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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ESUSONE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원
01강. 예수그리스도의 계시(啓示)라 (계 1:1-3)
계 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啓示)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豫言)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福)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오늘부터 요한계시록을 강해코자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쉽고 재미있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어렵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내용이 여러 가지 상징들로 되어 있어서 어렵다고 느끼지는 것입니다.
다른 성경은 이해가 되나요?
그럼 요한계시록도 이해가 되어져요.
그래야 정상이에요.
왜? 그런가 하면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다른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고 요한계시록은 깨닫지 못하게 하시진 않아요.
다른 성경이 깨달아진다면 당연히 요한계시록도 깨달아지게 되어 있어요.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을 했어요.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면 여느 성경과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어요.
그러니 읽으면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말씀이오니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읽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어떻게 깨달아지는 것이 성령의 감동입니까?
이는 성령이 모든 성경을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을 하였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 이야기로 깨닫게 해 주세요.
예수그리스도 이야기로 깨달아지면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도 시작을 알리면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면서 대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도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어느 집단을 말하거나 어느 인물을 말하면 그건 이단이에요.
이단들은 아전인수식으로 성경을 어느 인물이나 자기 조직을 위하여 도용을 해요.
그리하여 따르는 무리들로 하여금 교주를 신봉하게 하고 자기 조직을 신성시 하게 만들어요.
마치 그 집단에 있는 것이 구원의 보증이라도 되는 냥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게 모두가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에요.
특히 정통을 가장하고서는 자기만 요한계시록을 특별하게 해석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자기에게 잡아두고자 하는 자들도 경계하세요.
특히 다른 성경보다 요한계시록만 특별하게 취급하는 자들도 경계하세요.
이들은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이를 탐하려고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자들이에요.
당부 드리는데 요한계시록을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이렇게 순서적(順序的)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순서적으로 해석하면 세대주의자들처럼 유대인 구원과 이방인 구원으로 나누게 되어요.
성경은 그 어디에도 유대인 구원과 이방인 구원을 나누지 않았어요.
다만 세대주의자들이 그렇게 이해할 뿐이에요.
이건 창세전 언약을 몰라서 그래요.
창세전 언약으로 성경을 보지 않고 문자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해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유대인 구원과 이방인 구원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두 번 십자가에 죽어야 해요.
그리고 두 번 재림 하셔야 해요.
세대주의자들의 논리대로라면 공중으로 한번 재림하고 이방인들과 혼인잔치를 하고 나중에 7년 대 환란이 끝난 후에 땅으로 내려와서 유대인들과 다시 혼인잔치를 베풀어야 해요.
실제로 세대주의자들은 1장 2장 3장까지만 교회라는 말이 있고 4장 이후로는 교회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교회는 4장 이전에 이미 휴거하고 없기 때문에 4장 이후는 유대인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각 지파별로 12.000명씩 총 144.000명이 구원을 받고 나면 22장에 가서 교회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때 휴거하였던 교회가 내려와서 유대인과 천년 왕국을 누린다고 합니다.
왜? 이런 해석을 하느냐 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리고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즉 1장 2장 3장,,, 순서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들의 역사관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이에요.
성경은 인간들의 역사관으로 보면 안 되어요.
역사란? 수평적인 구조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같이 1,2,3,4,5,6,7,8,9 이런 식으로 흘러가요.
그러나 성경은 묵시에 속한 이야기를 역사 속에 펼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수직적 구조로 짜여져 있어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 있어요.
쉬운 말로 앞에서 일어난 사건이 뒤로 가 있고 뒤에서 일어난 사건이 앞으로 오고 그래요.
요한계시록은 순서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사건 중심으로 기록을 하였어요.
이건 비단 요한계시록뿐만 아니에요.
모든 성경이 다 사건 중심으로 기록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1년 2년 3년 이런 식으로 순서적으로 해석하면 이해가 안 되어요.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사건을 기록하였어요.
아주 쉽게 설명 할게요.
옴니버스 영화관 알지요.
대전 독립 박물관에 가면 옴니버스 영화관이 있는데 그곳은 온 사방이 다 화면이에요.
동서남북 그리고 천정까지 다 화면이에요.
화면이 한 개가 아니고 몇 개가 되어요.
그런데 화면마다 다 다른 영화를 보여 주어요.
이 쪽 화면에서는 봄에 씨를 뿌리는 모습이고,
저 쪽 화면에서는 여름에 해수욕 하는 모습이고,
또 다른 화면에서는 가을에 추수하는 모습이고,
또 다른 화면에서는 겨울에 스키 타는 모습이에요.
그러니 한 자리에서 일 년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보는 겁니다.
한 쪽에서는 미국에 그랜드 캐넌을 보여주고,
다른 쪽에서는 아프리카의 초원에 동물들이 뛰노는 것을 보여주고,
또 다른 화면에서는 북극에 펭귄들이 노는 것을 보여주고,
다른 한 쪽에서는 대한민국의 백두산을 보여주고,
천정에는 아폴로 우주선이 달나라에 가 있는 것을 보여 주어요.
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 온 세계를 다 보고 있는 겁니다.
이쪽에서는 구석기 시대를 보여주고,
저쪽 화면에서는 애굽에 스핑크스를 보여주고,
다른 화면에서는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들을 보여주고,
다른 화면에는 중세 시대를 보여주고,
또 다른 화면에서는 이 시대 최첨단 시설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 자리에서 인류 전체를 보았어요.
사도 요한이 본 광경이 그러해요.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이쪽을 보게 하고 저쪽을 보게 하였어요.
보는 곳마다 다른 사건들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옴니버스 영화를 본 것처럼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다 본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 역사가 어떻게 끝이 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도래 하는지를 보았어요.
중요한 것은 요한이 스스로 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여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속히 될 일”들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걸 계시(啓示)라고 해요.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이렇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겁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움직여 질 것입니다.
이 세상은 땅의 원인에 의하여 움직여지지 않고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여지고 있어요.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어린 양의 인을 떼니까 말들이 뛰지요.
첫째 인을 떼니까 흰 말이 뛰고,
둘째 인을 떼니까 붉은 말이 뛰고,
셋째 인을 떼니까 검은 말이 뛰고,
넷째 인을 떼니까 청황색 말이 뛰고,
말들이 뛸 때마다 세상에서는 각종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영화 감독이 배우들에게 큐 싸인을 하니까 장면이 바뀌고 배우들은 각자 맡은 연기를 하는 것과 같아요.
결국 이 세상은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 눈을 열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한이 아~ 우리 주님이 부활 승천 하시고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세상 역사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 동안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본 것입니다.
이 일을 보고 난 요한이 얼마나 신이 났겠어요.
야~ 우리 주님이 승리자이구나!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시구나!
야호!
하나님이 왜? 밧모 섬에 유배당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요한을 성령의 감동으로 천상으로 올라오게 하여서 천상의 모습과 세상의 종말을 보게 하였나요?
이는 이 세상에 사도 요한처럼 주의 사랑하는 자들이 남아서 핍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함입니다.
너희들은 결코 실패하고 진 것이 아니고 이긴 자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예수그리스도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를 알려 주어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해서 알려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비록 핍박을 받고 있지만 진 것이 아니고 이긴 자라는 것을 말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기뻐하면서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계시로 알아진 자들은 다 이겼어요.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세요.
어떤 이는 사자 밥이 되고,
어떤 이는 불에 태워지고,
어떤 이는 칼에 찢겨 죽어갔지만 모두가 다 죽음을 기쁨으로 맞아 하였어요.
이들은 모두가 계시로 요한계시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이긴 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 길을 순순히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만 그런가요?
아니에요.
오고 오는 모든 세대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간 믿음에 선진들이 다 그렇게 살았어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
우리도 요한계시록이 계시로 깨달아지면 넉넉히 세상을 이길 수가 있어요.
성경은 우리가 연구해서 알아질 내용이 아니에요.
그러니 그 어떤 성경도 학문적으로 접근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떤 이들은 원어를 독해하듯이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더 어렵게 만들어 놓았어요.
그런 책을 보면 요한계시록을 볼 마음이 안 들어요.
보면 더 헷갈리니까요.
이게 다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니 그러한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읽으면 머리에 쥐가 나고 하품이 나오고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분명히 하나님 말씀은 꿀송이 같이 달다고 했는데 왜? 쓴 나물 먹는 것처럼 싫은가요?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읽으면 말씀이 살아서 달음질을 하고 가슴이 쿵쾅 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흥분이 되고 기쁘고 감사가 일어나요.
찬송이 터져 나와요.
금방이라도 주님이 오실 것만 같고 말씀이 살아서 움직여요.
이걸 맛을 보아야 알 텐데!
이번에 이 맛들을 좀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이 맛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믿는 것이에요.
요한계시록을 학문적으로 문자적 해석을 하는 순간 성경은 이상한 책이 되고 말아요.
또한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사람들의 신앙을 이상한 염세주의 괴물로 만든 것은 모두가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편지에요.
그러니까 자기 백성들은 누구라도 다 알아 들을 수가 있어요.
성령께서 알아듣도록 해 주세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을 했어요.
그러니 성령께서 감동으로 깨닫게 해 주세요.
난 배우지 못했는데!
난 무식한데!
난 원어를 모르는데!
주눅 들지 마세요.
성령은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여서 다 알아 듣게 하십니다.
아니~ 당나귀 새끼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다 알아 듣게 하시는 분인데!
왜? 자기 백성들에겐 안 알려주겠어요.
다 알려 주시니 걱정하지 마세요.
요한계시록 모르면 어떻게 해?
근심 걱정 하지 마세요.
모르면 아직까지 몰라도 되니까 모르게 한 것이고 알면 알 때가 되어서 알려준 것이에요.
어린아이 때는 어린아이가 먹을 양식이 있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이 먹을 양식이 있어요.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는 분이 다 알아서 먹이시고 입혀 주세요.
눈을 뜨고 감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세요.
귀를 열고 닫으시는 분이 주님이세요.
마음을 여시고 닫으시는 분이 주님이세요.
주께서 때를 따라 다 일을 하시니까 걱정 하지 마세요.
주님에 대한 사랑만 확인하세요.
주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세요.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얘들아 내가 너희들을 붙잡고 있다!
그러니 안심하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특별한 책이 아니에요.
성경 66권 중의 하나에요.
그러니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성경을 특별하게 주시지 않았어요.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는 책이에요.
어느 성경은 중(重)하고 어느 성경은 경(輕)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어느 성경은 크게 주시고 어느 성경은 작게 주시지 않았어요.
모든 성경은 다 귀하게 받아야 할 하나님 말씀들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특별한 책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연약한 영혼들을 미혹하여서 집단의 유익을 위하여 교인들을 조직을 확장하는 도구와 돈 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여서 온갖 폐해를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TV 조선 뉴스에서 유00 집단 이야기를 하길래 잠간 보았습니다.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유00이가 얼마나 교묘한 논리를 전개하여서 교인들의 돈을 갈취하였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로서 돈은 더러운 것이고 쓰레기라고 한다는 겁니다.
쓰레기를 몸에 담아 두면 몸이 썩듯이 돈도 모아두면 타락하니까 쓰레기처럼 빨리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돈이 생기면 모아두지 말고 쓰레기를 버리듯이 ‘주식회사 세모’ 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세모는 교인들의 쓰레기를 치우는 공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작정 헌금을 하여서 여유만 생기면 갖다 바쳤다는 것입니다.
대담하는 아나운서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그 말을 믿었어요? 라고 하니까,
그 집단에 빠져 있으면 그 말이 맞는 것이라고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앞 다투어서 하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뉴스를 듣는 것이 참 씁쓸했어요.
그리고 안타갑기도 하구요.
아니~ 중세 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모든 교인들이 다 성경을 가지고 있어요.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 유00이가 그런 말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따져보고 요모조모 달아 보아야 할 것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말에 속는 것은 본인이 소경이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소경이니까 인도하는 자가 소경 놀음을 하고 있는데도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유00이와 같은 집단들이 어디 한 두 군데입니까?
주변에 보면 지천에 깔렸어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정통 교회라고 하면서도 교인들의 주머니를 강탈하는 거짓 목사들이 수두룩해요.
교묘하게 어떤 논리를 만들어서 미혹하고 있어요.
특히 신0지 같은 집단은 요한계시록을 자기들의 전유물처럼 행사하여서 극단적 종말론을 유포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공갈을 치고 있어요.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당하고 있어요.
이단이 빠지는 것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을 추수하기 위하여 미혹의 영을 그들 가운데 역사하게 하여서 거짓 것을 믿게 하였다고 할 수 밖에 없어요.
데살로니가 후서 2장을 봅시다.
살후 2:1-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초대교회 안에서도 이단들이 급박한 종말론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했어요.
그래서 바울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쉬 동심하지 말고 속지 말라고 합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미혹당하는 자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께서 거짓 신자들을 추수하려고 이단들을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마지막 종말의 징조를 말할 때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하였어요.
그리고 계시록 6장에 어린 양의 첫째 인을 떼니까 흰 말이 뛰는데 이는 적그리스도 세력을 말하는데 이들이 미혹의 역사를 일으켜서 사람들은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만들어요.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진리에 속하지 않는 자들을 추수하려고 거짓 선지자들을 출현 시켜서 가짜 신자들을 추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당신들 미혹 당하였다고 해 보세요.
길길이 날 뛰면서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자기들은 정통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우리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싸워 뭐 하겠어요.
그냥 자기 갈 길 가도록 내비 두어야지요.
어느 특정한 집단에 빠진 사람들 중에 인지부조화인 사람들이 대 부분이에요.
자기가 따르는 목사나 집단이 부정당하면 자기의 신앙 전체가 부정당하니까 그게 싫은 겁니다.
그러니까 틀렸다고 하면 도리어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게 모두가 그 속에 진리의 영의 없기 때문이에요.
만약에 그 속에 진리의 영이 있는 사람은 잘못을 깨닫고 그 집단에서 뛰쳐나와요.
하나님이 빼내 주세요.
왜? 요한계시록이 이단들의 전유물처럼 되었는가요?
이는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이 여러 가지 상징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것으로 말하고 있으니 그냥 보아서는 모르겠는 거에요.
이단들이 이 틈을 노리고 자기들이 그 비유와 상징을 안다고 하면서 미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 진리가 없는 사람들은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 가는 것입니다.
왜? 요한계시록이 상징으로 되어 있느냐 하면 로마와 같이 성도를 핍박하는 이방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자기 백성들만 알아듣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자기 백성들에게만 알려 주고자 하심이에요.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자기 종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잖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은 다 알아 듣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기독교인들의 차 뒤에 보면 물고기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을 보았지요.
이건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만 알아보는 사인이었어요.
땅에다가 물고기 그림을 그리면 아! 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 알아보았어요.
로마 놈들이 예수쟁이들을 잡아가니까 자기들만 알 수 있는 기호를 만든 겁니다.
이게 상징이에요.
요한계시록의 그림들이 바로 이러한 상징들이에요.
그러니까 자기 백성들은 그 상징을 알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 상징이 뭘 말하는지 깨닫게 해 주세요.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은 로마의 극심한 핍박이 일어날 때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 핍박 속에서 요한계시록을 썼어요.
핍박 받는 성도들에게 위로 하려고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비밀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드러내 놓고 말하면 핍박하는 세력들이 다 알아먹으니까 자기 백성들만 알아먹도록 상징으로 이야기 한 것입니다.
상징은 마치 자기편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비밀이에요.
비밀이란? 자기편만 아는 것입니다.
상대편을 모르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상징들을 눈을 열어서 알아보도록 “계시(啓示)”해 주시는 것입니다.
계시(啓示)가 뭔가요?
열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열어서 보여 주십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열어서 보여 주세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면 반드시 열어서 보여 주세요.
누가?
하나님이 보여 주세요.
사도 요한이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밧모 섬에 유배당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고난당하는 사도 요한에게 성령께서 감동으로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각장 마다 본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내가 보니,
내가 보매,
내가 또 보매,,,
이러한 말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다는 말이에요.
요한아!
여길 봐라!
저길 봐라!
그리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으로 설명을 다 해 주셨어요.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천상에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렇게 다루어 가실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여 준 것을 편지로 써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 준 것입니다.
그럼 사도 요한의 편지를 받은 교회들은 요한이 본 것을 깨닫게 되어 있어요.
성령이 깨닫게 해 주세요.
그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말씀 하실 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자기 백성들에게는 요한의 편지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다는 겁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는 말은 우리더러 귀를 만들어서 들으란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계시인거에요.
창세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다 알아 듣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마세요.
아니~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이 하나님 몫이잖아요.
우리가 구원을 따 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일이잖아요.
그럼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어요.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기 백성들을 각자 때에 맞추어서 성실하게 구원을 해 주세요.
진짜 그 속에 예수가 있는 사람은 느긋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이는 자기 안에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풍조에 밀리거나 하지 않아요.
자기 안에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방황하고 다니는 겁니다.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보여 주셨듯이 지금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해 주세요.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열어서 보여 주셔야지만 볼 수가 있는 책이에요.
그렇다고 우리도 사도 요한처럼 밧모 섬에서 기도하자 그러면 안 되어요.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기도해서 얻은 것이 아니에요.
성경은 사도 요한이 기도했다는 말이 없어요.
그냥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입은 것입니다.
설령 기도 했다고 하여도 사도 요한처럼 기도하면 열릴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계시는 그렇게 열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자꾸만 인간 쪽에서 어떻게 하면 된다는 식의 방법론으로 접근하지 마세요.
그건 거짓이고 사기에요.
성경은 성경을 기록한 성령께서 알게 해 주세요.
그래서 계시인겁니다.
누구에 대한 계시인가요?
예수그리스도에요.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가요?
사도 요한이 주님이라고 따르고 섬기고 믿던 분이에요.
그 예수 때문에 지금 죽을 고비에 처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의 눈을 열어서 그 예수그리스도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매불망 그러던 그 주님의 소식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도 요한에게 그러는 겁니다.
요한아!
나다!
너의 주(主)이시다!
내가 믿고 따르던 그 예수가 승천을 하시고는 영 사라진 줄 알았는데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다스리면서 사도 요한을 간섭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본 요한은 자기 꼬라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내 처지가 어떠한지는 고민의 대상이 아닌 겁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의 눈을 땅에서 하늘로 옮겨 주는 일을 해요.
우리의 세계관을 땅에서 하늘로 이관을 시켜 주어요.
공간적으로는 하늘이고 시간적으로는 세상 종말을 넘어서에요.
가치관을 땅에서 하늘로 옮겨 준단 말입니다.
밧모 섬에 유배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던 요한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계시 이상 더 큰 위로가 없고 더 큰 소망이 없어요.
이건 마치 평생 메시야를 기다리던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아들고는 “주여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라고 찬송을 한 것과 같아요.
사도 요한에게도 슬픔이 변하여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삶이 지치고 힘이 듭니까?
환경이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계시가 끊겨서 그런 겁니다.
우리의 눈에 예수그리스도가 안 보이고 현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환경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내 마음이 천국이면 어디에서도 천국으로 살아요.
하지만 내 마음이 지옥이면 천국에 갖다 놓아도 지옥이에요.
사도요한은 몸뚱이는 지옥에 있어도 마음은 천국이었어요.
사도 바울도 몸뚱이는 감옥에 가두어진 지옥에 있었지만 마음은 천국이었어요.
그러니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를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환경 바꿔 달라고 하지 말고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하세요.
예수님은 사도요한에게 그럽니다.
네 꼬라지를 보지 말고 내 약속을 믿으라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합니다.
내게 곧 너를 데리러 갈 테이니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뭐냐? 예수그리스도가 승리하신 분이라는 거에요.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긴 자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때문에 핍박 받는 자기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신 편지에요.
요한계시록은 절대로 공포를 주는 책이 아니에요.
공갈하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에요.
요한계시록은 너희들 예수 제대로 안 믿으면 지옥 보낸다는 것이 아니에요.
앞으로 잘해야 구원 시켜 준다는 것도 아니에요.
반대로 너희의 구원은 이미 창세전에 확정된 것이니 그 어떤 환란이 닥친다 하여도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알파와 오메가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시작과 끝으로 나타나신 거에요.
이는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예수그리스도가 시작 하였고 예수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시고 간섭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세상에 그 어떤 환란이나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창세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다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하시려고 자기 백성들만 알아보게 하려고 계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마세요.
이것 모르면 어떻게 하지 걱정 하지 마세요.
속된 말로 요한계시록 모른다고 해서 지옥 가지 않아요.
요한계시록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알게 해 주세요.
이걸 믿으세요.
지옥은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 가요.
예수 믿는 것이 우리 힘으로 안 되는 것이잖아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는 것이잖아요.
그럼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인 요한계시록도 은혜로 알게 해 주시겠지요.
믿으세요.
오늘본문 1절을 보세요.
계 1: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1절을 보면 하나님의 관심사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라 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합니다.
누구 계시라고요?
예수그리스도의 계시에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에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다스려 간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계시란 말은 덮여 있는 것을 벗겨서 보여 준다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였으니 예수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다는 말이잖아요.
맞아요.
승천하신 예수그리스도는 감추어져 계세요.
하나님이 감추어 놓았어요.
그 감추인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서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한에게 내 아들이 누구인지 보여 주시는 겁니다.
또한 내 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 주시는 겁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가 있었어요.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무나 볼 수가 없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에 계세요.
지상에서는 하늘나라를 볼 수가 없어요.
승천하신 예수그리스도는 육으로는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도 요한을 성령으로 하늘로 끌어 올리신 것입니다.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나라에 가니까 거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거예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보이는 것입니다.
너희들 눈에는 예수가 안 보이니까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 예수는 지금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자기가 이 세상에 와서 하신 일을 마무리 짓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뭔가요?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들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은 육체로 오신 분 하고는 상상 할 수도 없는 모습으로 계신 것입니다.
초림으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초라하였지만 승천하신 예수님은 강하신 분이에요.
예수님의 모습을 한번 봅시다.
계 1:12-20=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 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발에 끌리는 옷을 입었는데 가슴에 금띠를 둘렀으며!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 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고!
그 입에서는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에는 해가 힘 있게 비추듯이 광채가 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장은 왕의 복장이에요.
그리고 왕이 신하들을 호령하듯이 위엄 있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 눈은 불꽃같다고 합니다.
이건 마치 옛날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에 보면 애꾸눈 궁예가 관심법으로 사람들 마음을 읽는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듯이 예수님의 눈에는 우리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만물을 보는 듯 하는 불꽃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발은 똑 바로 말 안하면 밟아서 확 으깨듯이 하는 심판의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서 보던 그 주님이 아니에요.
요한이 품에 안기던 그런 예수님이 아닌 거에요.
요한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주님인 겁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그 모습을 보고서 너무도 무서워 죽은 자처럼 기절을 하고 맙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요한에게 손을 대시면서 안심하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님이 지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지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일곱 촛대는 교회를 말하는데 그 교회를 예수님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계세요.
어느 놈이 내 새끼들에게 손을 대는가!
손 대는 놈들은 내가 아작을 내겠다는 뜻으로 불철주야로 지키시고 있는 겁니다.
이 모습을 본 사도 요한은 자기가 밧모 섬에서 죽겠다고 아우성 친 것이 부끄러운 거에요.
세상에 주님이 이렇게 나를 지키고 있었는데,
나는 고작해서 유배당했다고 징징거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 했겠어요.
아마 부끄럽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고 그랬을 겁니다.
사도 요한이 이러한 주님을 보고 난 후 이 땅에서의 삶이 어떠하였겠어요.
징징거리고 살았을까요?
아니면 이긴 자 답게 감사하고 살았을까요?
최소한도 징징 거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천상에 가 보니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다 있는 겁니다.
아마도 먼저 간 아브라함서부터 모세와 다윗 그리고 엘리야와 스데반도 보았을 겁니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쓸 당시가 90년경이니까 12 제자들도 다 순교 당한 후에요.
그러니 12 제자들도 천국에서 사도 요한을 응원했을 겁니다.
세상의 수고를 마치고 제대를 한 베드로를 위시하여 12 제자들이 형제 요한에게 야~ 요한아! 하나님이 주신 편지를 땅에 있는 일곱 교회의 우리 형제들에게 빨리 전해주고 오라고 하지 않았겠어요.
요한도 신이 났어요.
요한계시록이 그래요.
얼마나 황홀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인줄 몰라요.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힘이 나요.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나 듣는 자나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아무나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에요.
오직 복 받은 자기 백성들에게만 주신 말씀이에요.
우리가 이 무리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에요.
그러니 사는 게 조금 힘들다고 예수 믿네! 마네! 하면서 징징 거리지 말고 정신 차리세요.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천국만 보여준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앞 날도 보여 주셨어요.
장차 이 세상이 어떻게 멸망 할 지를 보여 주셨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교회들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는지도 알려 주었어요.
요한이 보니까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이미 이긴 겁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공히 이기는 자에게는 무엇을 한다고 하지요.
이는 너희는 이미 이긴 자라는 것에에요.
우리더러 싸워서 이기라는 말이 아니고!
너희는 필연적으로 이기게 되어 있으니 싸우라고 곡언법으로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치 다 끝난 경기를 재방송으로 다시 보기 하는 것과 같아요.
예를 들어서 말합니다.
이 세상이라는 역사는 1에서 7까지 있어요.
그런데 하늘나라는 역사 바깥에 있는 8의 나라에요.
지금 사도 요한이 8의 나라에 가 있어요.
8의 나라에서 1부터 7에서 일어나는 세상일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은 아직까지 1에서 7에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1에서 7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늘에 있는 8의 나라에서 본 것을 말해주라고 하는 겁니다.
네가 가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다가 너희들은 1에서 7을 넘어온 8의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이긴 자라는 것을 알려 주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니 지금 마치 진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서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쉬운 말로 내가 천국에 가서 너희들 모습을 보았는데 전반전에 6대 0으로 지고 있다가 후반전에 7대 6으로 이기더라는 거에요.
예전에 개그콘서트에 보면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데 어린 아이가 영화를 미리 보고서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다 말해 버리는 스포일러 코너가 있었어요.
악당이 주인공을 막 쫓아가는데 주인공이 막 집힐 것 같은 겁니다.
잡히면 죽는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손에 땀이 나면서 속으로 잡히면 안돼! 안돼! 하면서 보고 있는데,
어린 아이가 아! 저 악당은 달려오는 차에 치여서 죽어요! 그러는 겁니다.
그럼 관객들은 에이~ 하고서 김이 샌다고 해요.
영화는 김이 새서 재미가 없을 수 있지만 요한계시록 이야기는 김이 새는 게 아니라 더 신이 나고 기뻐요.
황홀해요.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지금도 심심찮게 재 방송으로 방영을 해요.
모두가 이긴 경기들을 보여주니까 느긋하게 보아요.
전반전에 2골 먹어도 후반전에 3골 넣어서 이겨요.
다 아니까 전반전에 2골을 먹어도 가슴 졸일 필요가 없는 겁니다.
후반전에 이기니까요.
성도의 신앙이 그래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반전이에요.
전반전에는 무참히 깨져요.
엄청 환란을 당하고 극심한 핍박을 받아요.
그런데 후반전이 되면 우리를 핍박 하던 놈들은 몽땅 불구덩이에 처 놓고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시원한 팥 빙수 먹으면서 피서하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이 그런 이야기인거에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엄청 고난을 받았어요.
죽고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요한을 덜렁 들어서 하늘로 올라오게 한 겁니다.
그리곤 천국에서 이긴 요한을 보여 준 거에요.
안식하는 요한을 보여준 것입니다.
요한이 너무 고마워서 천사에게 절을 하니까 천사가 기겁을 하면서 손 사래질을 하면서 같이 맞절을 하는 거에요.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하면서 절은 오직 어린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에게만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사양하는 겁니다.
요한의 이 마음을 이해하시겠어요.
요한계시록이 그렇게 신이 나고 재미있는 책이에요.
이렇게 신이 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시고서는 저 아래 고생하고 있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가서 너희는 이미 이긴 경기를 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알려 주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 일을 모두가 예수그리스도가 진두지휘하고 계신 거예요.
예수그리스도가 장기를 두듯이 자기 백성들을 이렇게 저렇게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서는 이 사실을 몰라요.
예수님이 안 보이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땅에서 감추어진 그 예수를 보게 하시려고 사도 요한을 하늘로 불러 올린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대표로 가서 보고 온 겁니다.
그리곤 지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알려 주는 겁니다.
우린 성령에 믿어지게 해 주셔서 믿음으로 요한이 본 그 천국을 보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을 하늘로 불러 올린 그 성령께서 이제는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 요한이 보낸 편지가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지게 하세요.
그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 겁니다.
성령이 듣게 해 주는 사람들은 편지를 통해서 하늘나라를 보는 거에요.
믿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감추어진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예수그리스도의 계시의 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그리스도가 주인공이에요.
덩달아서 예수님에게 속한 성도들도 두 번째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용이나 짐승이나 일곱 머리 열 뿔이나 음녀들은 모두가 엑스트라에요.
성도들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들이에요.
그러니 이 놈들을 겁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놈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허락 하에서 성도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맞은 겁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수님이 하라고 한 것만큼만 해요.
이러한 사실들을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시고 빨리 가서 지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다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책이에요.
누구의 계시라고요?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에요.
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가요?
이는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요?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주세요.
구원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하실 일이에요.
우리는 구원을 위하여 할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요.
예수님 홀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세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홀로 다 이루신 것을 혜택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선물이고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핍박 속에서 살아가는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가 만물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역사를 다루어 가시고 또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키고 계시는지를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알려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에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위로와 축복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이 편지를 통하여서 위로를 받았어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떻게 승리하셨고!
그 승리를 어떻게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어요.
우리가 어떤 혜택을 입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은 자기 백성들에게 위로로 주신 말씀이에요.
소망을 주는 말씀이에요.
요한계시록은 절대로 공포를 주는 말씀이 아니에요.
만약에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공포감을 조성한다거나 자기들만 특별히 안다고 하면서 자기 조직의 종으로 삼는 자들은 100%로 이단이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어요.
또 하나 경계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침서가 아니에요.
또한 저렇게 하면 환란을 피할 수 있다는 방법론을 말하는 것도 아니에요.
종말이나 환란은 우리가 어떻게 피할 수가 없어요.
종말은 이미 확정 되어 있고!
구원도 이미 확정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방법론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가 이단이에요.
구원도 예수님이 다 하시고, 심판도 예수님이 다 하세요.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는 뜻도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지금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지를 알려주시고 있다는 말씀이기도 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누구이다” 라는 식으로 자기 계시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다 다르게 나타나요.
계 2:1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8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12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계 3: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14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교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시대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교회마다 처한 상황에 맞는 위로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이렇게 저렇게 이기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이는 예수님이 친히 교회를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이기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입니다.
이는 어느 시대고 예수그리스도는 항상 계시다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부터 만물의 마지막까지 항상 만물의 주관자로 계세요.
왜냐하면! 만물을 예수님이 창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께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만물 자체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1장을 봅시다.
골 1:13-17=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가 나오지요.
그가 누구인가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분이지요.
즉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이신 예수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창조주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까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피조물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분명히 창조주세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란 뜻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봅니다.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신다고 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태초란? 이 세상 바깥을 말해요.
성경을 보면 두 태초가 나와요.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합니다.
태초라는 말은 같지만 그 의미는 달라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는 기원의 시작을 말하는 태초이고!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역사 바깥을 말해요.
즉 하나님 나라를 말해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는 시간의 시작을 말하는 역사에 속한 태초를 말해요.
이를 시간적인 태초라고 해요.
하지만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세상 바깥 즉 묵시에 속한 태초를 말해요.
이 태초는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는 태초에요.
이를 공간적 태초라고 해요.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것은 역사 바깥에 계시던 하나님이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하신 일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창세전이라는 태초에 계시던 하나님이 무엇을 위하여 만물이라는 역사를 만드셨고 또한 역사 속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부모가 자식을 낳아 놓고 내가 너를 어떻게 낳았고 어떻게 키워왔는지 아느냐고 말해주고 있는 것과 같아요.
요한복음 1장 1절을 다시보세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어요.
하나님과 말씀이신 분이 함께 계셨어요.
그런데 그 말씀도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라고 하는 하나님과 말씀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 됩니다.
그래서 2절에서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고 함께예요.
함께!
하나님이신 하나님과 말씀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셨어요.
하나님이신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이라고 하고, 말씀이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태초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계셨어요.
이 사실을 성령 하나님이 증거 하시고 있어요.
성경은 성령 하나님이 기록을 하셨지요.
그러므로 태초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이걸 창세기 1장에서는 “우리” 라고 해요.
창 1: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지요.
그 우리가 바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세요.
이를 신학적 용어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만물이 말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하지요.
이는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만물은 없었어요.
만물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도 원래 없는 자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창세전에 어떤 언약을 하셨어요.
어떤 언약인가 하면 아들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드는 언약이에요.
이름하여 창세전 언약이에요.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4-7=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잘 보세요.
창세전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여기서 말하는 창세전이란?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을 말해요.
이건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말하는 태초에요.
이름하여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창세전이라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들이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무슨 언약인가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들자는 언약이에요.
이건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시고 작정 하신 것이에요.
우리하고 의논해서 한 것이 아니고!
이 때는 우리는 없었어요.
하나님만 계셨어요.
이 언약에 의해서 우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게 창조에요.
예레미야 1장을 봅시다.
렘 1:4-5=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어느 날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십니다.
부르셔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선택 했고 구별해서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열방의 선지자로 만들었다는 말이에요.
만들어 놓고 가만 있자 예레미야를 어디에 쓸까 하지 않고!
이미 정해 놓고 거기에 걸맞게 만드신 거예요.
이렇게 되면 예레미야 팔자는 변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계획한 대로 사용이 되어질 뿐이에요.
이게 창조에요.
우린 모두가 그렇게 창조가 되었어요.
제가 목사가 된 것도 이미 창세전에 계획된 일이에요.
아니~ 예레미야만 복 중에 짓기 전에 계획 되었고 저는 아닌가요?
아니에요.
저도 예레미야처럼 복 중에 짖기 전에 계획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58세 어머니가 47세에 낳으신 겁니다.
전 없어야 할 자인데 창세전에 마지막 때에 예레미야처럼 포로로 잡혀가는 자기 백성들을 위로 하라고 목사로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깨닫게 된 것도 제 능력이 아니에요.
저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좋은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렇다고 똑똑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성경은 믿어지고 깨달아져요.
모두가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게 해 주셨고 또한 지금도 계시해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에 따라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보세요.
그 입에 하나님이 말씀을 넣어 주시고는 보내잖아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준 말만 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만 말하고 있어요.
제가 여러분을 만난 것도 다 창세전에 계획된 만남이에요.
어떤 이는 선함으로 만나고 어떤 이는 악함으로 만나요.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 선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른 것입니다.
이게 창조에요.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창조라는 말의 뜻은 어떤 원인에 의하여 나타난 결과를 말해요.
어떤 원인인가요?
창세전 언약이라는 원인이에요.
그러니까 창세전 언약이 만물을 창조케 한 원인인 것입니다.
우리를 존재케 하는 원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창세전 언약 때문이에요.
우리가 있기 전에 창세전 언약이 먼저 있었어요.
우리를 존재케 하는 것이 창세전 언약이에요.
언약이 우리의 생명이에요.
그래서 성도를 일컬어 언약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후손은 언약을 하신 분들이 만들어 가세요.
그래서 만물을 말씀이신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부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이 창조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에요.
세 분 다 창조의 일에 개입을 하셨어요.
그럼에도 말씀이신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 했다고 하는 것은 말씀이신 아들 하나님이 만물 속에 뛰어 들어서 창세전 언약을 구현하는 주체자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만물은 예수님이 예수님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골로새서를 봅시다.
골 1:16-17=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그에게 창조가 되되 라고 하지요.
그가 누구인가 하면 성자(聖子)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이 만드셨어요.
왜? 만들었느냐?
예수님을 위해서에요.
예수님이 만든 만물 속에는 하늘에 것도 있고 땅에 것도 있어요.
천지란? 하늘과 땅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하는 겁니다.
쉬운 말로 천지 속에는 천사와 같이 하늘에 속한 영물도 있고, 인간과 같이 땅에 속한 것들도 있어요.
또한 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즉 권세나 정사나 주관과 보좌들 모두가 예수님을 위하여 만들어졌어요.
이건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이 하늘에 권세와 땅에 권세를 가지고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귀도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가지고 십자가 사건에 사용을 하셨지요.
가룟 유다는 악한 자에게 속하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사용하셨어요.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무당도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사용되어지고 있고!
절간에 스님조차도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신자만 있으면 안 되어요.
불신자도 있어야 해요.
불신자를 통해서 신자가 드러나요.
신자와 불신자는 짝이에요.
신자에게 일어나는 권세도 창세전 언약을 위한 것이고!
불신자에게 일어나는 권세도 창세전 언약을 위한 것이에요.
쉬운 말로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다 예수님의 주권 아래서 행하여진다는 말입니다.
악인도 악한 날을 위하여 사용되어지고 있어요.
한 사람이 나고 한 사람이 가는 것도 다 예수님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았어요.
우리는 예수를 모르고 살았어요.
또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사실들을 알려 주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너희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지를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계시의 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성경을 통해서 이야기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성경은 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고 하지요.
성경 속에는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요.
이스라엘도 있지만 이방 나라도 있어요.
이는 곧 성경은 온 세상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성경에 등장하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국가들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온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고,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은 온 세계 속의 모든 나라들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와 그 교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도 성경 속에 포함 되어 있어요.
그럼 요한계시록에서 일어나는 일도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는 하나의 샘플과 같아요.
샘플은 본 제품을 보여주기 위하여 맛 보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들에 의하여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도 모두가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샘플과 같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이에요.
성경은 어느 시대고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에요.
항상 오늘 날 속에서 들려지는 하나님 말씀이에요.
그럼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어느 시대에 필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면서 그 예수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현재이고,
“전에는” 과거이고,
“장차는” 미래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전에도” “이제도” “장차” 라는 역사 속의 시간 순으로 말하지 않고,
“이제도” “전에도” “장차” 라는 즉 현재인 “이제”를 먼저 말하고, 과거인 “전에” 라고 하고, 그리고 미래인 “장차” 라는 순으로 말하고 있어요.
이는 예수님은 항상 오늘 날로 계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이고 항상 존재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에도 계셨고,
신약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시는 분이세요.
그럼 요한계시록도 이제로 해석하여야 하고 전에로 해석하여야 하고 장차로 해석하여야 해요.
이건 요한계시록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성경이 다 그러해요.
모든 성경은 이제와 전에와 장차의 일들로 기록이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모든 성경이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장차 일어날 미래적인 것으로만 해석 하면 안 되어요.
예수님은 어제도 계셨어요.
그럼 요한계시록도 어제로 해석하여야겠지요.
예수님은 지금도 계세요.
그럼 요한계시록을 현재적으로 해석하여야겠지요.
예수님은 장차 오실 분이에요.
그럼 요한계시록도 미래적으로 해석하여야겠지요.
과거적으로도 해석하여야 하고!
현재적으로도 해석하여야 하고!
미래적으로도 해석하여야 해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항상 오늘날로서 이제도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지금 이 시대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때 요한계시록도 다른 성경과 같이 우리에게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여러 가지 학설로 난도질 한 것은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이에요.
요한계시록은 교단마다 해석하는 것이 달라요.
모두가 요한계시록을 학문적으로 접근을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학설들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학설은 그냥 학설일 뿐이에요.
진리가 아니에요.
그러니 어떤 학설에 의미를 두지 마세요.
세대주의가 어떻고!
무 천년설이 어떻고!
전 천년설이 어떻게
후 천년설이 어떻고!
이러한 것은 그냥 참고만 하세요.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라고 가볍게 여기세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계시(啓示)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봅시다.
알다시피 예수님은 그리스도세요.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구약을 보면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에게 기름을 부었어요.
그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선지자이고 제사장이고 왕이란 말입니다.
맞아요.
예수님이 선지자이고 제사장이고 왕이세요.
선지자는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직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중보하는 직입니다.
왕은 통치하고 다스리는 직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셔서는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다가 죽임을 당하셨어요.
이는 선지자직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의 “전에도” 사역이에요.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가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이제 그가 성령을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셨어요.
이는 예수님이 오심과 같아요.
성령이 자기 백성들 속에서 위로하고 중보하는 일을 하세요.
이는 예수님의 “이제도” 계시는 즉 오늘로서의 사역으로 제사장 직을 말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남아 있어요.
예수님은 승천 하실 때 내가 하늘로 간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재림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이는 “장차의”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삼직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계시하시기를 나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말씀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 이 세 가지 시제(時制)성을 놓치면 안 되어요.
지나간 이야기로 국한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현재만 이야기해도 안 되고!
또한 미래만 이야기해도 안 되어요.
모두 다 이야기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요한이 이 요한계시록을 쓰는 기점으로는 모두가 미래적인 일입니다.
이러면 요한계시록 자체가 예언적 의미를 담게 됩니다.
즉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일이란? 사건이에요.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상징적으로 해석을 하면 안 되어요.
상징 속에서 실제를 찾아내야 해요.
비록 내용이 상징으로 되어 있지만 그 상징은 자기 백성들에게만 알게 하려는 비밀이지 실제가 아니란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반드시 역사 속에서 나타날 사건이에요.
사건을 상징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걸 묵시 문학이라고 하는데 구약의 에스겔이나 다니엘서를 보면 이러한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우리는 이런 것을 흔히 환상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날 제국들에 대하여 이 상징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다니엘 2장을 봅시다.
단 2:29-46= “왕이여 왕이 침상에 나아가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30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35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36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37 왕이여 왕은 열 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39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40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41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43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44 이 열 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46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에게 장차 일어날 나라에 대하여 신상으로 알려 줍니다.
신상으로 알려준다는 것은 이 세상 나라 자체가 우상의 나라란 말입니다.
신상이 어떤가 하면 부분 부분이 다 달라요.
머리는 정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철이고 발은 철과 흙이 섞였어요.
이건 장차 역사 속에 일어날 나라들을 금속성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 끝에 뜨인 돌이 하나가 날아와서 서 있는 신상의 근거인 발을 쳐서 박살을 내 버려요.
그리곤 그 돌의 나라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역사 속에 그대로 나타났어요.
머리인 ‘금’ 나라는 느브갓네살이 통치하는 바벨론을 말하고,
가슴과 팔인 ‘은’ 나라는 메대 바사를 말하고,
배와 넓적다리인 ‘놋’ 나라는 헬라를 말하고,
‘철’로 된 종아리는 로마를 말하고,
철과 흙이 섞인 발은 로마에서 갈라진 열국의 시대를 말해요.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철과 흙이 섞인 발의 시대에요.
이제 곧 하늘에서 뜨인 돌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재림을 하시면 이 세상 나라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다시 보여 주었어요.
다니엘 7장을 봅니다.
단 7:1-28=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11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12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았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16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19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28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내 낯 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준 세상 나라는 짐승으로 보여 주셨어요.
첫째 나라는 사자이고,
둘째 나라는 곰이고,
셋째 나라는 표범이고,
넷째 나라는 괴물처럼 열 뿔을 가진 짐승이에요.
이건 이 세상의 본질이 짐승이라는 말입니다.
짐승이란?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멸망 받을 것이란 말이에요.
이러한 짐승의 나라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두셨어요.
이들이 성도들이에요.
그런데 짐승들이 성도들을 괴롭혀요.
하지만 끝내는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다 죽이고 사람들인 성도들만 데리고 하늘나라로 가요.
이 하늘나라는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해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짐승들이 날뛰고 성도들을 괴롭힌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토록 평화롭게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구약의 계시록이에요.
다니엘이 언제 써졌는가요?
유다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간 때에 써졌어요.
육적으로 보면 유다가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망한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에요.
로마의 핍박이 극심 할 때에 써졌어요.
하지만 결과는 세상은 망하고 성도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긴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우리는 이미 이겼어요.
이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비록 지리멸멸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이긴 자들이에요.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나요?
너희들 눈에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합니다.
망하고 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성공하고 이겼다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라고 합니다.
그가 죽은 것 같지만 실상은 살아서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가 되어서 만물을 다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현실을 보지 말고 주 예수를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죽었다가 살아나서 만왕의 왕이고 만유의 주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봐라!
예수가 이겼다!
예수와 함께 하는 너희도 이긴 자이다!
그러니 현실이 비록 답답하고 아프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이겨내라고 하는 겁니다.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뭐라고요?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창세기가 역사의 문을 여는 책이라고 한다면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문을 닫는 책이에요.
예수그리스도가 창세기를 통해서 문을 연 이 세상의 역사를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문을 닫으세요.
그래서 창세기에서는 여호와가 구원자로 나타나지만 요한계시록에서 여호와는 심판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것은 다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누가 회복시키느냐 하면 예수그리스도세요.
이를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세요.
계 1:1-3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이 요한에게 주셨어요.
무얼 주셨나요?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알려 주셨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에요.
그리고 “속히 될 일”이에요.
말 장난이 아니에요.
반드시 일어날 일 이라구요.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천국에 가요.
눈물 없고 고통 없고 아픈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는 그 곳으로 간단 말입니다.
언제?
곧 이에요.
곧!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선전 하지요.
커밍 쑨~이라고,,,
곧 개봉 되니까 기다리라고,,,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에요.
커밍 쑨~ 이에요.
곧 이루어집니다.
요한은 증거 합니다.
난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준 것을 다 증거 했다!
누구든지 내가 증거 한 그 증거를 받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복 받은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그 복을 한번 실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이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서론이라 좀 길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짧게 하겠습니다.
기도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 요한의 눈을 열어서 천국을 보게 하시고 역사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게 해 주셨듯이 우리의 눈을 여시고 귀를 여시고 마음을 열어서 보게 해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을 이기는 담대함을 주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이긴 자로서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