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인 사내
토마스 하디
그와 내가
어떤 오래된 여인숙에서 만났다면
마주 앉아
단숨에 술 여러 잔을 들이켰을 텐데!
하지만 보병으로 사대에 정렬해
서로 얼굴을 향해 조준하여
그가 나를 쏘듯 나도 그를 쏘아
그를 대신해 나는 그를 죽였다.
나는 그를 쏴 죽였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는 내 적이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래 그가 내 적이란 것은
분명하다. 비록
그의 입대 동기가, 아마
별 생각 없이 - 꼭 나처럼 -
실직해서 - 그의 세간을 팔았기 - 때문이리라
다른 이유는 없지.
그래, 전쟁이란 이 얼마나 해괴하고 우스운 짓인가!
너는 한 친구를 쏴 죽였다
어느 선술집에서 만났다면 술 한잔 샀을,
아니면 반 크라운을 도와줄 수도 있었을 그 친구를.
토마스 하디(1840~1928)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대표작은 『귀향』,『테스』,『미천한 사람 주드』 등이 있다.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인습과 속물적인 근성, 편협한 종교인의 태도를 비판했다.
- 박경장 해설·정일 그림,《첫 키스는 사과 맛이야 2 사춘기를 위한 아름다운 영미 성장시》(다산북스,2012), 182~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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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나온 책을 왜 이제야 펼치게 되었나, 후회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름다운 영미 시를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이렇게 골라 놓은 책도 흔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글쓴이의 해설은 알맹이도 있고, 시에 대한 정감을 잘 살려 놓았다는 느낌이다. 글쓴이 말대로 “사춘기 시절이야말로 ‘시를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자 ‘시가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어른들에게 더욱 권하고 싶어진다. ‘아, 내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아직도 숨 쉬고 있구나.’ 하고 느낄 게 분명하다.
토마스 하디가 <그가 죽인 사내>에서 노래하듯, 모든 전쟁은 다 그렇다.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전쟁은 그 자체가 인간이 가진 탐욕에서 출발하니까. 그 탐욕을 ‘불의’와 ‘적’이란 물감으로 덧칠했을 뿐이니까. ‘그와 내가 / 어떤 오래된 여인숙에서 만났다면 / 마주 앉아 / 단숨에 술 여러 잔을 들이켰을 텐데!’ 말이다.
세월호 사태로 눈물 머금고 불렀던 노래,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말아요)도 만날 수 있고, ‘그대 발밑에 깔아 드리오니;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대 밝고 가는 것 내 꿈이오니.’라고 노래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The Cloths of Heaven>(하늘옷감)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