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만드는 잡지 <월간 잉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75%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잉여의 원인으로 ‘자신’을 꼽았으며,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쓸데없는 짓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왜 청춘들은 스스로 ‘잉여’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세대론 담론의 등장 이전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치 사회 분야를 넘나들며 가장 많은 글을 쓴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이자 ‘세대론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저자 한윤형은 ‘20대의 목소리’를 사수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했다.
그는 청년 세대가 가진 냉소와 무기력을 발견했고, 모순 속에 놓인 자신의 20대를 통해 오늘의 청년 세대의 문제를 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청년 문제는 ‘대한민국 모든 사회 문제의 총체’였고, 냉소는 좌절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충격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하게 되면서도, 시대와 사회를 탐구하는 저자의 작업을 통해 세대를 넘어선 사회 문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청춘의 존재 선언’을 만나게 된다.
열폭과 근자감에서, 중2병과 엄친아까지
어쩌다 보니 취직을 하게 되었고, 내 요리 실력은 몇 종류 국과 찌개를 끓일 수 있는 수준에서 멈춰 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나는 이제 평균적인 동년배 남성에 비해 요리에 대해 떠들 수 있는 축에 속한다. 어린 시절의 우려는 뒤집혔고, 나는 다른 방식으로 ‘처진’ 인생이 되었다. – 1부 <잉여의 이유>, 자의식
육군 장교로 일하는 7살 많은 사촌형은 벌써 결혼을 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부모님은 사촌형과 저자를 비교하며 언제쯤 손주를 안겨다 줄 수 있을지 계산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저자는 부모님의 꿈을 자신이 실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쓰는 자신의 처지를 부모님에게 전혀 납득 시킬 수 없다. 그는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은폐하고 시간을 질질 끌어서 선택을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한탄한다(28쪽).
이런 일은 비단 저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많은 20대와 청년들은 각 가정에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하늘을 보며 탄식을 한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슈퍼에서도 ‘판매자의 수다를 듣는 일 없이 혼자 물건을 고르고, 인격적 관계를 맺을 일 없는 캐셔에게 카드를 건네고 쿨하게 떠나고 싶다(32쪽). ‘특별한’ 관계를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는 그렇게 청년 세대에게서 선·후배들을 빼앗아 갔고(37쪽) 그렇게 모두 ‘혼자’가 되었다. 지하철 환승 통로와 같은 경쟁(62쪽)은 재력과 자본을 재능이나 능력이라고 부른다(76쪽).
이 책에는 등장하는 많은 신조어와 유행어들은 청년 세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잉여, 열폭, 엄친아, 어그로, 중2병, 지잡대, 키보드워리어, 근자감…….
오늘날의 청춘 세대의 자조적 냉소를 표현하는 이런 용어들은 이들을 더 이상 청년 세대를 ‘청춘’이란 단어로 부를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슬프면서도 실소를 자아내는, 우리 사회를 사는 ‘웃픈’ 청춘들의 정서이자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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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의 자조적 냉소는 어디서 오는가
“특정 세대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어떤 생산 과정에 참여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진 현상은 한 세대를 무기력증과 우울함이 결합한 어떤 정신 상태로 내몰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하기에 필요한 만큼을 생산한다. 그리고 존재의 이유는 맹목적이며,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 나오며(300쪽)
스스로를 생산적이지 못하고 쓸모없다고 여기는 냉소와 열패감은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오늘날 청년층의 대표적인 정서가 되었다. 이 냉소의 정체는 “차라리 군대에 돌아가고 싶다(27쪽)”는 탄식이거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일에 대한 의미’를 찾는 어느 재무설계사의 멘탈 교육과 같은 몸부림이다.
2000년대를 풍미한 게임이자 PC방 문화의 진원이었던 스타그래프트 리그는 평범한 소년들도 스타가 될 수 있는 ‘공평한 경쟁’이라는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소년들의 꿈의 리그’였다. 이 소년들은 자라서 ‘소년들의 분투’인 스타 리그 경기를 온라인에서 다시 보기 위해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취업 포탈 사이트의 취업 정보를 봐야 하는 씁쓸한 현실(95쪽)을 마주한다.
‘자신의 청소년기와 청년기 초반에 누렸던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청년들은(132쪽) 이 사회가 ‘내려가는 사회’임을 알고 있다. ‘냉소’는 ‘좌절’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100쪽).
한국 사회가 잉여 사회가 되는 동안 ‘진짜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투했던 저자는 “왜 그렇게 사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짧은 인생의 키워드들을 뽑아 1부 ‘잉여의 이유’를 썼다.
2·3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대론 담론 이후 실제로는 사라진 당사자의 목소리를 사수하며, ‘정치 오타쿠’다운 집요함으로 바라본 사회와 시대에 관한 냉철한 분석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가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내고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불안의 시대를 넘어 다시 쓰는 세대 진술서
“오늘날의 잉여 인간들은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들”이다. 오늘날의 루저 문화는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빠져드는 정서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고, 그래서 경쟁에서도 승리를 거뒀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날에 희망이 없는 그런 열패자들이다.” ― 루저는 ‘세상 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147쪽)
“도대체 요즘 청년들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라는 기성세대의 훈계와 “우리가 힘든 이유를 왜 아무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가?”라는 말을 들어본 이들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특정 세대가 경제적·정치적으로 ‘끝없이 추락’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실제로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루저는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체다(159쪽).
‘넘쳐나는 멘토’와 ‘20대 개새끼 담론’을 비판하며 잉여와 루저 문화를 내부에서 파헤치는 저자의 작업이 소중한 이유다.
씁쓸하지만 공감가는 청년 세대의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저자의 ‘웃픈’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예언한다.
언제나 자본주의와 타 세대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던 21세기 청년 세대의 자기 진술서인 이 책에서, 우리는 날카롭게 벼려진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적 각성 이상의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