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화실 –이주현-
청주에 이사 온 지도 1년 반 정도가 됐다. 남일면 고은삼거리라는 곳으로, 청주 도심에서는 남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이다.
집은 1층과 2층이 나누어진 복층 형식인데, 그림을 그려야 하는 내 직업적 특성을 고려했다. 야심 차게 1층은 화실, 2층은 생활 공간으로 나누어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탁 트인 넓은 1층 거실은 곧 그림의 떡이 되었는데, 우리 집에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고양이가 한 마리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이름은 바나vana로,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에서 경전을 기록하던 문자로, 우리나라에는 ‘나랏말싸미’라는 영화에서 소개됐다)로 숲이라는 뜻이다. 바나는 사자처럼 풍성한 갈기와 너구리처럼 오동통한 꼬리털, 큰 귀 끝에는 스라소니 같은 귀깃, 그리고 확연히 크고 넓적한 발을 가진 메인쿤이라는 종이다. 미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메인주에서 사는 고양이답게 몸도 크고 털도 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털이 많이 빠진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얼굴에 붙은 털 때문에 간지러워서 비벼대는 것은 일상이고, 눈에 들어간 털이 따가워서 꺼내보면 기다란 털이 눈동자 뒤쪽에서부터 끌려 나온다. 옷에 붙은 털은 돌돌이 테이프를 곳곳에 두고 틈틈이 떼어내도 금세 다시 달라붙어 옷맵시가 떨어진다. 물론 그림에도 가느다란 털들이 촘촘히 달라붙어 난감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고양이의 호기심. 그림이 바닥에 펼쳐져 있으면 올라타기 일쑤고, 붓과 안료를 일일이 검사하고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 과정에서 값비싼 안료가 쏟아지기거나 색이 섞이기도 하는데, 뒤처리는 언제나 내 몫이고 그는 만족한 듯 유유히 자리를 떠나버린다. 털에 안료가 묻기라도 하면 목욕과 드라이도 시켜줘야 한다.
결국 나는 바나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고양이와 작업공간은 공존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쳤다. 제가 졌습니다, 예예.
멀쩡한 집을 두고 화실을 새로 구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라는 단점도 잊게 만드는 너른 마당(아래층의 옥상 공간)과 뻥 뚫린 주변 풍경에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곧 새로 구한 화실의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제일 좋은 점은 고양이 털이 날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제일 슬픈 점은 고양이가 여기에 없다는 것이다.
화실에 들어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내 고양이가 밥은 잘 먹는지, 화장실은 잘 가는지, 내가 보고 싶어 현관 앞에 나와 있지는 않은지 등등의 생각이 잇따라 떠오르고, 곧 보고 싶어 얼른 집으로 가고 싶어진다는 거다.
이런 계륵 같은 내 고양이와 화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