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낫게 하는 부처님의 신통력
병자 도움 주고 위로하는 것이 불자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절에 있던 스님들은 재가 신자의 초대를 받아 공양하러 마을로 내려갔고,
부처님 혼자 절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경에서는 보통 부처님 혼자 절에 남아 공양을 받을 때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선정에 드시려 할 때,
둘째는 하늘의 무리에게 설법하시려 할 때,
셋째는 비구들의 방을 둘러보시기 위함이고,
넷째는 병든 비구를 보살피기 위함이고,
다섯째는 계율을 제정할 필요가 있을 때입니다.
이날도 부처님은 비구들의 방을 일일이 둘러보다가 중병에 걸린 비구승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보살피지 않았던 모양인지 똥오줌에 온몸을 더럽힌 채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괴로운가. 혼자서 이토록 고생하는데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구나.”
부처님은 그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스승님, 저는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병든 이를 돌봐 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이렇게 병에 걸렸는데 아무도 저를 보살펴 주지 않습니다.”
“내가 그대를 돌봐 주겠다. 안심하라.”
그리하여 부처님은 그의 몸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부처님의 손길이 닿자, 비구의 고통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병든 비구를 부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와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뒤 다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편안하게 앉혔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진 비구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비구여, 그대는 오랫동안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았다.
얻지 못한 것을 얻고자 하지 않았고, 도달하지 못한 곳에 도달하려고 하지 않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온갖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또다시 커다란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지극한 간호로 병고에서 해방된 비구는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부처님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까.
손으로 만지시자마자 고통이 멈추었고, 이렇게 마음까지도 편안해졌구나.”
<대지도론 제8권>
<법구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부처님이 손수 환자를 보살피면서 병든 비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육신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일깨워 주거나, 앞으로는 도반이 병들었을 때
살피지 않으면 율(律)에 어긋난다는 조항이 이야기의 끝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정말 모든 병의 원인을
‘전생에 지은 업에 대한 과보(果報)’라고 보는 것일까요?
<대지도론>에서는
첫째, 지난 세상에 지은 업의 과보(果報)로서 병을 얻는 경우가 있고,
이번 세상에 냉기와 열기, 풍기에 의해서 병을 얻는 경우가 있다.
둘째, 지난 세상에서 병의 원인을 찾는다면,
남을 채찍질하거나 매질하고 고문하고 약탈하는 등
중생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이번 세상에 병을 얻는다.
셋째, 이번 생에서 병의 원인을 찾는다면,
몸을 조심하지 않고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며 일상생활에 절도가 없어 병을 얻는다.
넷째, 이번 세상(금세)에 얻은 병에 두 종류가 있으니,
안으로 병이 든 경우(內病)와 밖에서 병을 얻은 경우(外病)이다.
전자는 오장육부가 원활하지 못한 까닭이요, 후자는 사고나 흉기 등으로 얻은 것이다.
이처럼 질병의 원인을 전생과 현세에서 찾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생에 죄를 지어서 그렇다.”라고 단정 짓는
불교계 일부의 발언은 어리석음의 소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병든 자를 도와주고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병자를 대하는 불자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그 마음이 바로 환자를 낫게 하는 부처님의 신통력이 아닐까? 합니다.
-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ㆍ책 칼럼니스트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