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증권업계에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절기상 입춘, 우수가 지났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인 셈이다. 주식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주된 수익원인 수수료가 급감하자 실적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증권사 3월 구조조정설'마저 나오고 있는 때에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증권사 직원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더 흉흉해지고 있다.
21일 용인 동부경찰서와 동부증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동부증권 분당지점에서 근무하던 ㅇ과장이 지난 18일 밤 9시15분쯤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의 모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했다. 경찰은 타살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볼 때 ㅇ과장이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증권사 영업사원은 손익분기점(BEP)이라는 실적 목표치를 부여받는다. 동부증권의 경우 과장급은 매달 1100만원이 손익분기점이다. 주식거래 수수료가 거래금액의 0.45%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한달에 사고 파는 금액이 24억원가량은 돼야 하는 것이다.
IBK투자증권의 경우 손익분기점의 65% 미만자는 연봉의 25%를 삭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증권은 손익분기점과는 별개로 지난해 9월부터 부진한 직원을 분류하는 기준을 세웠다. 세전 월급의 1.2배에 해당하는 성과를 5개월 연속 거두지 못할 경우 부진직원이 된다. ㅇ과장도 부진직원으로 분류된 상태였다. 실적 압박이 심하다보니 직원 개인 계좌를 돌려 수수료 실적을 만들라고 압박하는 지점장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고객 돈이 깡통되는 게 요즘 시장인데 평가까지 그렇게 받았으면 심적인 압박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신증권이 다음달 지점 20개를 줄이기로 하는 등 비용절감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의 한 직원이 지난달 말 퇴사하면서 사내망에 남긴 글이 실적에만 혈안이 된 증권업계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 이윤 추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화투자증권의 직원은 무한체력의 박지성이 아닙니다."
< 김지환·김경학 기자 baldkim@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