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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톨릭 성인록
▶성 비토와 모데스토, 성녀 크레센시아 순교자(6.15)◀
△ 성 ¹비토와 성 ²모데스토, 성녀 ³크레센시아 순교자
▶ 성인명: ¹비토 (Vitus)
: ²모데스토 (Modestus)
: ³크레센시아 (Crescentia)
축일: 6월 15일
성인구분: ¹성인
: ²성인
: ³성녀
신분: ¹소년, 순교자
: ²순교자
: ³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03년경
같은이름: ¹바이터스, 비또, 비뚜스, 비투스
: ²모데스또, 모데스뚜스, 모데스투스
: ³크레센씨아, 크레센티아, 크레셴시아, 크레스켄티아, 크레쎈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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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설명 :
• 전승에 의하면 ¹성 비투스(또는 비토)는 시칠리아(Sicilia) 섬에서 원로원 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을 신봉하는 사람이었으나 유모인 ³성녀 크레스켄티아(Crescentia)와 그녀의 남편이자 가정교사였던 ²성 모데스투스(Modestus)는 열심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이들에게 감화된 ¹성 비투스는 12세 때에 그들의 인도로 남몰래 세례성사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결국 총독의 힘을 빌려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그리스도인으로 고발까지 했다.
총독은 훈계와 고문까지 가하며 신앙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 실망한 아버지는 세상의 쾌락이나 아름다운 여성을 이용해 아들의 신앙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이 또한 수포로 돌아갔다.
¹성 비투스는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유모 ² ³부부와 함께 집을 나와 배를 타고 오늘날의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Taranto) 만(灣) 서북방에 위치한 루카니아(Lucania) 지방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그곳에서 잠시 평화롭게 신앙생활을 하며 보냈으나
곧 주위의 이교도들에 의해 고발되어 재차 법정에 서게 되었고 로마(Roma)까지 끌려갔다.
• 로마에서 성 비투스는 하느님께 기도하여 여러 기적을 행하였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를 가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아들이 악령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치유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상에게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자 ¹성 비투스와 그 일행은 마술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죄목으로 갖가지 고문을 당했다.
전설에 의하면 납과 기름과 역청이 펄펄 끓는 가마 속에 세 사람을 던져 넣었지만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 모두 무사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재판관은 그들을 맹수의 밥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이 또한 맹수들이 양순해져 덤벼들지 않자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더욱 참혹한 고문을 가해 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 ¹성 비투스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특히 독일과 그 인근 지방에서 활발히 행해졌고, 그의 유해 일부가 작센(Sachsen)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상본을 보면 보통 한 소년이 순교를 상징하는 팔마 가지를 손에 들고 있거나 펄펄 끓는 가마 속에서도 살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¹성 비투스는 배우와 무용수, 간질환자의 수호성인이며
중세 유럽에서 공경 받던 14명의 구급(救急) 성인 가운데 한 명이다.
중세 후기 독일과 라트비아(Latvia) 등 일부 국가에서는 성인의 축일에 성인상 앞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지냈는데, 그 춤이 인기를 얻어 ‘성 비투스의 춤’(Saint Vitus Dance)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간질병이나 신경장애 같은 병을 지닌 이들이 성 비투스의 춤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또한 폭풍우나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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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성인록 ▷
< 6월15일 성 비토, 성 모데스토, 성녀 크레센시아 순교자 >
........ ( 안젤라 | 2010.06.14 Ud.)
△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성모자 -
the Madonna of St Vitus Cathedral in Prague - UNKNOWN MASTER, Bohemian
c. 1420.Tempera on wood, 89 x 77 cm.National Gallery, Prague
▶ 축일:6월15일
< 성 비토, 성 모데스토, 성녀 크레센시아 순교자 >
- ST. VITUS, Saint Modestus and his nurse Saint Crescentia
- San Vito Adolescente martire
(- (영) 성성 비토,성 모데스토와 그의 간호사 성녀 크레센시아
- (이) 성 비토 청년 순교자)
- Died :boiled in oil c.303 in Lucania, Italy
(- 사밍: 303년 이태리 루카니아에서 기름불로 화형당함)
- Mazara del Vallo (Trapani), III sec. ~ Lucania, 15 giugno 303
(- 3세기, 마자라 델 발로 (트라 파니)에서 生 ~ 303.6.15, 루사니아에서 순교)
- Vito = forse forte, virile, che ha in sé vita, dal latino
= perhaps strongly, it turns them, that she has in himself life, from the Latin
( -비토= (이) 어쩌면 강한, 사내 다운, 그 자체로 생명이있다. ☜라틴어 =
(영) 아마도 강하게, 그것은 그것들을 돌린다. 자기 인생에있어, ☜ 라틴어)
* 위 (한역 韓譯/ '19.6.15, -아타시 韓)
비토는 '어두운'이란 뜻이다.
어떤 전승에 의하면, 성 비토는 시실리의 어느 원로원의 외아들로서
12세때에 크리스챤으로 개종하였다.
그의 개종과 기적들이 시실리의 총독 발레리안에게까지 알려지자,
총독은 그를 불러 신앙을 포기토록 하였지만, 성공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성 비토와 그의 가정 교사이던 성 모데스또
그리고 종이던 크레센시아가 루까니아로, 그 다음에는 로마로 끌려갔다.
성 비토는 로마에서 황제 디오클레시아노의 아들을 악령에서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희생바치기를 거절한 비토에 대하여
마술로 속인다는 죄명으로 갖가지 고문을 하였다.
그러던 중,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의하여 신전이 무너졌을 때,
한 천사가 그들을 구하여 루까니아로 데려갔고, 그들은 여기서 운명하였다.
이상은 성 비또의 기행록에 나오는 설명문이며,
여기에 소개되는 유모 크레센시아가 바로 크레센시아 성녀이며, 성 비또와 함께 순교하였다
성 비토 공경은 특히 독일에서 활발하고, 그의 유해는 삭소니아로 이장되었다.
또한 그는 간질 병자의 수호성인인데, 성 비토의 춤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성 비토는 폭풍우의 수호성인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프라비안, 성 베드로 순교자와 비토스 -
Sts Thomas Aquinas and Flavian, Sts Peter the Martyr and Vitus-LOTTO, Lorenzo
1508.Oil on wood, 155 x 67 cm (each panel).Pinacoteca Comunale, Recanati
성 비토, 그의 유모 성녀 크레센시아와 그녀의 남편 성 모데스토에 대해서는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기록이 매우 적으나 그들에게 대한 공경은 중세기부터 상당히 행해진 것인데,
그 중에서도 소년 비토는 14인의 구난성인(救難聖人) 중의 한 분이시다.
그들은 4세기 말경, 디오클레시아노 황제가 그리스도교도에 대해 로마 제국의 마지막 박해를 행한 시기의 사람이었고, 비토의 태생지는 시칠리아 섬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히라스로 우상교를 신봉하고 있었으나 유모인 크레센시아와 그녀의 남편 모데스토는 열심한 그리스도교 신자면서 친절 유화한 정직한 사람이었으므로 비토는 어린 마음에도 깊이 느끼는 바가 있어 스스로 원해 그들의 손에 남몰래 거룩한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 학자 축일:1월28일.게시판1590번.
*성 플라비아노 주교 순교자 축일:2월18일
*베로나의 성 베드로 순교자 축일:6월4일(4월29일)게시판1196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비토는 유모 부부와 합심해 열심히 그리스도교를 신봉했는데, 산 위에 세워진 마을이 숨겨질 수 없듯이,
그의 마음씨나 행위는 특별히 눈에 띄게 되어, 결국 자식이 그리스도교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히라스는
열화(烈火)와 같이 대노해 기필코 조상의 종교로 돌아오도록 하고자 어떤 때는 감언이설로 꾀고,
또 어떤 때는 괴롭히기도 하는 등 갖은 수법을 이용해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한 번 뜨거운 진리의 빛을 받은 이상 결코 암담한 이교의 암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비토가 정성을 다 들여 배교의 불가능한 이유를 말하니, 아버지는 점점 분노하며
“부모에게 말대답을 하는 불효 자식, 그러한 불효의 처지에서는 부모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다” 하고
자기 아들을 사교도로서 관헌에 고소했다.
그래서 비토는 형장에 끌려나가 법관 발레리아노에게 여러 가지로 훈계도 받고 고문도 당했지만 절대로 마음이 변치 않으므로 할 수 없이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냈다.
히라스는 관헌의 능력으로도 자식의 마음을 돌리게 하지 못했다는 점에 매우 낙심해, 이번에는 여자로서 세상의 쾌락을 누리게 한다면 귀찮은 그리스도교를 버리게 되리라는 신념 하에 일부러 예쁜 젊은 여성을 그에게 가까이 하도록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한 유혹에 빠질 비토가 아니었다.
히라스의 간계는 이번에도 수포로 돌아갔고 비토는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 생각하고 마침내 유모의 부부와 상의해 함께 떠날 것을 결심하고,
배로 대륙을 향해 이탈리아의 남부, 지금의 살레루노만(灣)의 부근에 상륙했던 것이다.
세 사람은 잠시동안 거기서 남의 눈을 피해 가며 고요히 성스러운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곧 주위의 우상교도들에게 교발되어 재차 법정에 나서는 몸이 되었다.
비토가 하느님께 기도하자 여러 가지의 기적이 일어나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태자의 병도 그의 덕분으로 완쾌되었다고 전해지나, 그래도 법관은 엄중히 그들에게 배교를 강요하고, 이를 거절하자 우선 납과 기름과 역청이 펄펄 끓는 가마속에 세 사람을 던져 참혹하게도 익혀 죽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보호로 아무 고통도 없이 온전히 무사했으므로
법관은 상기(上氣)되어 이번에는 맹수의 밥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이 역시 맹수가 달려들지 않고 고양이처럼 얌전히 있었으므로
기가 막혀 최후에 혹독한 고문에 처해 간신히 그 생명을 빼앗았다.
때는 303,4년경으로 추측된다. 비토의 나이 겨우 15세였다.
성 비토의 상본은 흔히 팔마 가지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부는 모습이라던가,
혹은 가마 속에 있으면서 천사께 수로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중 먼저 것은 그가 순교의 승리를 획득한 것을 의미하고 나중 것은 불가마의 형을 받아도 무사했다는 기적의 전설에 유래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우표로 보는 성인전에서)
♬7.Os Lusti-베네딕도수도원
ⓐOs Lusti- Gradual(modo Ⅰ):
https://youtu.be/3JuLvbCvYTM
ⓑCanto Gregoriano - Monges Beneditinos De Silos(Gregorian ch.):
https://youtu.be/wWfj-8VD6IE
* ⓑ☞01. .. .. [07. Anon: Os Lusti- Gradual(modo 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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