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은 싫어도 꽃잎은 좋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브랜치 브룩 파크(Branch Brook Park)에는 벚나무가 18종,
5,000여 그루나 있어서 미국에서 가장 많은 벚나무가 있는 공원으로 유명하다. 뉴저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뉴왁과 그 옆의 벨빌이라는 마을에 걸쳐져 있는 이 공원은 규모가 제법 크다. 해마다 4월에 벚꽃이 활짝 피면 벚꽃 축제가 열리고 밤에 야외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지만,
공원 주변이 깨끗하지 못하여 자주 찾게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밤에는 안전 문제로
찾기가 꺼려진다.
며칠 전 아침에 아내가 그곳으로 벚꽃 구경이나 가자고 하자 어릴 적 벚꽃 필 때 내 고향 삼척 죽서루
경내에서의 밤 벚꽃놀이가 생각났다. 누님이 ‘사꾸라가 만까이 했다더라’며 벚꽃 구경을 핑계로 나들이할 때는 어머니는 늘 동생들을 딸려 보냈다.
누님은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으레 ‘사람들이 하얗게 모였더라’고 보고했다. 적지 않은 벚나무에 가득 피었을 고향 벚꽃이 떠올랐다. “지금쯤 죽서루에 벚꽃이 만개해서 밤마다 사람들이 하얗게 모이겠네.” 누님의 일본어 표현을 섞어
쓰면 “いま(今)ごろはサクラが まんかい(満開)だろう”가 되겠다.
벚꽃 동산에 가려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고속도로 진입로에 막 들어서자마자 앞창에서 딱 소리가 났다. ‘딱’에 쌍디귿을 다섯 개 정도는 붙여야 그 소리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을 만큼 갑작스럽고 큰 소리였다. 놀라서 아내 얼굴 한 번 보고 차창 한 번, 또 아내 얼굴 한 번 보고 차창을 보았더니 손바닥 길이만 한 가느다란 금이 보였다. 아마 앞차
바퀴가 튕겨낸 작은 돌이 부딪혔나 보았다. ‘웬 금!”하고 쳐다보는
사이에 금은 더 커져서 손바닥 두 개 길이 만하게 커졌다.
소심하고 성급한 나는 그만한 일에도 허둥대었다. “공원 가기는 다 글렀다. 팰팍(한인 밀집 지역)으로 차를 돌리자”라고 말하고 바로 스마트폰으로
자동차 유리 전문점을 찾아보니 20여 분 거리에 한인이 운영하는 데가 있었다. 바로 거기로 전화하고 그들이 묻는 대로 차종, 연식, 모델…등을 알려 주었더니 가격은 $320이고,
30분 정도면 유리를 구해 놓을 테니 바로 오면 된다고 했다. 역시 한국인이 일
처리가 빠르지. 마음이 급하기도 했지만, 빠른 일 처리를 기대하고 가격이
더 쌀 수도 있는 미국 업체 대신 한국 업체를 선택하기로 했다.
도착하고 바로 금 간 앞 유리를 떼어내고, 새 유리로 갈아 끼우는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고 일하는 분들이
친절해서 마음이 놓였다. 우중충한 창고 같은 건물, 가난한 동네 티를
내는지 지저분한 옆집과의 사이에 난 공터의 쓰레기통 옆에서 간식을 풀어놓고 요기를 했다. 화창한 봄 날씨를
즐기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감상하며 먹기로 한 점심을 엉뚱한 곳에서 풀어놓다니. 사방을 둘러보니 벚나무
같은 건 눈에 띄지 않고, 자동차 유리 전문점, 브레이크 전문점,
자동차 바디 전문점, 트랜스미션 전문점 게다가 자동차 렌트 회사까지 온통 자동차
관련 업체만 둘러싸서 주변이 우중충하니 별로 즐겁지 않았다. 적지 않은 돈까지 쓰게 되었으니 한심스러웠지만,
신속하게 마무리된 걸 다행스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날아다니며 배설하는 희한한 능력이 있는, 새라는 동물이 가끔 허여끄름한 물건을 차에 뿌리고 내빼기도 한다. 그때마다 기분이 더럽기는
하지만, 혼내줄 재주가 없어서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라며 구시렁거린다. 딸들이 어릴 적에는 그럴 때마다 ‘Fresh poop!’이라고 서로 마주 보며 깔깔거리면 나도 덩달아 즐거워져서 새(鳥) 똥이 새(新) 똥으로 보여서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딸들이 즐거워했으니까.
아침 일찍 차에 노란색 꽃가루가 덮여 있거나 흰색 또는 분홍색 꽃잎이 가득 뿌려져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게 날아가 버리는 게 아까워서 차를 움직이기가 싫다. 두어
해 전 여름에는 밤새 나무 밑에 주차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차가 온통 끈적끈적한 물질로 뒤덮였었는데 송진 비슷한 거였는지 아무리 문질러도
지울 수 없어서 특별 세차로 제거하느라 거금을 들인 적도 있었다.
돈을 적잖게 들였지만, 말끔한 새 유리로 세상을 보니 마음마저 밝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제발 돌멩이가 날아와 유리가
깨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송진도 싫다. 새도 제발 내 차 말고 숲속에서
남몰래 배설하는 예의를 갖추거나 다른 차에다 실례하면 좋겠다. 하지만 꽃가루나 꽃잎은 매일 떨어져도 좋다.
(2018년 4월 29일)
첫댓글 명수 보게나. 내가 한 동안 글을 올리지 않은 까닭은 아파서가 아니었네. 만약에 내가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조용히 있지 않고 동네방네 시끄럽게 소문을 내었을 걸세. 여기 올리는 글은 대개 동문들의 공통 관심사가 될 만한 글이거나 우국충정에 불타는 글인데, 김형기가 올리는 글은 한가롭거나 주제가 자질구레해서 이런 글을 계속 오리는 게 실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네. 글을 갑자기 안 올리면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올리기는 하네만, 아직도 '이런 글을 계속 올려도 되나?'하는 생각이 든다네.
오! 아픈 게 아니었다니 기쁘네. 늘 삶의 향기 오롯이 배어나는 형기의 글을 두고 누가 세상사 밖의 한가함이나 읖조린다 힐난할까? 세상을 관조한다고 우국충정이 식을까? 잔잔한 마음의 글에, 공유하는 추억의 이야기에 빙그레 웃음지며 공감하며, 인생행로에서의 피곤함을 달래는데 무엇이 시비될까? 형기의 글은 친구들은 물론 부인들도 애독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네. 꺼리지 말고 계속 글 주시게. 벚꽃! 강원도 도계국민학교에서 서울로 중학교 진학하려 1961년 상경해 고모네로 왔더니 구경시켜준 게 창경원 야사꾸라. 인파에 밀려 가족들과 헤어져 비상을 걸어놓고 촌놈이 신설동까지 홀로 걸어왔던 추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