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태생의 첼로 성자 파블로 카잘스(1876-1973)의〈새의 노래〉를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애틋하고 가라앉은 물처럼 고요한 느낌이 든다. 이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만이 알아낼 수 있는 소리의 비밀이다. 카잘스의 음악에는‘말할 수 없는 소녀’가 산다.
(동영상) 파블로 카잘스의〈새들의 노래〉
2-6. 황인찬시〈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에서 나는 단 하나의 이름을 발견한다
사라지면서
점층적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여전히 백자로 남아 있는 그
마음
여름이 지나가면서
나는 사라졌다
빛나는 것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2-7. 이세기시〈먹염바다〉
바다에 오면 처음과 만난다
그 길은 춥다
바닷물에 씻긴 따개비와 같이 춥다
패이고 일렁이는 것들 숨죽인 것들 사라지는 것들
우주의 먼 곳에서는 눈이 내리고 내 얼굴은 파리하다
손등에 내리는 눈과 같이 뜨겁게 타다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사이
여기까지 온 길이 생간처럼 뜨겁다
햇살이 머문 자리 괭이갈매기 한 마리 뜨겁게 눈을 쪼아 먹는다
2-8. 김상환 시〈어느 동박새의 죽음〉
눈은 내려 쌓이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동박새가 죽어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온기
새는 주머니 속에 잠든 채
사려니숲으로 간다
마른 꽃들을 모아 그가
새를 묻는다
비자나무 옆이다
그칠 줄 모르는 눈
허공을 맴도는 큰부리까마귀들
눈은 내리고 갈 길은 멀고
■ 중앙 일간지에서 우연히 접한 사진 기사 내용을 모티프로 한 이 시는 새의 죽음이 전경화되어 있다. 눈은 내리고 가야할 길은 멀고, 새의 심장은 아직도 남아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눈을 감는다. 바람에 눈발이 날린다. 눈 주위의 흰 태가 매화를 닮은 동박새의 검은 죽음과 흰 죽음. 새는그의 주머니 속에 잠든 채 숲으로 간다. 사려니숲이다. 겨울 사려니-숲은 오름과 오름 사이에 있다. 사려니는 화산 분화구가 비스듬하게, 트인 장소의 비밀이다. 그 비자나무 옆이 새의 영원한 안식처다. 그는 마른 꽃들을 주워 모아 무덤을 만들고 새를 묻는다. 새는 물음이다. 작은 새의 죽음에 또 한번의 죽음을 더할 양으로 큰부리까마귀들이 허공을 맴돈다. 그칠 줄 모르는 눈과 그칠 줄 모르는 물음들. 동박새의 죽음으로 봄이 오고 꽃은 다시 피리라. 문학은 생의 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