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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Shakespeare’s Village
2006.11
스트랫포드-어펀-에이본은
세기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마을이다.
세익스피어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을 받고
청년시절을 보내고
출타했다가 다시 돌아와
그의 첫 번째 희곡을 공연하고
또 결혼도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희곡을 쓰고 공연하고 사업도 하고 후배를 양성하며
일생을 보내고 영민한 곳,
그의 손길과 발 자취가
돌 하나하나, 풀 뿌리 하나하나에 기록된 마을이다.
어디를 가나 주요한 건물이나 유적지가
세익스피어과 연관되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1970년대에 잠시 다녀온 이후로
문득 문득 그 유서 깊은 아름다운 마을에 다시 가 보고 싶었다.
지난 11월 말
전야의 광풍이 몰아친 후 런던의 새파란 하늘이
또다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래, 다시 가보는 거야.
책을 좋아하는
9살짜리 손녀딸을 앞세우고
매릴본 Marylebone 기차역으로 달려가
길 떠나기에는 좀 늦은 시간이지만
그곳에서 잘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리 조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새파랗던 하늘에 시꺼먼 먹구름이 일더니
소나기가 기차 지붕이라도 뚫을 듯이 퍼붓기 시작한다.
어젯밤 광풍의 여진일까 아니면 새로운 비바람이
몰려오는 것일까……나는 차창 밖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런던의 날씨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며
도착할 때쯤이면 개일 것이라고 어린 것이 어른스럽게 말 한다.
손녀의 말에 위안을 받으니
푸르른 초원에서 하얀 양들이
고물고물 풀을 뜯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소들도 말들도 흩날리는 비를 개의치 않고
열심히 새김질을 한다.
간밤의 폭풍우로 흥건하게 물에 잠긴 들에서도
뿌옇게 살찐 돼지들이 뒤뚱거리며 뛰 놀고 있다.
철도 연변의 나무는 파란 이끼를 입고
깜짝 놀랄 만큼 새빨간 작은 열매를 매달고 있다.
차 창 밖으로 달리는 영국 특유의 완만한 구릉과 푸른 초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잘 생긴 인도 청년이
씽끗 웃으며
양복 주머니에서 넥타이 두 개를 꺼내서는
결혼식에 가는 길인데 어떤 것이 어울리겠느냐고
묻는다.
손녀가 서슴없이 붉은색을 추천해 주었다.
그가 어린아이가 골라준 넥타이를 매고
싱글거리며 화장실로 간 사이에 검표 원이 왔다.
자리를 비운 그 인도 청년은 그냥 통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승무원은 얼마 후 되돌아와서
그의 기차표를 확인 하는 것이 아닌가?
유럽에서는 대개 지정석이 아닌 객차에는
자유롭게 승차할 수 있어서 간혹 무임 승차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일단 발각이 되면 과한 벌과금을
물게 된다.
한 시간 반 달려 마침내 세익스피어의 고장
스트랫포드-어펀-에이번 작은 시골 역에 닿았다.
30여 년 만에 다시 보는 아담한 역사는 예전모습 그대로 인 것 같다.
손녀의 말대로 시꺼먼 하늘이 어느새 다시
새파란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10여분쯤 중세의 오밀조밀한 건물들을 구경하며 걸어가
시 광장 Civic Hall
미국 분수 American Fountain 앞에서
시내 관광 버스를 탔다. [11파운드 약 20000원]
나는 낯선 도시에 가면 우선 거리와 유적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수 있도록 씨티투어를 이용한다.
지붕이 없는 2층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너무나 차다.
11월 중순이면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마을 골목 골목에 아름답게 가꾸어진 장식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주민 수 보다 관광인구가 몇 배나 더 많은 이 마을은
항상 축제 분위기다.
70년대의 기억을 더듬으며 한 시간을 버스로 돌고
다음날 걸어서 구경할 곳을 지도에 점을 찍어두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호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 그런데 중심가의 호텔엔 하루 저녁에 3~40만원이상의 방외에는
마땅한 방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주말이라는 것을 미쳐 생각지 못하고
다 저녁에 숙소를 찾는 할멈의 만용에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인가?
그러나 크게 염려 하지는 않았다.
여행 경험으로 볼 때 어느 도시에서나 어느 구석엔가
방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한 20여분을 인터넷을 뒤져보던 안내소의 할머니는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찾아주었다.
영국에서는 이런 관광 안내소라던가
기차역, 전철 역에서 많은 노인들이 일을 한다.
조식포함 숙박비 48파운드 약 9만원,
소개비 3파운드, 택시비 2파운드를 합쳐 약 10만원이다.
잘 곳을 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태리 식당에서
저녁식사로 스파게티를 먹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이태리 식당은 중국식당보다
더 많은 것 같다.
택시로 10분 정도 걸려 찾아간 미드웨이 게스트 하우스는
주택가에 있는 아담한 2층 집으로
한문 글자로 무늬를 넣은 붉은 벽지가
아주 이색적이었다.
요즘 한자를 새겨 넣은 티 샤쓰나 소품들을
걸친 서양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지만
집까지 이렇게 중국 풍으로
장식한 것은 처음 보았다.
방이 어찌나 좁은지
몸을 틀고 게 걸음으로 다녀야 할 정도지만
오리털 이부자리가 포근해서 잘 쉴 수가 있었다.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 오는 아침 햇살에
한껏 기지개를 피니
어느새 깨어 있던 손녀가 방긋 웃는다.
깔끔하고 아담한 식당에서 주인 아저씨가 준비해준
토스트, 계란 프라이, 감자, 소시지가 맛이 좋았다.
은은한 얼 그레이 차 향이 입안의 잠을 깨운다.
세익스피어 생가
너무 일찍부터 서둘렀는지
세이스피어의 생가는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평일보다 30분 늦게
70년대에 왔을 때보다 도로도 넓어진 것 같고
말끔하게 포장도 되고
생가 주변엔 다양한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전과는 달리 새로 세운 기념관 Visitor’s Center 을 통해서
생가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세익스피어가 어릴적 놀던 뒷마당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작은 쪽문을 지나 그의 생가에 들어섰다.
세익스피어 부부의 침상과 요람
그 시절엔 서양사람들의 몸집이 작았는지
양 가죽 장갑과 가방을 만들던 아버지의 공방이며
층계며 방이며 유리창들이 인형의 집 모양 작다.
신기해 하는 손녀 딸과 함께
이렇게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
런던의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가
세익스피어 생가를 찾은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이
새겨 진 것을 보고 아는 체를 하며 반가워 하는 것이
꾀나 대견스러웠다.
실내와 유품들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할미를
어찌나 나무라는지……
이러한 유적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왜 법을 어기냐는 것이다.
다음엔 세익스피어가 노년기 18년간을 거처했고,
큰 딸 수잔나와 손녀 에리자베스가 살았던
뉴 플레이스와 내쉬 하우스로 갔다.
New Place & Nash’s House
아름답게 꾸며 논 정원 Knot Garden에서
세익스피어 가족들은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따사로운 햇볕에 앉아 글도 쓰고 독서도 한다.
세익스피어가 심었다는 뽕나무가
지금도 여전히 건강한 자태로
미쳐 따지 못한 검붉은 오디가 달려있고,
13세기의 교회 길드 체플 Guild Chaple이
아름다운 정원을 굽어보고 있다.
이 정원의 풍경이 그의 극의 배경으로도 소개된다.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손녀가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안내문을 가리키며
또다시 경고를 한다.
박물관 안내원보다 손녀 딸의 감시가 더 무섭다.
세익스피어의 가장 작은 책과 가장 큰 책
도서실 한쪽 구석에 세익스피어의 37편의 작품 중 10권을
좋아하는 순서대로 쓰라는 설문지가 있는데
9살짜리가 “로미오와 쥬리엣”을 첫 번째로 쓰는 것이다.
그 작품이 왜 좋으냐고 했더니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 아름답다나.
그렇지만 슬프단다.
의사였던 큰 사위의 병원 겸 주거지인
헐즈 크로프트 Hall’s Croft를 구경하고
방명록에 손녀도, 나도
자랑스럽게 이름도 쓰고 방문 소감도 썼다.
세익스피어가 식사를 했음직한
그곳 구내 식당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세익스피어가 묻힌 성 트리니티 Holy Trinity 교회로 향했다.
놀랍고 고맙게도 한글로 된 안내서가 있었다.
안내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얼마던지 찍어도 좋다고 해서 어찌나 반가운지.
성상 안치소에 부인과 큰 딸 그리고 큰 사위와
또 손녀 딸 내외가 나란히 누운 무덤 위로
사후 7년 만에 조성된 세익스피어의 흉상이 굽어보고 있다.
그가 이 곳에 묻힐 수 있었던 것은
1605년 ‘평신도 교구 목사’로 봉해졌기 때문이란다.
처갓집 ‘앤 햇서웨이의 오두막’ Ann Hathaway’s Cottage과
외갓집인 어머니 매리 아든의 집 ‘Mary Arden’s House’ 은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전날 투어 버스로 둘러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갔으니
‘곰 박물관’ Bear’s Museum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영국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곰 인형’에 대해
요란스러운 애정을 갖는지 모르겠다.
박물관이라야 옛날 작은 개인 이층집에
전시실과 기념품 가게가 있다.
어른들은 마치 소인국에 온 거인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다녀야 했다.
작은 방들에 빼곡히 전시된 갖가지 곰 인형을 관람하면서
퀴즈를 풀 수 있도록 해서
어린이들이 하나라도 노칠 세라 꼼꼼히 관람하게 하는
방법이 교육적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가는 박물관에 화장실이 없어서
길 건너 공중 화장실까지 뛰어갔다 오게 하는 것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귀엽고 아담한 박물관이라
화장실을 둘 자리가 없는 모양이다.
오후가 되니 다시 찬 바람이 일기 시작 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중세의 거리도
원 없이 돌아다녔고
세익스피어의 이름이 붙어있는 중요한 유적지도
웬 만큼 보았기에 일찌감치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에이본 Avon 강가에 있는 세익스피어 극장에서
그의 작품 공연을 보지 못 한 것이 아쉽지만
런던에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은
세익스피어가 극작가가 되기 전 연극 배우로 일 했던
16세기 극장 글로브 시어터 Globe Theater에서
“한 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을
관람 한 것으로 만족한다.
언젠가 손녀와 함께 그 유서 깊은 유명한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볼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기차 출발시간
홈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를 본 기관사가
추우니까 기차를 타고 있으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시골역의 푸근한 인정이다.
따뜻한 곳에 편히 앉아 노래도 하고 게임을 하는데
번번히 할미를 이기는 손녀의 깔깔거리는 즐거움 속에
어느새 기차는 푸른 들판과 언덕을 넘어
붉게 물든 하늘을 이고 달린다.
은행
뉴 플레이스 와 내쉬의 집
세익스피어가 다녔던 빅 스쿨
첫댓글 스위티님 사진이 넉장만 보이고 다 죽었어요, 다시 살려주세요.. 글과 함께 다시 보게요....
잘봤습니다 ...고맙습니다...잘지내시지요?........건강하세요..
오랫만에 오시면서 세계적인 작가를 모시고 왔군요 ㅎㅎ 숲님 말처럼 사진이 몇장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