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宮)의 여자 ●
사냥은 시작됐다. 나는 다섯명의 병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엄청난 기대 속에 시작을 했지만
짐승들이 너무 약해서 검으로 한 번만 찔러도 픽- 픽- 죽는 것이다. 너무나도 쉬웠다. 병사
들은 나의 실력에 놀라는 듯 했지만, 열심히 죽은 동물들을 주우면서 계속해서 뿔나팔을 불
었다. 내가 계속 잡았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국왕도 참석하여, 항상 자리를 빛냈지만, 국왕이 빠지고 귀족들과 왕자, 기사들만
남은 지금은 후한 상금과 진귀한 고기를 맛볼 수 있기에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동물을 찾아
다녔다.
여태까지 사슴 두마리와, 토끼 한마리, 멧돼지 한마리를 잡았는데, 그 중 가장 억셌지만
단순했던 건 멧돼지였다. 정말 무대뽀였다.
"다른 짐승들은 보이지 않나요?"
"네.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게 좋…."
"쉿."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면서 말했다. 나의 말에, 입을 열고 말을 했던 한 병사는
입을 꾸욱 다물며, 내가 살피고 있는 곳을 함께 살폈다. '히잉. 히이이잉.' 어찌보면 말
울음소리라고 들을 수도 있었지만, 이것은 말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약간 특이한 울
음소리에, 말에서 내려 그곳으로 천천히 갔다. 병사들도 걸음을 조심하며 나를 따라왔다.
눈 앞을 가리고 있던 덤풀을 손으로 걷어내자, 그 곳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보였다. 소처
럼 적갈색을 띄고 있었지만, 소와는 다르게 흰색 세로줄 무늬가 있었다. 굉장히 듬직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이 동물의 이름은 뭔가요?"
"봉고라고 합니다. 수명도 20년 내외고, 야행성이어서 밤에만 돌아다니고, 깊은 산림에
사는데 가장 귀한 동물로, 운무림의 정령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병사는 그렇게 소상히도 알면서, 아직도 신기한 듯 '봉고'라는 동물을 쳐다봤다.
"귀한 것이지요?"
"네. 사냥 동물 중에는 가장 귀한 동물로 압니다."
그는 정중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두 마리인데다가 약간 드세
보이니 한번에 샤삭- 하고 끝내자는 생각이었다.
- 푸석 -
"히이이잉이잉!"
하지만, 병사의 긴장된 발소리에 물을 먹다 놀란 봉고들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병사를
째려보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들을 놓칠 것 같아 바로 달려들었다. 그들도 물론 달리기 시작
했다. 나에게로.
그들은 화가난 듯 나에게로 돌진해 왔는데, 소와는 달리 꽤나 몸놀림이 빨랐다. 그는 나를
뿔로 들이받으려고 했지만 내가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 휙 휙 -
나는 가죽 조끼 안에서 단검을 두자루 꺼내 그들에게 하나씩 맞췄다. 옆구리쪽에 정확히
맞았다. 그들은 아픈 듯 괴로워했지만, 다시 나에게 달겨들었다.
"롱소드 좀 주세요! 두 자루!"
나는 반존칭, 반말을 섞으면서 병사에게 말했다. 그들은 나에게 바로 롱소드 두자루를 쥐
어주었고, 나는 바스타드 소드를 던져놓고는 그들의 보폭에 맞춰, 내가 검을 쓸 때 하는 습
관처럼 '취,취' 거리면서 그들의 스피드를 맞췄다.
- 푸욱 -
그리고 그들이 양쪽에서 들이받을 때, 가볍게 뛰어올라 두 개의 롱소드로 그들의 목을 찔
렀고, 주위에선 박수소리가 들렸다. 뿔나팔이 동시에 두번 울리는 순간이다. 내가 땀을 닦
고 승리에 찬 미소를 짓자, 붉은 혈을 흘리고 있는 짐승을 회수한 병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쥬니아 공주님, 회수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지요."
"그럴까요?"
병사들도 봉고를 두마리나 얻자, 기분이 좋았는지 계속해서 나를 재촉했다. 계속해서 들려
오는 기사와 왕자의 피리소리가 약간 거슬리기도 해서, 나는 내 안테나(?)를 세우고 다른
동물들을 찾아 떠났다.
다른 짐승들은 너무나도 쉽게 죽어서, 나도 손쉽게 짐승들을 회수할 수 있었다. 2시간이 정
도 지나고, 사람들에게 돌아오라는 신호의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다시 마그놀리아 왕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 때까지도 뿔피리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아바마마. 쥬니아 왔어요."
나는 스커트가 짧고 붙은지라, 다른 드레스처럼 치마를 양손으로 잡고 올릴 수도 없어서
무릎을 살짝 굽힌 뒤, 다시 일어났다. 그의 옆에 있는 샤를로트 왕비에게도 살짝 인사를 한
뒤 환하게 웃어주었다. 내 웃음에 그녀도 활짝 웃었다. 물론 그 중간에 스파크가 튀긴 했지
만….
"폐하, 모두 모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다 들어오자, 마그놀리아 왕은 그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비록 내 생일이라고는 하나, 이 날을 고대하고 고대한 영애들과 공주들이 있으니
기사들은 나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그들에게 잡은 짐승들을 바치도록 해라."
나는 마그놀리아 왕의 말에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잡은 짐승을 여자들에게 주는거
지? 아깝잖아. 그런데, 나도 줘야 되는건가?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한 명의 기사
가 나에게 다가왔다. 유에였다.
"어제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알긴 아니? 나는 어제 정말로 창피하였단 말이다.
"실례라뇨.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겉으로 그걸 표현할 인간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을거다. 그렇다. 나는 누가
보더라도 '아유 귀여워.'란 소리가 날 정도로 귀엽고, 앙증맞게 행동했다. (가끔 이런 나
자신도 무서울 때가 있기도 하다.)
"이건 성의의 뜻입니다. 다른 뜻이 있는게 아니니, 부담없이 받으세요."
하지만, 사냥물을 잡은 걸 받는다는 것은 아주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다른 인간들에게서
뭔가 이상한 전류가 흐르는 듯 했지만, 그 이상한 전류보다는 유에의 땀이 먼저보였기에,
나는 '착하고, 고귀한 공주님' 이미지를 가지려, 어딘가에 놓아둔 손수건을 찾으려고, 몸
에 손을 더듬었다.
"고마워요. 여기, 땀 닦으세요."
"공주님과 유에님? 둘이 연인사이야?"
"어머어머. 공주님, 좋겠다."
"읏. 저런 내가 찍은 분인데…."
하지만 그렇게 손수건 꺼내 그에게 건네준 그 순간,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왜 저러
지?
"공주님?"
유에, 그도 마찬가지였다. 맨날 멍하게 있더니, 이번에는 꽤나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내가 뭘 했다고?
"혹시… 제가 실수라도."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아로드에게 물을 주고 나에게 물을 주려던 유시가 상황을 알아채
고는 다가와서는 실례를 청하고, 나에게 작게 말했다.
"공주님. 기사님이 레이디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면서, 사냥물을 주실 때 여자쪽이 손수건
을 주면요. 그건 연인사이란 거에요."
"뭐?"
난 그녀의 말을 확실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내가 지금 저 놈─유에─와 연인
사이로 오해를 받고 있다, 이거야?
"하하… 하하."
이를 어째. 그래도, 유에도 사람이니 내가 여기서 '아니에요, 아니에요.'라고 부정하면 상
처를 받을테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지?
"아닙니다. 공주님께서 실수하신거에요. 모르신거라구요."
…. 하지만 그런 부정행위는 유에가 먼저 시작했다. 나는 왠지 기분이 나빠오기 시작했지
만, 이내 함께 손을 흔들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그놀리아는 그것이 부끄러
워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쥬니. 네가 그렇게 부정하면 슬퍼할 사람들이 많아요!"
중간에 눈동자를 유에쪽으로 굴리면서 말하는 마그놀리아 왕이었다. 나는 완전히 어이를 상
실하여 고개를 땅으로 떨구고는 과연 유에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하여 그에게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런데 이게 왠걸. 얼굴이 빨게졌잖아.
"어. 얼굴 빨게졌다."
"아,아닙니다!"
"맞잖아요. 빨갛게 물 들었는데요. 뭘."
이렇게 된 이상, 화근인 유에를 처단(?)하겠어. 라고 생각한 나는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당황한 그지만, 다시 그의 포커페이스로 돌아가 나의 말을 먹으니, 나도 질려서 그
냥 냅뒀다. 손수건 이야기도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근데, 쥬니. 너는 잡은 짐승이 없니?"
그렇게 나를 다스리고 있는데, 샤를로트 왕비가 나에게 물었다. 필히 나를 창피하게 만들
속셈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에가 잡아와 나에게 바친 동물은 나와 수는 비슷했지만
, 나는 아주 귀한 짐승도 있다, 이말이지.
"아니요. 물론 있지요. 저의 것은 아바마마께 바치겠습니다. 가져오세요."
난 나와 함께 사냥을 나갔던 병사에게 일렀다. 그는 자신이 그 짐승을 잡기라도 했다는듯
어깨를 쫘악- 펴고 당당하게 걸어오고는 짐승들을 앞에 내어 놓았다.
"봉고?"
"저거 봉고 아니야?"
"저게 무슨 동물이에요?"
그러자, 서 있던 귀족들은 입을 벌렸고 봉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영애들은 옆에서 떼를 쓰
듯 물어봤다.
"봉고…가 어떻게 여기있지?"
"그게, 아까 맷돼지를 잡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말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주위에서 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풀을 재쳐보았더니, 봉고 두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어서 그 때 친겁니다."
"호오. 아주 귀한 걸 사냥하였구나. 직접 사냥을 한 건 처음이었을텐데, 대단하다. 쥬니아."
그는 양도 많지만, 품질도 우수하고 뛰어난 짐승들을 잡아온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어떤
자들은, 공주로서의 품위가 없네, 어쩌네 했지만 나의 웃음에 직접대고 뭐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호호호.
약간은 노곤하지만, 꽤나 기분 좋은 몸을 다시 말에 맡기고 메르와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상금도 받고, 봉고 한 마리와 아로드도 받아서 엄청나게 기분이 좋았다.
"공주님. 그럼 오늘 저녁은 봉고 요리로 할까요?"
"그러자. 근데, 어떻게 요리하는지는 아니?"
"소과라서 캐티 시녀장님께서 해 보신데요. 저희는 거들거구요."
"그래. 그럼 기대한다고 전해 줘."
메리는 음식을 담당하고 있어서, 나에게 기쁘게 말을 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그렇게, 유시
와 하이스가 나의 옷 시중을 들었다.
"공주님. 이 옷 아무래도 너무 예쁜 것 같아요. 드레스와는 다른 것이 아주 멋져요."
"그치? 아주 내가 원하는 그대로, 캐티가 잘 만들어줬어."
나는 기분 좋게 말했다. 유시는 무언가가 생각이 났다는듯, '아.'라고 말하더니 옷을 개는
것을 멈추고 거울을 통해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공주님. 진짜, 유에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세요?"
"진짜 몰랐다니까. 그 손수건 얘기, 도대체 뭐야. 왜 그런 걸 만들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그 손수건은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랍니다. 게다가 유에님은 너무
멋지잖아요."
그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웃으려고 애를 썼지
만, 하이스가 드레스 끈을 뒤에서 조이는 통에 결국 나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말았다.
"공주님, 아무래도 한동안 시달리시겠네요."
"하이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요. 유에님은 소드마스터이신데다가, 얼굴도 준수하셔서 인기가 많으신데 유에님
을 사모하는 여성이 한, 두명이겠어요?"
"유에경이 잘 생겼나?"
나는 골똘히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인간계에 와서 딱 보면 '우와.'라고 탄성을 지를 정도
로 잘생긴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 중하나, 마계의 마족들이 외모가 워낙에 빼어나서
그런 것 일거다. 보통 사람들은 마족하면 마물들만 생각하고, 마족도 못생길 것이라고 생각
하는데 전혀 아니다. 오히려 천계놈들보다 우리가 훨씬 낫다.(자부다.)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그렇게 그의 외모를 다시 떠올리고 있는데, 유시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하지만, 인간의 외모치고는 꽤 잘생긴 것이었다. 특히 짙은 은색의 머리칼과 그에 맞
는 회색 눈동자는 아주 일품이었다.
"그래. 유에 경이 잘생기긴 잘생긴것 같구나."
성을 내는 유시의 말에 곧장 인정을 하는 나였다. 하이스와 유시가 내 옷 시중을 다 든 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샬럿여사가 준 '없는 것이 없는 책'─성에서 사는데 필요한 모든 예절
과 여러 풍습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을 펼쳐서 '사냥 대회'편을 펼쳤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사냥을 한 기사와 왕자는 자신의 맘에 든 여성, 혹은 신세를 진 여성에게 사냥물을 바친
다. 그런 후, 여자가 손수건을 기사에게 주면 그들은 연인이 되는 것이고, 그냥 사냥물만
받을 수 있다. 원래는 땀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주는 것이지만, 계속 전래되어 프로포즈의
하나의 방법으로 발전된 것이다.
※ 소드마스터는 어떤 한 사람에게는 꼭 사냥물을 주어야한다. 여성들의 로망을 깨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억지가 어딨냐. 여튼 그래서 유에가 나에게 준거군.
사람들에게 해명할 말을 찾은 나는 반시간 후에 나온 봉고 요리를 먹으면서 사냥보다도 더
고대했던 최고의 밤을 위해 샴페인을 터트렸다.
★ 7화는 새벽, 아님 내일 학교 다녀오고 올릴게요^^
리플 달아주신 두 분, 감사합니다!
☆ 코멘트는 예의에요~ 눈팅은 그만! 코멘트도 달아주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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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소설
[판타지]
궁(宮)의 여자 - [제 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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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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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에하고의 썸띵이 있길...-,.-ㅋㅋ
★ 저와 맘이 같으시군요 흐흐 ㅡ.,ㅡ
유에가 한순간 귀엽다는 생각이*-_-*
★ 하하. 귀엽죠? ㅜ_ㅜ. 흐엉엉
ㅋㅋ 유에 마음에 든다는..ㅎㅎ 유에랑 이어주세요>_</ㅎ
★ 에릭도 사랑해주세요! 에릭도 얼마나 깜찍한 녀석이라고요. 원정 때 아주 뽀사지게 깜찍하게 써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