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에
권 명 자
여행은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대와 설렘을 동반한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꼼꼼히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목적지를 정하고 가볍게 떠나보는 것도 좋다. 8월 마지막 주간 2박 3일, 평창으로 길을 나섰다.
이효석 작가의 생가터가 있는 봉평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생가터 알림판에는 평면도와 13세까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당시에는 초가집이었으나 현재는 기와로 지붕을 개보수하였고, 홍씨 일가가 사용하고 있어 내부는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식당 사잇길로 이어진 이효석 문학관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 커다란 바위에 또렷하게 새겨진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이정표가 반갑다. 길가 너른 밭에는 메밀꽃이 한창이다. 가랑비에 함초롬히 젖어 더욱 산뜻한 메밀꽃은 마치 새하얀 모시 적삼에 연둣빛 치마를 받쳐 입은 새아씨처럼 단아하고 신선함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울림이 주는 편안함과 차분해지는 마음은 메밀꽃을 닮아간다.
전망대에 올라 숨을 고르고, 바라보는 봉평마을은 평화롭기만 하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 당나귀며 장터, 충주집 ……, 그리고 순박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참을 머물다 가산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했다.
해설자로부터 선생은 일제의 억압정책에도 조선 적인 소재와 주제로 민족의식을 분명하게 표현하셨고, 문학과 예술을 삶의 전부로 받아들인 감각적 묘사가 뛰어난 분으로, 35세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설명이 가슴 아프다. 대표작품집들과 육필원고, 유품, 메밀 관련 자료들을 돌아보며 작가의 감성과 사명감, 삶의 기본을 생각한다.
작가의 글은 위대하다. 봉평 하면 메밀꽃 이 떠오르고, 소박한 사람들의 애환과 진솔한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메밀은 볼거리 뿐만 아니라 심혈관과 항염증, 노화 방지에도 효과가 높아 약용과 먹거리로 봉평의 관광상품이 되었다.
느린 걸음으로 효석 생가가 있는 달빛언덕으로 향했다. 효석 생가는 선생의 탄생 100주년 사업으로, 2007년에 강원도 고산지역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복원했단다. 생가 초가집 안채와 별채, 헛간, 장독대들……. 작은 꽃밭엔 샛노란 해바라기며 백일홍, 활련화와 야생화들이 한창인데 쓸쓸하고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 빈집이 주는 허전함을 떨칠 수 없어서인가보다.
근대문학 체험관에는 가산 이효석의 공간, 시간, 선생의 하루, 습작기의 동반 작가님들 사진과 소개글이 있다. 영상실로 들어서자 대형스크린으로부터 한꺼번에 날아드는 메밀꽃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나도 모르게 환성이 터진다. 작가는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는데, 나는 날아드는 꽃잎에 취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작가의 대표작들에서 발췌해 전시된 감동적인 글귀들을 낭독하며 작가의 감성에 젖어 든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 이효석’ 경성과 평양을 오가며 활동했던 모습들, 창작실, 사진과 문헌들을 감상하며 ‘나도 작가’라는 책상 앞에 멈칫 선다. 거침없이 글 한 줄 쓰고 싶다는 마음에 바라만 보다가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효석 달빛정원으로 나서니 비 온 뒤의 맑고 드높은 하늘은 멀미가 날 지경이다. 당나귀 전망대 앞에 비치한 대형 안경과 만년필이 발길을 잡는다. 불현듯 “어머니 축하드려요. 아끼지 마시고 글 많이많이 쓰세요.” 신인 등단 축하선물로 만년필을 살며시 건네며 포옹해주던 다정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날마다 한 줄씩이라도 읽고 써서 고운 시집 하나 내어 보내주고 싶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언덕에 줄지어 선 바람개비들이 산들바람에 뱅글뱅글 돌아가며 배웅을 한다. 맑은 바람에 마음을 씻고 아이들처럼 팔 벌리고 한바탕 뛰어보고 싶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무이 예술관은 폐교한 무이 초등학교를 조각가, 화가, 서예가 세 분의 예술가가 기존의 학교 틀을 그대로 살린 예술관으로 우뚝 서게 한 곳이다. 조각공원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카페로 난 통로로 들어선 교실은 체험실과 전시관으로 되어있었다. 글과 그림, 조각상을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관람객이 없는 오늘 같은 날은 체험실에서 만들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가지런히 진열된 준비물들을 기웃거리게 했다.
예술은 취미가 아니다. 꽃송이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고 정성과 사랑의 밀어로 피워낸 정연서 화가의 메밀꽃 필 무렵 그림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노력과 열정에서 생명으로 태어나는 예술의 극치는 성취감과 보람으로 기쁨을 주고 열정을 쏟게 한다. 출구로 나서니 코스모스 꽃길이 펼쳐진다.
높푸른 하늘엔 흰구름이 바람 부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밝은 햇살에 더욱 환해진 꽃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춤사위를 벌인다. 메밀꽃 필 무렵에 가족과 함께한 봉평의 하루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어느 가을날
권 명 자
해마다 10월 중순이면 본당에서는 공동체의 화합과 친교를 위해 가까운 공군사관학교를 방문하여 한마음 축제를 벌인다. 버스를 타고 청량한 하늘과 황금빛 들판, 나름의 색깔로 물들어가는 잎새들과 가을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참 좋구나’를 연발한다. 예쁜 하늘, 신선한 바람. 들꽃들이 나는 좋다.
사관학교로 들어서는 길 양옆으로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 나뭇잎은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정문을 통과하고 너른 운동장을 지나 하차를 하고 성당을 향하여 오른다. 연신 괜찮으시냐면서 배려와 관심으로 보듬는 교우들의 정다운 말씨가 고맙고 발걸음에 힘을 더해준다. 성당 앞에서 두 팔을 활짝 펴고 반기시는 예수 성심 상과 성모상을 향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성호를 긋는다. 건강상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은 간데없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봇물이 터지듯 터져 나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3년 전에 축복식을 하였다는 공군사관학교 신설 성당 앞자리에 앉아 성가대 장병들과 함께 하는 미사는 성스럽고 감동적이다. 신부님은 ‘형제가 길에서 얻은 금을 똑같이 나눠 들고 가다가 연못에 던져버리고 금 때문에 분심이 들어서 불편했던 서로의 심정을 털어놓으며 버리고 나니 홀가분해졌다는 똑같은 생각에 기뻐하며 더욱 의좋은 형제 되었다.’는 이야기와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다 아시는 하느님, 나눔이 주는 행복’에 대한 강론을 마치시고 “여러분, 저는 오늘 좋아서 죽겠습니다.”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짓는 표정에, 우린 폭소와 우레같은 박수갈채로 환호를 보내며 즐거워했다.
뷔페로 마련된 점심은 일류식당을 방불케 했다. 쾌청한 날씨에 음식을 들고 식당 바깥 성 가정 상 앞 정원에 설치된 식탁으로 나왔다. 초록 잎새 위로 노랗게 핀 산국이 귀엽고 앙증맞다. 선들바람에 억새가 춤을 추고 꽃향기에 젖어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같이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한 마음 축제가 벌어지는 너른 마당으로 내려왔다. 나눔 경품을 가운데로 하고 구역별로 청색과 홍색으로 구분된 자리에 청색 밴드를 받아 팔에 붙이고 앉았다. 이벤트를 담당한 강사님의 힘찬 구령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 율동과 게임으로 한바탕 몸과 마음을 풀고 난 후, ‘설 수만 있어도 걸을 수만 있어도’ 운동장으로 나오란다. 자신이 없어 주춤거리다가 용기를 냈다. 게임 진행에 따라 모두 하나가 되었다. 흥겨움이 더할수록 하늘은 더 높아만 간다. 남녀노소가 가위바위보로 자리를 옮기고 웃고 뛰며 그 큰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바람도 쐬고 앉아서 구경만 하더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교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짝을 짓고 고리를 이루며 뛰고 있다는 현실이 눈물이 나게 행복하고 감사하다.
꼬리달기 상품과 본당, 공군사관학교에서 준비한 선물을 받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엔 은행나무 열매가 한 길을 가득 채웠다. 우릴 그냥 보내기가 섭섭했나 보다. 짙은 가을 향이다. 공들여 키우고 맺은 귀한 열매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밟거나 피해서 돌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은행나무는 알까 모를까. 한해의 보람이 열매로 영글고 가을빛에 단풍이 곱고 예쁘다 해도 흩날리는 낙엽은 서글프다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지는 해가 아름다워도 넘어가면 금방 돌아서는 건 오직 나에게 필요한 것만을 추구하고 즐기는 인간의 심리가 드러남이다. 이젠 나를 돌아볼 때다.
생각만 해도 밝고 포근함을 주는 편안함, 고운 단풍을 바라보며 젖어 드는 감성으로 다가오는 그리운 사람, 그렇게 남고 싶은 건 욕심이려나. 낙엽으로 밟혀도 감사할 것만 같은, 열매를 맺고 생명을 갈무리하는 가을이다. 아직은 설 수 있고 걸을 수도 있으니 어울리고 감사하며 이 가을을 알차게 채워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