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약의 연결고리/김성훈/프로네시스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의사, 올리버 웬들 홈스는 약 처방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어설픈 약의 남용이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 “약물을 모두 바다 속에 가라앉힐 수 있다면 인간에게는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것이고 물고기에게는 그보다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서울대 약대 김성훈(50·사진)교수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약은 되도록 먹지 말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제약회사가 들으면 꽤나 섭섭해할 소리지만 김 교수는 목청을 높여가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신약 개발을 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의 약물 남용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약에 대해 용감해요. 잘 모르면서 함부로 쓰고 함부로 먹습니다. 사실 약으로 완치되는 질병은 거의 없는데도 말이죠.”
김 교수가 ‘생명과 약의 연결 고리’를 펴낸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일반인들에게 약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약의 개발과 사용 양상은 해당 사회의 과학과 문화 수준을 반영하는 척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도대체 약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으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우리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죠. 약에 대한 무지는 비극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차세대 바이오 산업을 주도할 과학자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물공학 석사,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MIT에서는 포스닥(박사후 연구원)을 마쳤다. 2001년부터 서울대 약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과학상(2003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2006년)을 수상했다.
수 십년간 온갖 병원균과 동고동락해 온 김 교수는 질병과 큰 싸움을 벌이지 말라고 조언했다. 핵무기처럼 한방에 끝낼 수 있는 방법만 찾다보면 오히려 ‘수퍼 박테리아’가 등장하는 게 생명세계의 이치라는 것.
“질병은 결코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닙니다. 같이 살아야 할 인생의 일부지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병의 완전 절멸을 목표로 싸우기보다는 우리 건강과 생명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수준에서 싸우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낀다는 그는 “완전한 약을 개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우리 몸이 복잡한 네트워크로 돼 있는 이유는 교만함으로 스스로를 파괴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문득 김 교수 가족들은 아프면 어떡할까 궁금했다.
“가장 많은 부부싸움 원인 중의 하나예요. 아내는 아이들이 감기라도 들라치면 약을 먹이려고 하고 저는 죽을 병 아니면 주지 말라고 하죠. 잘 안다는 사람이 더하다며 타박합니다. 설득하기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