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100卷-列傳13-鄭世裕-002
○叔瞻累官樞密院知奏事高宗初參知政事金山王子兵闌入北鄙叔瞻爲中軍元帥
정숙첨은 벼슬이 여러 번 올라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되었고 고종 때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로 되었는데 금산 왕자(金山王子)의 군대가 북부 국경에 침입할 때에 정숙첨이 중군 원수(中軍元帥)로 되었다.
行至興義驛軍中自驚奔還屯國淸寺號令不行部伍無紀律人皆缺望.
그의 부대가 흥의역(興義驛)에 도착했을 때에 군대 내부에서 까닭 없는 소동이 생겨 병사들이 모두 놀라 도망하므로 국청사(國淸寺)로 퇴각 주둔케 하였는데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대오의 규율이 없게 되어서 사람마다 실망하였다.
從軍僧徒謀殺崔忠獻忠獻捕鞫之辭連叔瞻乃罷還
그때 종군한 승도(從軍僧徒)들의 최충헌 암살 음모 사건이 발각되어 최충헌이 중들을 체포 국문했는데 사건이 정숙첨에게도 연루되어 파직당하였다.
叔瞻以忠獻子怡爲壻恃勢頗驕橫大起第宅三四區彌滿數里
정숙첨은 최충헌의 아들 최이(怡)를 사위로 삼고 그것을 자세하여 자못 교만 횡포하였으며 큰 집 3∼4구(區)를 지었는데 면적이 수리(里)에 가득 찼다.
及爲元帥多受軍卒賄放遣之
그가 원수로 된 후로는 병사들의 뇌물을 많이 받고 제대시키곤 하였다.
常語軍中曰: "崔忠獻斲喪王室自招寇賊反遣我討賊諺所謂人則食醢我反飮水者也."
그는 진중에서 항상 말하기를 “최충헌이 왕실을 약화시켜서 반란이 일어나게 만들어 놓고 나를 시켜서 토벌하라 하니 이것이 이른바 육장은 남 주고 나는 물만 마시는 격이다”라고 하였다.
至是忠獻欲殺之賴怡營救流河東後拜平章事.
이에 최충헌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최이가 극력 주선하여 하동(河東)으로 귀양갔다가 그 후에 평장사(平章事)로 임명을 받았다.
兄右僕射稹亦貪鄙奪占人田又不能正家妻妾無分乃降授工部尙書.
정숙첨의 형 우복야(右僕射) 정진(鄭稹)도 탐욕스럽고 비루하며 남의 토지를 강점하였고 또 집안을 바로 단속하지 못하여 처, 첩의 분별이 없었으므로 공부 상서(工部尙書)로 강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