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은 온통 꽃대궐이다.
광양 매화에 이어 구례 산수유, 진달래, 산벚꽃, 철쭉이 번갈아 피어난다.
산수유 축제는 두 곳에서 벌어진다.
이번 주말부터 구례에서, 그리고 이달 말 경이면 남원에서 산수유 축제가 벌어진다.
남원, 노봉마을에는 봄이면 각시 복숭아나무와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늘 저 흐드러진 산수유나무 아래에서의 정사를 꿈꾸지요... 역사와의 정사입니다."
최명희는 수줍은 문학 소녀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아 자칫 평범한 여자의 길을 걸을 뻔 했던 여자였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겪은 교통사고는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고,
어쩌면 우리 문학사에는 행운이었다.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반병신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난 최명희는 다짐했다.
인생이 이렇게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살았던 흔적을 글로 남기리라.
그리고는 대하소설 혼불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남한 일대와 일본, 만주를 뒤지며 자료를 찾았고,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혼불'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혼불 중반부를 쓰기 시작했을 때 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최명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몇 번의 혼절을 거듭하며 혼불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녀도 인간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개 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원고지 넘길 힘도 없이 탈진해 있을 때 이마의 땀 닦아 주며 마침표 하나 찍어주는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결혼도하지 않았으니 주위에 위로해 줄 사람 하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17년에 걸친 뼈를 깎는 작업 끝에
혼불 10권을 완성하고는 고통스러 운 육체를 훌훌 벗어 버린 것이다.
예리한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혼불 후반부로 가면 왠지 전반부에 비해 힘이 빠지고,
문장이 느슨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후반부를 쓸 무렵에는 이미 탈진상태였던 것이다.
2001년 그녀의 3주기를 기해서 남원에서는 최명희의 혼불 학습관을 문열었다.
혼불의 무대였던, 지금은 폐가가 된 종가집을 매입하여 초가집으로 단장하고,
문학도들의 혼불 체험과 공부방으로 개방했다.
그리고는 문학에, 사랑에 열병 앓는 젊은이들 이곳에 와서
마음껏 문학과의 정사에 빠질 수 있도록 혼불 분위기를 재현해 놓았다.
이 봄 최명희의 흔적을 한 번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남자서경
첫댓글 혼불과의 정사를 위해... 이 봄이 가기전에 한 번 찾아 보고픈 마음이 드네요.
사람은 갔어도 이름을 남긴 혼불의 최명희 작가에 대해 다시한번 더!..감사합니다!.^^*
문학과 지성이 겸비된 좋은 글입니다. 남원을 두 번 가보았는데 그곳은 못 갔습니다. 우리 같은 하잘것없는 인생은 그냥 문학과의 뭐 보다 님과 만나 독한 술을 한잔하며 남원 골 춘향이 이야기나 하고 싶습니다. 늘 행복하이소!
남원을 두 번씩이나 찾아갔었건만, 작가 최 명희의 혼불 학습관은 전혀 몰랐었네요..좋은 자료 감사 합니다.
, 지금 섬진강 자락엔 매화 축재와 19일 부터 산수유 축제가 한창인 적절한 시기에 瑞卿님이 최명희님의 "혼불"을 잘 소개 해 주셔서 그곳을 찿는 이들에게 많은 유익한 정보가 되리라 봅니다. 瑞卿님 감사합니다.
저는 문학관 가보았는데 아주 고즈넉하고 좋았어요. 혼불 작가의 혼이 담겨저있어 남원 들리는길에 들려 볼만한 곳입니다. 다시 추억을 생각하게 해주시니 고마울 박에요.
최명희씨가 존경스럽습니다. 꺼져가는 생을 연민으로 울지않고 불굴의 의지로 목표를 이루어낸 그분의 작품을 꼭 한번 접해보구싶습니다 .자료 고맙습니다.
그야말로 혼불을 쓰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한것 같은 작가입니다~가는길에 한번 들리고 싶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