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도록 작은 형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밤이 오니 방에는 죽은 형과 나만이 남아 있는데 죽은 형이 무서워 집니다.
나는 부엌으로 나가 방에 불을 때고 무릎에 머리를 엊고 잠을 잡니다.
새벽 무렵에 작은 형과 이모부와 다른 사람이 차를 끌고 왔고
죽은 형을 염합니다.
그리고 관을 차에 싣고 성당으로 갑니다.
신부님은 죽은 형을 위하여 연미사를 드리고 관을 축성합니다.
미사가 끝나자 관을 트럭에 싣고 청주시 율량리로 가서 공동 묘지에 묻습니다.
나를 누구보다 끔찍히 사랑해 준 큰 형이 무덥에 묻히는 것을 보고 나는 오열을 합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슬플수가 없습니다.
차가 떠나 청주로 오자 이모부가 나에게
"세근아 ,"
"예 "
"너는 오늘부터 우리집에 와 있거라"
고 하십니다.
이모부가 사는 곳은 내덕동 옆의 운천동입니다.
그런데 이모님의 식구가 상당히 많습니다.
할머니
이모
이모부
딸 난숙이
영숙이
숙자
설자
명숙이
병용이
병규
나
10식구에 나까지 끼면 11식구입니다.
이모부 혼자 버는 돈으로는 아이들 학비도 부족한데
나까지 오니 식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자 (국민학교 4학년)가 나를 보며
"오빠 가 가"
라고 대 놓고 가라고 합니다.
나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도 갈 곳이 없어 그냥 눌러 있자
이번에는 이모님이
"세근아"
"예"
"무극에 너의 삼촌이 살지 않느냐?"
"예"
"그리로 가거라 네가 보다시피 우리가 무척 가난하단다"
고 하십니다.
그렇게 나는 쫓겨 납니다.
(계속)
첫댓글 참 슬픈 일이네요
이모댁에서 쫓겨 나다니요
그래서 삼촌 댁에 가셨군요
정말 파란만장한 삶입니다
가난에는 어쩔 수 없나봐요
제 자신이 무력하니 어떻게 합니까?
그대로 운명에 따를 수밖에 없어요 시인님 감사합니다.
마음이 시린 이야기 입니다
산자와 죽은자가 엇가리는
그시절의 풍경이 겠지요
북한이 침력만 하지 않았다면 그런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차마두님 벚꽃 구경 가셔야지요 하하하
에구.참 마음이 아픈 대한민국의 과거군요.그런일들이 당시엔 허다했죠
양철북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때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이 쳐들어 오지만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고 슬퍼라
별꽃님 어서오세요 좋은 봄날 죄송합니다. 감사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세상 참 불공평합니다.
청덤골님 어서오세요 자꾸 ㅈ뵈송한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즐겁게 쓸 수도 없어요 하하하
또 처량해지네요. ㅠㅠ
난석님 어서오세요 즐거운 이야기를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곧 좋은 날도 올껍니다.
넘 슬퍼요 ᆢ 그렇게 어린날을
보내셨군오ㅡ ᆢ
김민정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제 운명인것 같아요
빈곤자,외론자,미성년자
그 아픔들을...
안타깝습니다 ~
유무어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미숙한 바보이기에 이정도일것입니다 하하하
오늘도 가슴아픈 사연 ....
읽어가면 눈물나는 사연....그래도 읽어야 합니다....
불쌍한 세근이를위해.....
이제 단신인 세근이는 어찌 됩니까........하늘도 무심하시지........
(세근이라해서 죄송합니다....)
하하하 세근이나 네근이나 괘ㄴ찮아요 하하하
제 이름을 불러주시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世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