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중국 조선족,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20]
중국학자들은 민족자결권을 폐기한 것에 대해 중국공산당이 당시 민족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막연히 소련을 추종했었기 때문에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연방제 폐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에 대해서 주은래는 1957년에 연방제 폐기 이유에 대해 소련과 역사발전 상황이 다를 뿐 아니라 경제발전 및 혁명운동 발전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중국공산당이 조선족(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공산당이 만주성 임시위원회를 세운 1927년 이후부터이다. 신해혁명 이후 동북지역은 중앙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주공산의 변방지역으로서 이 지역 군벌인 장작림-장학량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 이어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중국공산당도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만주성위원회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공산당은 이 지역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전후해 중국공산당은 먼저 항일투쟁 시기에 언급한 조선족관련 정책들을 구체화했다.
조선족에게 이중국적을 부여했고, 소수민족 식별사업을 통해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소수민족으로 규정했다.
조선족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민족구역자치제를 실행함으로써 말과 글은 물론 조선족의 문화와 관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조선족을 중국의 공민으로 우대하며 포섭하는 정책과 병행해 중국공산당은 조선족이 사회주의 중국에 순응하도록 정치적 압력을 가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전개된 일련의 정치투쟁에서 조선족동포들은 극단적인 희생과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은 1970년대 말 등소평에 의한 개혁개방 정책이 구체화될 때까지 이어졌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전인 1949년 9월 개최된 인민정치협상회의는 ‘공동강령’을 채택했다.
1954년 헌법이 채택될 때까지 헌법으로서의 역할을 한 이 강령은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각 민족은 “똑같이 평등하고 단결과 협조를 실행하고 제국주의와 각 민족 내부의 인민의 공동한 적을 반대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각 민족의 우애와 합작의 대가정으로 건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각 소수민족은 모두 자기의 언어문자를 발전시키고 풍속과 습관을 보존 또는 개혁하며 종교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규정했다. 중국공산당은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 마련에 주력했다. 그런데 어떤 민족을 소수민족으로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1950년대 초부터 소수민족의 지위를 부여할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민족식별사업이 전개됐다.
1953년 제1차 조사에서 37개 민족이 소수민족으로 확정됐다.
그리고 1965년에 발표된 제2차 조사에서 17개 민족이 추가된 데 이어 1979년 제3차 조사에서 ‘지눠족’을 추가했다.
이로써 현재의 55개 소수민족이 확정됐다.
민족식별 사업에서 주목되는 것은 당시까지 전통적으로 변방민족을 업신여기던 호칭을 정상화시킨 점이다.
예컨대 묘족(苗族)의 경우 원래는 앞에 개(犬)를 의미하는 부수를 넣어 묘(猫)로 불렀는데 이 무렵부터 이를 정상화했다.
이와 함께 민족식별 조사가 이루어진 후에는 다양한 출판물을 발행해 해당 소수민족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조선족은 1953년에 완료된 1차 사업에서 37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선정되어 중국 공민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1957년 경 산해관을 기준으로 하여 조선인의 거주지가 산해관 이북이면 조선족으로, 이남이면 북한 공민으로서 중국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하는 조교라고 불렀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산해관 이북에 거주했고 불과 수천 명 정도만 산해관 이남에 거주했다. 오늘날 중국에 거주하는 조교는 대략 5000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중국은 민족자치구역을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의 3단계로 구분하고 같은 급의 일반 국가기관의 직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자치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일련의 법적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한 첫 민족구역자치제인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1952년 9월 3일 수립됐다. 3년 후인 1955년에는 현재와 같이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축소 조정됐다.
당시 행정구역은 1시 5현으로 구성됐는데 1958년에 돈화, 1965년에 도문이 각각 연변조선족자치구에 편입됐다.
그리고 1985년, 1987년, 1993년에 돈화, 용정, 훈춘, 화룡이 각각 현에서 시로 승격했다. 행정구역상 길림성에 속해 있는 연변조선족자치구는 현재 연길, 도문, 돈화, 화룡, 용정, 훈춘 등 6개 시와 왕청, 안도 등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면적은 4만2천700평방킬로미터이고 주도는 연길이다.
자치주에 이어 조선족을 대상으로 한 구역자치제 중 유일한 자치현인 장백조선족자치현이 1958년에 수립됐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혜산과 마주하고 있는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연변지역과 마찬가지로 북한과 인접해 있어 북한출신 조선족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서적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지음, 인간사랑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