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목의 중심은 성체성사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 전담 서울대교구 홍 성 만(미카엘) 신부
‘끝없이 흐르는 주님의 용서와 사랑’ 증거하는 사제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 대표 담당이며 전담 사제인 홍성만(洪性萬 ∙ 미카엘) 신부는 언제 만나도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다. 웃음 가득한 얼굴에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홍 신부와 마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따라서 미소를 지으며 저절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 매력적이며 온유한 사랑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내년이면 서품 4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곰곰이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그동안 사제로서 사목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부추겼던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나를 향해 끝없이 흐르는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입니다. 이를 깊이 느끼고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사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홍 신부는 그래서 사목이란 “사랑이신 하느님을, 즉 내가 느끼고 체험하고 인식한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하느님을 이웃이 느끼고 체험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해 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성체성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인류를 사랑하시어 아드님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 또한 인류를 향한 아버지의 이러한 사랑에 부응하시고자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내어주신 아드님의 사랑을 오늘도 내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배하여 제정하신 것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바로 이 한없이 큰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것이 홍 신부 사목의 핵심이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이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러한 사목의 구제적인 징표가 일치라고 홍 신부는 믿는다. “내 안에서의 분열과 불일치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때 생기듯이,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우리 삶의 원리도 끝없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용서와 사랑은 곧바로 일치로 드러나고 성체 성사의 신비와 이어지지요” 1975년 12월 8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이후 도림동 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혜화동 보좌와 군종 사제(육군), 삼각지 본당 주임, 신수동 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 담당 교수, 한강 본당 주임(지구장 겸임), 불광동 본당 주임(지구장 겸임)을 거쳐 2011년 2월부터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대표 담당 겸 전담 사제로 활발한 사목 활동을 해오면서 간직한 일관된 신념이요 영성이다.
사목 현장인 공동체의 분열, 가장 고통스러워 이렇듯 오랜 기간 동안 사목자로 살아오면서 홍 신부에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바로 공동체의 분열이었다.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일치의 성체성사에 대한 굳은 신심으로 무장한 홍 신부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아픔이 되겠다. 일선 본당 사목지로는 마지막이 된 불광동 본당 주임 때의 일화는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2006년 불광동 본당 주임 겸 제3 은평 지구장으로 부임한 지 1년 후인 2007년이 되자 성당 바로 옆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 조성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에서 차수막을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담장과 성당 마당은 물론 본당 벽도 갈라지는 위태로운 사태가 벌어졌다. 불광동 성당은 건축가인 고 김수근 선생이 생전에 마지막 남긴 문화재급 건축물로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현대건설은 4억 원 정도 드는 그 차수막 설치비를 아끼려고 성당 측의 요구를 연이어 묵살하고 있었다. 그 싸움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져 무려 3년 동안이나 진행됐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며 오만을 부리는 대기업과의 싸움을 이끌던 홍 신부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초조해질수록 성체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며 답을 달라고 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묵상과 기도를 하던 중에 대규모 집회를 열어야겠다는 영감 같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홍 신부는 주님께서 주신 응답으로 받아들여 전 신자가 모인 한 주일을 택해 큰 집회를 열었다. 그 다음날 기적이 일어났다. 각 방송사를 비롯한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와 일제히 취재해 자세히 보도했다. 홍 신부는 지금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담당 변호사조차 승산이 없다던 서울지방법원의 재판은 불광동 본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때까지 2년 동안 성당 전면에 붙어있던 “현대는 국민에 대한 사랑을 잊었는가?”라는 대형 현수막도 내려졌다. 현대 측은 그 현수막만은 제발 떼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던 터다. 과격하지도 않은 그 문구를 현대는 무척 아파했다고 한다. “우리는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을 철저히 배격하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고 모든 일을 주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제3 은평 지구장이던 홍 신부는 그 이듬해인 2010년 4월 사상 처음으로 지구 차원의 신앙대회를 열었다. 주님께 감사하는 뜻이 듬뿍 담겼다. 무려 7,000명의 지구 신자들이 모였고, 그 가운데 2,000명의 예비 신자와 냉담자들이 주님을 따르겠다며 자신을 봉헌했다. 뜻 깊은 이 초유의 신앙대회를 교회 언론 매체들이 아주 적게 취급해 아직도 서운한 홍 신부다. 이 과정에서 홍 신부를 가장 괴롭힌 일은 대기업과의 피 말리는 다툼 그 자체보다 신자들 간의 불일치, 심지어 사목 위원들 간의 분열이었다. “정당한 일이니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측과 “대기업과 다퉈 봐야 이길 수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 것이다. 홍 신부의 고민은 그칠 날이 없었다. 자신의 사목 방침과 너무나 동떨어진 사태였다. 홍 신부는 갈라진 공동체를 다시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해 지구 신앙대회를 마친 그해 여름(8월) 의정부 한마음수련원에서 10일 동안 전 신자가 참석하는 피정을 겸한 ‘신앙 캠프’를 열었다. 각 팀별로 2박 3일씩 진행한 이 켐프에는 모두 1,800명이 동참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본당 공동체가 큰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빚어진 온갖 갈등 요소들이 말끔히 씻어졌다. 사목 위원들도, 신자들도 모두 하나가 되었다. “얼마나 고마운 은총이었는지요. 모두들 크게 만족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사랑과 용서, 일치의 하느님을 오늘도 내일도 뵐 수 있게 제정해 주신 성체성사의 신비와 은총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기뻤고 사목자로서의 보람도 컸습니다.” 그 다음 주부터 미사 시간에 부르는 성가 소리가 훨씬 커졌다.
일선 본당 사목 접고 성체 조배회 전담 사제 자청 홍 신부는 본당 공동체가 다시 한 마음으로 일치하고 평화로워지자 다음해 2월 교구의 사제 인사 때 불광동 본당을 떠나야하는 문제와 함께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정년인 70세가 되기 전에 한 번 더 본당 주임을 맡을 수 있지만 “이제 그만해야 되는 것 아니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나 교구 형편을 감안할 때 본당 사목을 접는 것이 순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 전담 사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럴 즈음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 대표 담당 사제이던 김덕근(요셉) 신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날 점심 먹으러 오겠다는 것이 아닌가. 다음 날 찾아온 김 신부는 바로 그 요청을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시치미를 떼고 “좀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하루 지난 뒤 수락했다. 홍 신부는 김 신부와 함께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현 추기경)를 찾아가 그 뜻을 알렸고, 교구장은 기꺼이 허락해 2011년 2월 교구 사제 인사 때 그대로 반영되었다. “하느님의 뜻은 참 오묘하시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비슷한 시기에 저와 김 신부의 생각이 그렇게 일치했는지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밝혔지만 사랑의 신비인 성체성사는 제 사목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의미 있는, 더 깊이 있는 사목의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는 서울대교구뿐 아니라 전국 각 교구와 본당마다 설치되어 있어 홍 신부의 역할은 그만큼 크다. 평소에는 각 교구 단위로 활동하다가 1년에 두 번씩 전국 교구를 순회하며 전국 회의를 갖고 각자가 체험한 성체성사의 신비를 나눈다. 이와 함께 다른 책자와 차별화한 회보 ⌜성체 조배⌟를 부활절과 성탄절에 제작해 배포한다. 지난봄에는 ‘성체 조배 이렇게 해 보세요’라는 1시간짜리 ⌜성체조배 차례⌟도 만들어 각 본당에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3년 성목요일 강론에서 지속적인 성체 조배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에 대해 세계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말씀으로 홍 신부는 기억한다.
사목자들에게 절실한 영성은 ‘분별’ 일선 현장에서 사목하는 사제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영성적인 문제라고 한다. 월간⌜사목정보⌟의 설문 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대신학교에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동안 영성 담당 교수로 신학생들을 지도한 홍 신부는 주저 없이 ‘분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분별은 나를 향해 끝없이 흐르는 하느님의 사랑에 내 마음이 열려있는 만큼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열려있지 않으면 그만큼 조잡한 분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그 어떤 것에 매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에 가장 중요한 기도가 성체 조배라고 홍 신부는 확신한다. 홍 신부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휴식의 기회를 원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예수님을 닮는다.’는 뜻의 ‘예닮 영성’을 내놓았다. 오창선, 김광식, 김형석, 주수욱, 조성풍, 변승식 신부 등 7명의 사제가 2009년 ‘가톨릭 영성 아카데미’를 설립해 함께 고안한 복음적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다.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놓고 하느님의 빛(말씀과 사랑)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안에서 식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하느님의 빛 안에서 이웃과 하나 되는 길을 계속 모색해 나가고,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는 길을 걸어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지요.” 홍 신부와 함께 그 여정에 동참하는 이들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성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감성까지도 통합할 수 있고, 암브로시오 성인의 가르침처럼 신앙의 지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져오는 여정이기에 더욱 많은 이들이 호응한다.
우리에게 자성(自省)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의 해, 2014년이 저문다. 교황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과제는 자신을 뒤돌아보는 자성(自省)이라고 한다. 개인별로, 본당별로, 교구별로 철저한 자성이 있어야 한다고 홍 신부는 생각한다. “교황님을 그동안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실천해 내지 못했던 삶의 내용들을 당신의 삶으로 증언하시면서 구체적인 삶의 지평을 열어 주셨습니다. 자성이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그 누가 아닌 바로 우리 각자의 몫인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홍 신부는 1946년 6월 13일 서울 중림동에서 아버지 고 홍수산(洪水山 ․ 사도 요한) 님과 어머니 고 이귀남(李貴男 ․ 수산나) 님 사이의 7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4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순교자 가문의 후손이다.
글 최홍운 alsemffp34@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