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다의 아사왕과 북이스라엘 바아사왕 사이의 전쟁
(열왕기상 15장 16-22절)
16-17.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콜 욤) 전쟁이 있으니라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콜 욤은 문자적으로는 모든 날들 이란 뜻이다. 남북 분열 초기부터 전쟁이 있더니 각각 3대 왕에 이르도록 전쟁이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대하 14장 1절에는 아사 즉위 후 십년 동안 평화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여로보암의 말기 2년, 나답의 2년, 바아사의 6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은 전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스마라임 전투에서 아비얌에게 패전한 이후 세력을 회복하기도 전에 정권이 교체되는 등 불안정한 북왕국 내부의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아사는 어느 정도 정국이 수습되자 다시 남유다와의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처럼 분열 왕국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끝없는 전쟁의 악순환이다.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예루살렘 북방 약 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바아사는 이곳을 점령함으로써 백성들의 남하를 제지하고자 했다. 유다 왕국이 평화를 누린다고 하는 소문은 북 이스라엘 곳곳에까지 전해졌고, 그 소문을 들은 자들 중 대거 남하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바아사왕은 라마를 기반으로 하여 남하 무리들을 강제 저지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유다 정복을 위한 전초 기지로 라마는 남유다의 정치,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였으므로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 따라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유다의 아사왕은 황급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비책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18-22.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르호보암 당시 성전과 왕궁의 곳간에는 애굽의 시삭에게 약탈당하고 남은 것들은 남유다왕 아비얌이 여로보암과의 싸움에서 탈취한 보물들과 아사가 구스를 물리치고 탈취한 물건 등이 채워져 있었다.
아사가 많은 보물들을 아람의 벤하닷에게 바치고 구원병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은, 북이스라엘 바아사의 침공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는가를 말해 준다.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아람왕 벤하닷 1세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와 동맹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 동맹은 매우 가변적이어서 필요와 이익에 따라 파기와 재동맹이 거듭되었다.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파라르)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파라르는 깨다, 취소하다, 무효로 하다 라는 의미로 조약의 취소, 동맹의 일방적 파기를 의미한다.
바아사의 북이스라엘 군대는 잘 준비된 강병이었다. 이들의 공격에 수세로 몰린 남유다 아사왕은 아람의 벤하닷을 매수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한 것이다. 즉 전선이 남쪽 라마로 치우친 동안 아사는 무방비로 노출된 후방을 공격하여 북이스라엘군을 당황케 하려 한 것이다. 이 작전은 주효했지만, 아사는 이로 말미암아 선지자 하나니의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아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벤하닷)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아람의 벤하닷으로서는 아사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막대한 금품 수수가 따르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무방비 상태의 북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영토 확장 및 무역로 확보를 꾀할 수 있는 호기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벤하닷에게 이 지역은 다메섹에서 갈릴리를 경유하여 지중해에 이를 수 있는 대상로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의 확보는 다메섹으로서는 두로와의 교역 뿐 아니라 지중해 무역이 보장되는 의미를 띤 것이다.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당시 바아사의 전투 병력은 라마 부근으로 집중 투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람의 벤하닷 군대는 오히려 후방을 공략, 납달리 지명을 허물어 뜨리고 그 기세를 몰아 디르사를 향해 계속 직진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바아사는 수도 방위를 위해 급히 라마에서부터의 퇴군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디르사는 북방 전략에 치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여로보암이 세겜에서부터 천도한 도시였다. 요단강 동편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특히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데 오므리가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기 전까지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다.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사가 전국에 강제 총동원령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바아사는 다메섹 침공에 뒷수습도 제대로 못한 채 황급히 철군하였다. 그래서 라마에 건축 자재들을 아사가 탈취해 오히려 자신의 국경 성읍들을 요새화한 것이다.
게바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라마의 동쪽 그리고 예루살렘 북동쪽 9.6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로서의 유다 왕국의 전통적인 북쪽 경계로 간주된다. 또한 이곳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을 띤 곳이기도 했다.
미스바는 게바와 마찬가지로 북이스라엘과의 경계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며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또한 미스바는 종교적 처소이기도 했다. 한편 라마에 남겨 놓은 건축 자재로 도리어 국경을 강화한 아사는 이로써 바아사의 남진을 좌절시켰다. 그러나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을 치게 한 아사의 전략은 선지자 하나니의 비난거리였다.
(요약 정리)
열왕기상 15장 16-22절에서 남유다의 아사 왕은 북이스라엘의 위협(바아사의 라마 건축)을 막기 위해 성전의 은금을 이방 나라인 아람에 바쳐 동맹을 맺는다.
아사는 초기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종교개혁을 이룬 왕이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 닥치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대신 세속적인 방법(외교적 뇌물과 이방 군대)을 의지했다. 이는 영적 안목이 흐려지고 문제 해결의 주체를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옮긴 불신앙의 모습이다.
아람 왕에게 보내진 은금은 본래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곳간에 있던 보물들이었다.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성물을 훼손하고 이방 세력과 타협한 것은, 눈앞의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영적 가치를 저버리는 행위였다.
아사 왕은 아람을 이용해 위기를 넘기고 라마 건축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아사와 아람 사이에는 끊임없는 전쟁과 긴장 관계가 시작된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세상과의 타협은 당장의 문제 해결은 될지언정, 하나님이 주시는 근원적이고 영원한 참된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선지자 하나니의 비난을 통해서 잘 보여준다.
성도에게 있어서 영육간의 문제와 갈등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문제의 해결을 외부로 돌린다면,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고통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고, 눈에 보이는 현상을 붙잡으려고 하는 인간들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상황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뚜렸이 나타난다. 따라서 믿음을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과의 교제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뜻을 구하고, 영적인 힘을 얻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