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나요?
2023.10.05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함께’라서 외롭지 않아.”
여러분의 옆집엔 누가 살고 있나요? 과거 이웃집에 떡을 돌리던 문화가 낯설게 느껴질 정
도로 문을 닫으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버리는 것이 요즘 주거지의 모습입니다. 바로 옆
집에 누가 사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못 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데요. 그런
데 이웃들과 마치 가족같이 지내는 특별한 주택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속 주인공들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무코리타 연립주택’은 시골의 한 강변에 있는 오래된 연립주택입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온 청년 야마다는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합니다. 도시에서의 안 좋은
기억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야마다는 오징어 젓갈 공장에 취업하여 자리를 잡죠.
주택의 집주인인 미나미는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미나미의 집을 제집 드나
들 듯 오가는 옆집 이웃 시마다 씨는 목욕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매번 이웃집 욕조에 신세를
지는 자린고비 캐릭터입니다. 또한 아들과 장례용품 방문 판매를 하러 다니는 미조구치 씨
도 연립 주택의 입주민들입니다.
어느 날, 야마다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이유로 인연을 끊었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습
니다. 항상 욕조를 빌려 썼던 이웃 시마다는 야마다에게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고 해도
마지막 가는 길은 잘 배웅해줘야 한다’는 충고를 해줍니다. 눈치도 없고 엉뚱한 것 같았던
이웃 시마다 씨의 진심어린 말에 혼란스럽기만 했던 야마다는 어딘가 모를 따뜻함을 느낍
니다.
처음에는 시골마을에서 무료하게만 지내던 야마다도 차차 이웃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갑
니다. 이웃들이 모여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은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
서 인지 뭉클하기까지 하는데요. 심신의 휴식이 필요한 야마다에게,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
리워하는 미나미에게, 각자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다른 이웃들에게도 소소한 위로
가 되어 주는 따뜻한 장면입니다. 정성이 담긴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
장 작지만 큰 행복일지 모르니까요.
연립주택 이름인 ‘무코리타’는 불교의 시간 단위로, 불교에서의 최소의 시간 ‘찰나’를 의미
합니다. 강변에서의 최소의 시간이라면 서로가 공유하는 시간, 서로가 정을 나누는 시간이
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영화의 감독인 오기가기 나오코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시간’을 무
코리타라는 불교의 시간 단위에 적용해 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살아갑니다.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사람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지냅니다. 꼭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이 아니더라도 마음만은 가족과도 같은 끈끈하고 훈훈한 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죠. 각자의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따뜻함과 정으로 채워주는 이 영화는, 어쩌면 현
대사회의 낭만적인 판타지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소소한 행복을 잘 찾는다면 말이지, 어떻게든 견딜 수가 있거든.”
-영화 속 대사 중에서
특별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일 없이 무난하고 무탈하게 흘러가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야
기, 맘 졸이며 봐야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힘들었다면 잔잔한 물결처럼 마음을 적셔주는 이
영화 한 편이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 날 외롭고 공허한 관계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치유가 되는 이야기, <강변의 무코리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