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66) – 심신의 보약, 걷기와 글쓰기
예년보다 포근하여 걷기 좋은 날(12월 17일), 도보로 도청과 시청이 있는 중심가를 찾았다. 청주의 명물 무심천과 육거리 시장을 지나 중심지까지는 4km 남짓, 도청 앞 큰 길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에 이르며 벌써 한 해의 막바지에 들어선 것을 실감하다. 온도탑의 기온을 살펴보니 17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에 의하면 사랑의 온도탑을 설치한 지 3주가 지났는데 지금까지의 모금실적이 전년 동기의 80% 수준에 머물러 다소 저조한 분위기라는 보도다. 아침 교육방송에서 예년보다 춥게 느껴진다는 대사에 사랑하는 이가 없어서 그렇다는 표현을 접하며 사랑의 온도계가 훌쩍 올라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이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반가운 소식, 우리가 출석한 광주의 작은 교회가 꽤 큰 금액을 이웃돋기성금으로 기탁했다네.

아내와 함께 둘러본 육거리시장, 전통시장에서 사온 칼국수와 시레기가 곧바로 식탁에 올랐다
한 해를 보내며 소년이 늙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小年易老學難成)는 옛말이 떠오른다. 학문적 소양이 있다는 평판을 듣던 소년이 그 성취는 별로인 채 노년에 접어들었음을 절감하며. 은퇴 후 어느덧 10년, 남은 때를 무엇으로 가꾸랴. 스스로 돌아보니 두 가지는 잘 선택한 듯, 하나는 걷기요 다른 하나는 글쓰기다.
정년을 맞은 2009년부터 걷기행사를 주관하는 한국체육진흥회와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국내외의 굵직한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하면서 걷기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더불어 건강한 체력을 다지는 데에도 큰 몫을 담당하였다. 매일 한 시간 이상 꾸준히 걷는 것이 일상, 지난 주말에는 천안에서 열린 한국체육진흥회 충남지부의 송년행사에 참가하여 2만보 이상을 걷기도 하였다. 이날 모임을 주선한 고재경 한국체육진흥회 충남지부장은 여러 걷기행사에 우리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 부러웠다는 덕담을 건네기도. 우리는 2010년에 서울에서 고향까지 300여km 피란길 걷기를 시작으로 2011년 서울-부산 한일우정 조선통신사 옛길걷기 500여km, 2012년 서울-목포-부산 한일우정 남한일주 1차 걷기 900여km, 2013년 오사카-도쿄 한일우정 조선통신사옛길걷기 600어km, 2014년 부산-속초-서울 한일우정 남한일주 2차 걷기 800여km, 2016년 대만일주 한일대만우정걷기 1,100여km, 2018년 제주올레길 일주 한일러시아 우정걷기 300여km 등을 걸었고 평소에도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닌다. 덕분에 지구력과 근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전체적인 건강상태가 양호한 편이어서 다행이다.

지난 주말(12월 15일), 영하의 날씨에도 천안걷기에 참여한 동호인들
은퇴 후부터 쓰기 시작한 인생은 아름다워 시리즈는 이번 회로 666번째, 꾸준히 쓴 글을 1년에 한 번씩 책으로 엮어 금년으로 9집을 펴냈다. 걷기행사나 여행할 때의 글쓰기는 빠듯한 일정 속에 밤 늦은 시간까지 노트북과 씨름하며 긴장과 몰입도가 한결 높아진다. 앞으로도 지속하여 20집 이상 펴낼 수 있으면 좋으리라.

며칠 전에 읽은 칼럼 ‘100세까지 글쓰기’와 ‘문유십의(文有十宜)’가 좋은 자극제여서 이를 간추려 소개한다.
‘주초에 책 한 권을 전해 받았다. 출간된 지 3주가 되도록 언론이 다루지 않은 걸 보면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13명의 필자는 (사)국어문화운동본부가 운영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요글벗’ 회원들이다. 회원들은 국어학자인 남영신 대표의 지도로 매월 한차례 서울시청에 모여 써온 글을 발표하고 강평을 듣는 모임을 갖는다. 3년 남짓 글쓰기를 배운 뒤 처음 발표한 글들이지만 술술 잘 읽힌다. 눈에 띄는 것은 필자의 연령이다. 거개가 60대 이상이고 80을 넘긴 분들도 있다. 88세로 필자 가운데 최고령인 김창석 옹은 버킷 리스트에 담아둔 글쓰기를 생의 마지막 과제로 삼았다. 필자들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오랫동안 글쓰기와 무관하게 살아왔던 은퇴자나 노인은 더욱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수요글벗을 이끌고 있는 남영신 대표는 글쓰기야말로 노인을 위한 축복이라고 말한다. 글쓰기의 최대 자산은 자유와 경험이다. 좋은 글은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온다. 또 이야기가 동반될 때 좋은 글이 된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은퇴자와 노인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노인은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밀도 있는 문장을 쓸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일본 작가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노인력으로 충분히 극복가능하다고 말한다. 노인력이란 통찰력이나 지혜, 유연함, 느림의 미학을 말한다. 일본인 쓰노 가이타로가 쓴 <100세까지의 독서술>이 있다. 작가와 주변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70세 이후 100세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다. 은퇴 이후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수요글벗회원들처럼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은퇴자들이 적지 않다. 100세까지의 독서뿐 아니라 100세까지의 글쓰기도 생각해 볼 때다. 100세를 눈앞에 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왕성한 글쓰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98세인 그는 올해 들어서만 3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글쓰기란 자기의 삶을 그리는 기술이다. 노년층의 글쓰기가 확산됐으면 좋겠다. 많은 은퇴자와 노인들이 글쓰기를 통해 삶의 경험과 지혜를 동시대인들에게 전달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2018. 12. 13 경향신문, 조운찬의 ‘100세까지 글쓰기’에서)
‘명나라 때 설응기(薛應旂·1500~ 1575)가 말한, 문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열 가지(文有十宜)를 소개한다. 독서보(讀書譜)에 나온다.
첫 번째는 진(眞), 글은 참된 진실을 담아야지 거짓을 희롱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실(實), 사실을 적어야지 헛소리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세 번째는 아(雅), 글은 우아해야지 속기(俗氣)를 띠면 안 된다. 네 번째는 청(淸), 글은 맑아야지 혼탁해서는 못쓴다. 다섯 번째는 창(暢), 글은 시원스러워야지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 여섯 번째는 현(顯),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야지 감춰지면 안 된다. 일곱 번째는 적확(的確), 꼭 맞게 핵심을 찔러야지 변죽만 울리면 못 쓰는 글이다. 여덟 번째는 경발(警拔), 글은 낮고 더러워서는 안 되며 그 안에 화평스러운 기운이 깃들어야 한다. 아홉 번째는 남이 하지 않은 말을 하는 것(作不經人道語), 제 말을 해야지 남의 말을 주워 모아서는 안 된다. 열 번째를 필자가 추가하자면 간(簡), 글은 간결해야지 너절해서는 안 된다. 할 말만 해서 자기 뜻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2018. 12. 13 조선일보, 정민의 ‘문유십의(文有十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