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안전한 하루
사원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느리게 시간을 보낸 맹꽁이는 툭툭으로 돌아갔다. 카오산 로드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툭툭 청년이 머뭇거렸다. 주유 쿠폰을 근처 쇼핑센터에서 주는데, 잠시 들렀다 가면 안 되겠냔다. 삼십 분이면 된다며 사정하는 걸 마음 약한 맹꽁이는 거절하지 못했다. 부다다다 탕탕, 톡톡이 달렸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들른다더니 올 때와는 달리 막히기는커녕 쌩쌩 달렸다. 길에서는 아까의 매연 대신 흙먼지가 날렸다. 삼십 분이 넘어가자 맹꽁이는 언제 도착하느냐 소리쳐 물었지만, 안들리는지 청년은 대꾸가 없었다. 얼마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휑한 곳에 건물만 하나 덜렁 있는 아담한 가게였다.
환한 얼굴로 아줌마는 향긋한 차를 내왔고, 갖은 옷감과 원단 샘플을 펼쳐 보였다. 5분가량 이야기를 듣고는 안 산다며 맹꽁이가 일어서자 이번에는 아저씨가 보석 진열대로 불렀다. 오늘이 보석 50% 세일 마지막 날이란다. 정부 인증된 보석만 판다며 증명서를 맹꽁이 눈앞에 펄럭였다 맹꽁이는 보석을 만지작거렸다. 이걸 사서 두 배에 팔면, 몇 달간 아르바이트해 모은 여행비를 상당 부분 보전할 텐데, 욕심이 살랑살랑 일었다 하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현금 대부분은 숙소에 있었다. 사고 싶은 맹꽁이와 팔고 싶은 주인 내외가 한마음으로 안타까워했지만,
어쩌랴.도리가 없었다. 맹꽁이가 안녕을 고하고 나오니 해는 이미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청년은 가게로 들어갔다가 어두운 낯빛으로 나왔다. 툭툭은 한 시간 반을 깜깜한 길을 달려 카오산 로드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다녔으니 얼마를 주랴 묻자 청년은 사원까지만의 금액을 불렀다. 쇼핑센터야 자기가 가자 한 거니 이치에는 맞았지만 따라다닌 시간에 비해 너무 적다 싶어 더 주겠다 해도 딱 그만큼만 받았다. 숙소에 돌아간 맹꽁이는 손과 얼굴을 씻었다. 까만 물이 두 번 세 번을 씻어도 계속 나왔다. 저녁도 먹지 않고 맹꽁이는 그대로 기절한 듯 잤다.
드디어 한국에서 친구가 오는 다음 날,친구를 만나기 전에 맹꽁이는 와불 사원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전날 함께 다녀준 툭툭 청년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아쉬워하며 다른 하얀 번호판 툭툭에 눈을 돌렸다. 조금 교활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래도 하얀색이니 안심해도 된다
생각하며 행선지를 말했다. 그때였다. 아저씨가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이 되는 게 아닌가 (!). 이어 설명하기를 와불 사원은 쉬는 공휴일이 일 년에 딱 하루 있는데, 그게 하필이면 오늘이란다. Lucky 사원이라는 데가 있다며 아저씨는 지도를 꺼내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인생 전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더니 그 순간 맹꽁이의 눈앞에 그 전날 하루가 한꺼번에 지나갔다. 친절했던 툭툭 청년과 다정했던 싱가포르 보석상, 마음씨 좋은 가게 주인 내외, 도착 첫날 만났던 하얀 셔츠 남자까지. 세상 선한 미소를 흘리는 그들을 떠올리며 맹꽁이 팔에는 소름이 돋았다.
맹꽁이는 그 길로 뒤돌아 친구가 올 때까지 숙소에 처박혔다. 결과적으로는 경제적인 손해도 물리적인 위해도 당하지 않았지만, 시간을 낭비 당했던 전날 하루를 복기했다. 생각할수록 자기 하나 속이자고 그렇게나 여러 명이 여러 장소에서 공조한 게, 그들의 작전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한편으로는 온종일 공들이고 애썼는데 허탕 친 청년은 얼마나 애가탔을까. 그래서 가게에서 나올 때의 표정이 어두웠던 건지, 마지막에 돈을 더 받지 않은 건 일말의 양심이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어쨌거나 안전하게 돌려보내 준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날 오후, 사흘 만에 만난 친구를 마치 일 년 만에 만난 듯 반가워하는 맹꽁이를 보고 친구는 어안이벙벙해했다. 친구에게 주변을 안내하는
맹꽁이는 조금은 사나워져 있었고, 방콕 '생활'에 대해 묘한 자신감이 생겨있었다. 안전했던(?) 하루 동안 '키'가 두 뺌은 큰 맹꽁이였다.
윤지영
hellococobut@gmail.com
프로페셔널한 놀이꾼으로 전향 중이다. 온 힘을 다해 놀아보니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