이런 지식이 있으랴?’라고 한 자들이 있었는데, 이런 비슷한 형태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린도전서 15:50)
영에 속한 사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에 지배되지 않고 하나님 나라가 잘 되기 위해 자기 몸을 다하여서 돕고, 그 나라를 위해 추구하고,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영적인 축복이 고스란히 잘 보호되어서 하늘로 전부 올리우고, 인도받을 수 있게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를 영적인 교회로 잘 간수해 주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세상 것과 마구 섞여 있는 교회, 세상 가치로 마구 휘둘려지는 교회, 하나님을 닮지 않은 사람들이 활약하는 교회 말고, 우리 하나님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그리스도의 충만이 그대로 증명된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역사해 주시고, 영에 속한 우리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들은 우리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뜨겁게 감동하여 주시고, 역사해 주셔서 오늘의 말씀이 날아가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오래 남아서 저들을 지도하고 인도하는, 우리 하나님의 제공하신 길잡이, 중요한 원칙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시 73:11)
[출처] 20241020 영에 속한 사람들(고린도전서 2:12~14)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