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파불교에서 무아를 잘 못 정리
우주는 성주괴공을 해요.
성주괴공을 반복하는 데는 반드시 본체(本體)가 있어야 된다 그거예요.
본체가 없이는 성주괴공을 계속할 수가 없는 거예요.
1회에 한해버려야 되는 거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생로병사를 무한히 반복합니다.
무한히 반복한다면 본체가 있어야 되요.
힌두교에서는 아트만(atman)이 있어야 된다 그거예요.
아트만(atman)이 있어야 된다 그거라. 본체가 있어야 된다 그거라.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는 부파불교에서부터 그걸 생각한 거예요.
부파불교에서 무아를 이제 정리합니다.
무아(無我)의 뜻을 정리하는데,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하기 시작했어요.
자,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이루어지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버리니까
공(空)이 되어버린단 말이에요. 그러니 실체가 없잖아. 실체가 없잖아요.
이것을 갖다가 어디까지로 해석을 하느냐 하면,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현상계 배후에는 현상계를 성립시키는 본체가 있어.
본체. 본체계에는 현상계의 나(我)를 있게 하는 진짜 나, 진아가 있어.
무아를 해석할 때 이 진아(眞我)까지도 부정을 해 버리는 거예요.
본체계의 나(我)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 안 해버렸어.
그래서 무아(無我)다. 나(我)가 없다. 나(我)라는 것이 없다.
나라는 것은 인연화합으로 만들어진 일시적 존재일 뿐 실체는 없는 것이다.
당신도 없고 너도 없고 나(我)라는 것이 없어. 이렇게 해석해버린 거예요.
그렇게 해석해 가다가보면 부처님도 없고 보살도 없고 하늘사람도 없고 귀신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고... 이렇게 되어버려요.
윤회도 없고 영혼도 없고 자아도 없고...이렇게 나가버려요.
지금까지도 부처님의 무아를 말씀하신 뜻을 이렇게 해석을 해오고 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석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힌두교 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어요.
힌두교에서는 아트만(atman)이라고 하는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를 내세우면서 무슨 소리냐?
사람이라는 내 속에 주인공이 거(居)한다고? 산다고? 말도 아니지.
무아(無我)인데? 무슨 실체가 있어? 무아인데 무슨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있어?
이렇게 해가지고 부딪힌 거예요. 이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게 문제가 돼.
불교에는 무아(無我), 힌두교에서는 유아(有我).
유아와 무아의 논쟁, 여러분! 좀 더 깊이 말씀드리는 것은 접어두겠습니다.
출처:2011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