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Euro)시대, 드디어 카운트 다운
새해 1월 1일부터 유럽 12개국 유로화 사용
새해 1월 1일부터 드디어 유로(Euro) 시대가 개막된다. 유럽 12개국이 일제히 단일 통화인 유로화를 사용하면서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변화를 시도한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페인, 핀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가 바로
‘유로랜드’를 형성한다. 전체 인구는 약 3억400만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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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 우리들의 돈'이라는 표어를 내건 프랑스의 유로화 홍보 포스터와 유로화 지폐 사진. |
유럽 중앙은행이 내건 ‘유로, 우리들의 돈’(Euro, our money)이라는 표어가 유로랜드의 곳곳에 내걸려 3억 인구의 단결을 강조하고 있는 중이다. 유로랜드는 나라마다 약간 편차는 있지만, 시행 초기에 각국 통화와 유로화를 병행한 뒤 내년 2월 28일 이후 유로화만 전면 사용하도록 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은행을 통해 자국 통화를 수거한다.
유로랜드의 주민들은 새해가 오기 전에 12월 14일부터 유로화 동전을
만져볼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우체국이 유로 동전 70개가 든 작은
주머니를 100프랑에 판매함으로써 새로운 돈의 실체를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동전 주머니를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은 1월 1일 0시를 기해 현금 인출기 앞으로 달려가면 빳빳한 유로화를 만질 수 있다. 은행에서 화폐를 교환하려면, 1일 휴무일의 다음날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프랑스의 고민은 금융노조가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 바로 1월 2일 전국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은행과 노조의 협상을 독려하면서 양쪽 모두 이성을 되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유로랜드의 각국 정부는 유로화 시행 초기에 신구 화폐의 병행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각 상점들은 유로화를
구비하고 있다가 손님이 자국 통화로 지불하려고 하면 잔돈은 유로화로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계산이 오래 걸리고 계산 시비도 발생할 소지가 크다. 따라서 자국 통화와 유로화를 그 자리에서
환산할 수 있는 소형 전자 환산기가 올 크리스마스 시즌 최대 히트 상품으로 꼽힌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단순 기능의 환산기를 무상 보급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정마다 환산기를 선물할 계획이고, 프랑스의 파리시청은 공립 초등학생들에게 이미 환산기를 나눠줬다. 맹인과 약시자들을 위해서 정부는 소리가 나는 전환기와 점자로
만든 환산표를 제작했다.
■ 단순 기능 환산기 무상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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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 환산기를 이용, 유료화와 프랑화를 즉석에서 환산하고 있다. |
만약 셈에 자신이 있는 프랑스인이라면 1유로=6프랑55957이라는 환율을 갖고 숫자 놀이를 즐기면 된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유로화와
프랑화 전환을 암산하는 방법을 매일 지면에 싣고 있다. 프랑을 유로로 환산하려면 지정된 액수에 그 절반을 합한 뒤 10으로 나누면 된다는 것. 예를 들어 100프랑을 유로로 환산하려면 (100+50)/10=15유로라는 답이 나온다.
유로랜드의 각국들은 올 한해 동안 새로운 역사의 과도기 현상을 겪느라고 바빴다. 독일은 전체 유로화 국가 중에서 인구가 8200만명으로 가장 많기 때문에 가장 많은 화폐 생산량을 할당받았다. 정부는
170억개의 동전(53억 유로)과 45억장의 지폐(2320억 유로)를 찍어냈다. 문제는 음지에서 위조 지폐범들이 독일 마르크화 모방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이다. 연방 경찰에 따르면 금년 초부터 위조 마르크화 소지자 적발이 50%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마르크화는 내년 2월
28일까지 유로화와 함께 지불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위조 지폐범들은 내년 초 대규모 화폐 교환으로 혼란이 일어나면 그 틈을 타서 가짜 돈으로 한몫보려는 것이다. 경찰은 현금 운송차와 은행 습격사건이 증가할 것이 뻔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군대는 무장
상태로 국내 사태에 개입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유로화 임시 저장 창고만 제공할 예정이다.
프랑스에서는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프랑화 동전 중에서 일부 연도에 생산량이 적었던 희귀 동전의 값이 뛰었다. 화폐 수집상들이 찾는
희귀 동전의 경우 제 값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가령
1984년에 나온 1프랑짜리 동전의 가치는 현재 300프랑이고, 1991년에 나온 2프랑 동전은 무려 1000프랑에 거래된다. 1979년에 나온 5프랑은 180프랑, 1984년의 5프랑은 250프랑으로 각각 뛰었다.
그런가 하면 유로화 사용을 앞두고 일부 소비재들의 가격이 최고
40%까지 올라 재경부와 소비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국립 소비 연구소가 210개의 품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제와 버터, 우유 가격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 사이에 크게 뛴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이 유로화 전환기인 11월 1월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제품 가격 동결을 앞두고 사전에 교묘하게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는 러시아 마피아 등 해외 범죄 조직이 유로화 도입에 앞서 검은 돈을 세탁하기 위해 휴양지 개발사업에 대거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의 바닷가 휴양지에서는 지난해부터 집값이 30%
이상 폭등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스페인 국내 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스페인 마피아들도 가세하고 있어 때아닌 빌라 과열 경기를
빚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통합 가속화는 어려울 듯
아일랜드에서는 교회와 자선 단체들이 울상이다. 새로 통용될 1유로화 동전의 가치가 78 아일랜드 펜스에 불과, 현재 사용 중인 1파운드에 비해 27% 가량 가치가 떨어지는 ‘환차손’ 때문에 헌금 수입이
2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톨릭교회측은 “사람들이 1파운드
동전 대신에 1유로화 동전을 기부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 될 것”이라며 “기존의 1파운드 액수를 맞추기 위해 1유로 동전과 나머지
27센트를 넣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걱정이다.
일부 자선단체들은 지난 27년 동안 고수해온 5파운드의 연회비를 10유로화(7.80 파운드)로 인상할 계획이다.
유로랜드는 현재 국제 무역에서 재화와 서비스 수출의 17.7%를 차지,
미국의 14.7%보다 비중이 높다. 더구나 유럽이 전통적으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유로 경제권의 범위와 영향력을 더 크게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유로화 출범이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가속화하기는 어렵다.
현재 15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을 확대해서 유럽
통합의 궁극적 이상을 실현하자는 원칙에는 서로 찬성한 상태다. 하지만 유럽의 중심 국가인 영국은 아직 파운드화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 않는 국민 정서 때문에 유로랜드에 가입하지 않았다.
또한 영국 독일 프랑스가 EU의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폴란드 등
13개 후보국들을 언제, 어떤 조건과 순서에 따라 받아들이냐를 놓고
외교적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독일은 지역적으로 가까운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향후 ‘유럽 합중국’의 중심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프랑스는 독일에 대해 과거 프랑수아 미테랑과 헬무트 콜이 서로 협력했던 것처럼 유럽을 양국 공동의 지배
질서에 둬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유럽이 영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무역권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또한 유로화 출범이 현재의 EU 차원에서 모든 문제의 공동 해결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특히 이탈리아는 12월 6일 브뤼셀에서 회원국 법무장관들이 모여 ‘유럽 공동 체포 영장’ 법안을 논의했을 때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법안은 회원국 사이에 복잡한 범인 인도 협상을 간편하게 하고, 테러리스트에 대한 수사와 검거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대다수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이탈리아가 테러 이외의 범죄까지 적용 대상으로 삼는 것을 반대해 협상이 결렬됐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유로화 출범이 유로랜드의 단일 가격 형성을 뜻하지 않는다. 가령 맥도널드 햄버거가 프랑스에서 0.66유로라면, 독일
1.03유로, 스페인 1.12유로, 이탈리아 0.91유로 등으로 특히 각국의
문화와 부가가치세의 차이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