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1코린토 3,1-9 루카 4,38-44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일상을 아주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가장 가까운 당신의 제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주저 없이 그 부인을 찾아가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그 “열을 꾸짖으시니”라는 표현을 보면 열병이란 것이 내 안에 있는 불평불만으로 생긴
화병 같은 것인가 봅니다.
내 안에 분노와 미움을 일으키는 악한 영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기에
마음의 병이 치유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병만이 아니라 육신의 병도 치유하십니다.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어 모든 것을 창조의 질서로 되돌리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전하십니다.
그러자 마귀들이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봅니다.
군중은 그런 예수님을 곁에 오래 두고 싶어 합니다. 수시로 삶을 괴롭히는 병과
고통으로부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외딴곳’으로 가시어
하느님의 뜻을 물으시고, 당신의 소명을 재확인하십니다.
칭송받고, 영웅시되는 곳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해방과 치유를 바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선교 사명을 엿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이러한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복음이 되고, 사람들의 칭송에 안주하지 않으며,
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자기만족에 머물면, 믿음도 이기적 욕망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언제나 예수님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도로 숨을 쉬고 살아야 하는 법입니다.
/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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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봉 베드로 신부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1코린토 3,1-9 루카 4,38-44
연중 제22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인 나자렛 주민들의
인간적인 기대와 욕심이 예수님의 사명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었는지 묵상했습니다.
같은 고향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느님 나라의 일차적인 수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심이 감추어진 기복적인 마음으로는 결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사심없는 순수한 마음, 열려있는 넓은 마음 안에서만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분과 함께 그분의 길을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복음도 묵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향 나자렛을 떠난 예수님께서 인근의 카파르나움이라는 동네로 오십니다.
늘 하시던대로 회당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가르치십니다.
나자렛의 고향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에 감탄하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그들 동네에 맞아들입니다.
예수님도 기분이 좋으셨던지 그 동네들 떠나지 않고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가서 열병으로
고생하는 그의 장모를 낫게 해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소문을 듣고 그 집을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을 한사람도 마다하지 않고 모두 치유해 주십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치고 병든 가난한 사람들을
손수 치유해 주십니다.
선포와 치유 이 두가지 일이 예수님께서 공생활 시초에 갈릴래아 지방에서 보여준 모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진심어린 모습에서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그들은 다른 종교지도자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권위있는 말씀에 전율했고,
손수 그들을 방문해주신 크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음 날 당연히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과 더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다른 고을에서도 전해야 한다”
하시며 그들의 청을 물리치고 당신의 길을 계속 걸어가십니다. 나자렛 사람들만의 예수님이
될 수 없었듯이 역시 카파르나움 사람들만의 예수님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 참사랑은 보편적입니다. 조건이나 한계가 없습니다. 집착도 없습니다.
참되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은 더욱 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둡니다.
그래서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모두 한곳에 머물지 않으시고 더 많은 사람을 찾아 떠나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배우도록 합시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넓고 따스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 대구대교구 이호봉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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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1코린토 3,1-9 루카 4,38-44
열이 가시고 질병이 사라지는 일은 기적이지요. 삶이 힘들 때마다 성경 안의 기적이 지금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우리 가운데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럼에도 성경의 기적은 글 속의 이야기일 뿐 우리의 현실 삶과는 연관이 없는 듯
건성으로 읽히고 곧장 잊혀집니다.
다시 묻습니다. 기적은 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지요?
예수님께서 이루신 기적을 다시 곰곰이 따져 봅니다.
열병을 앓던 시몬의 장모, 갖가지 질병을 앓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입니다.
오직 마귀들만이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고 사람들을 서로 멀어지게 합니다.
가까이 가는 이와 멀어지는 이 사이에 예수님께서 서 계십니다.
기적은 멀리서 가까운 곳으로 모여든 이들이 있어야 일어나는 이른바 연대의 사건입니다.
멀어지고 외면한, 그래서 입을 다물고 떨어져 나가는 곳에는 멸망과 파멸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에 가까이 다가가셨고 사람들은 어김없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기적은 풍성히 베풀어집니다. 멀리서 바라는 기적은 요행이고 우연일 테지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신기하겠지만, 기적이 제 삶과 인연을 맺을 일은 없을 테지요.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와 어떤 식으로든 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기적은 지금 가까이 있는 이들이 나와 함께 있는 그 자체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지금의 삶에 함께하는 이들과 더욱 가까워지려는 이에게는 매일의 삶이 기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요. 나의 삶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맙게 사랑스럽게 함께하다니요.
이렇게나 기쁜 소식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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