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문화 특별기획연재
AI와 인간의 현재 진행 중인 변화들(2)
첫 번째 질문
AI는 종교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주님AI 시대 종교의 역할
김덕진(미래사회lT연구소 소장)
신자여, 그대가 궁금한 것은 무엇인가 by AI
주님AI라는 서비스를 알고 있는가? 챗GPT 기반으로 신앙의 고민과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무엇이든 질문만 하면 성경 구절, 기도문과 함께 친절히 답변해 주고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한다. “주님AI로 상담했더니 위로를 받았다”라는 SNS 글도 종종 보인다. ‘주님AI’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는 크리스천 또는 논크리스천들의 각종 고민이나 질문들을 ‘성경적으로’ 답변한다. 챗GPT와 일견 비슷하지만, 질문에 해답이 되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 해석과 기도문까지 만들어 주면서 ‘적용’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이 서비스를 만든 20대 김민준 대표는 크리스천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기도로 응답을 받아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챗GPT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서비스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깊이 생각하거나 사업을 구상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순수한 크리스천 청년으로서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했다. SNS상의 반응을 살펴보더라도 일반인들은 신기하고 즐겁다는 반응과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많은 데 비해, 목사님들이나 종교계에서는 이를 보고 다양한 토론과 비판적 시선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이슈는 비단 기독교만의 일은 아니다. 불교계에서도 챗GPT의 등장이 불교 지형에 미칠 수 있는 변화에 관해 토론을 하며 “AI부디즘의 서막”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고, 이미 ‘스님AI’라는 별도의 서비스까지 나온 상황이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이유
우리는 왜 교회에 가고, 절에 가는 것일까? 왜 종교적 생활을 하는 것일까? 우리가 믿는 종교의 근원은 말씀을 탐구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나의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일까? 이런 질문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종교는 그 시대적 사명을 갖고 메시지를 전하는 창구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통치자의 방어 요소와 논리를 만들어 주는 수단으로써 활용되기도 하였다. 작은 교회의 목사님 아들로서 평생을 자라온 필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느끼게 된 것은 “교회 생활을 하는 것”과 “종교적 탐구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교회를 나가지 않지만, 기독교는 믿는다”라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씀은 잘 모르지만, 열심히 교회 활동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이들에게 복음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불교의 관점에서도 같은 상황과 질문이 있을 것이고, 타 종교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는 시점이 아닐지 싶다.
“챗GPT가 종교와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큰 물음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종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종교의 테두리에서 챗GPT와 같은 생성형AI가 할 수 있는 일은 “진리의 말씀 혹은 부처님의 경전 등을 해석하여 메시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종교활동’ 혹은 ‘종교 생활’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것만으로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0장 24절과 25절에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말씀이 적혀 있다. 단순히 메시지를 해석해서 우리에게 주는 것은 종교로서의 모든 것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씀이나 경전을 해석하는 것만큼이나 공동체와 소통, 그 안에서의 모임을 통해 함께 삶을 나누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기에 일반 신자 입장에서 보면 주님AI와 같은 서비스는 ‘맞춤형 큐티’와 같은 서비스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성경과 그를 해석한 내용이 담긴 것을 보며 오늘의 일을 준비해 나가고 내가 생각한 것을 공동체와 나눌 때 훌륭한 도구의 진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일반 성도들은 이러한 변화를 통해 종교 생활의 편리함이 증대됐다고 느낄 것이다. 단순한 종이 성경책을 넘어 다양한 IT 서비스를 주님AI를 통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챗GPT에게 영성은 없다
그러면 지금, 이 변화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두가 예상하듯 종교 지도자들이다. 목사님과 스님, 신부님 너나 할 것 없이 마치 종교 지도자가 메시지를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빠르게 무언가를 이야기해 주는 미지의 존재는 놀랍고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주님AI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소수의 종교 지도자나 권력층만 소지할 수 있었던 성경을 모두가 소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에 비견될 정도로 급진적인 변화다. 인쇄술의 보급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의 우려와 달리 필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챗GPT는 ‘영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한국개혁신학 포럼에서 ‘챗GPT와 미래 사회’를 발제한 최더함 교수는 “AI는 절대로 ‘영성’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이 신학자들이 뜨겁게 기도하면서 치열하게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라고 이야기했다. 기술적으로 보더라도 챗GPT는 결국 정보의 조합이며 이를 “통계학적 앵무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통계학적 앵무새이자 영성을 가질 수 없는 존재를 왜 설교자가 두려워할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설교자 자신의 메시지가 뜨겁게 기도하고 치열하게 공부한 결과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다소 도발적으로 말하면 여러 정보를 짜깁기하고 정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글을 마치 잘 훈련된 앵무새가 내용에 따라 목소리의 강도와 힘을 조절하는 것처럼 설교자도 매주 그저 그렇게 기계적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설교자가 강단에 설 때 종교가 말하는 그 모습 그대로 설 수 있다면 챗GPT는 두려워할 존재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종교AI는 외로울 정도로 홀로 말씀을 탐구할 때 내 옆에서 현문우답이라도 해줄 수 있는 좋은 말벗이자 보조자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또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이런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만들게 하신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혹자는 이를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욕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다양한 선교의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를 어떻게 써야 할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지 싶다. 마지막으로 주님AI를 만든 김민준 대표의 인터뷰 마지막에 있는 문장으로 발제문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어쩌면 하나님이 가장 크리에이터이지 않을까요?”
두 번째 질문
AI는 교육과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미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때때로 미래의 모습을 학술지가 아니라 SF소설이나 영화, 만화 등에서 발견하곤 한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를 보았지만, 나의 무릎을 탁! 치게 했던 강렬했던 경험은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보게 된 <가우스 전자>라는 웹툰의 한 장면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만화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은 아래와 같은 대화를 이어간다.
A: 미래에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겠죠.
B: 좋은 질문?
A:
네. 답을 찾는 일은 인공지능이 할 테니까….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던져줄 좋은 질문을 만들어 내야죠.
B:
아…. 그런데 아직도 학교에서는 정답만 죽어라 외우라고 가르치잖아.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A: 교육도 바뀌어야죠. 모든 일에 의문을 가지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지금 봐도 소름이 돋는 대화이다. 알파고 이후 정확히 7년이 지났고 세상은 챗GPT와 생성형 AI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달라고 명령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진행한 이스라엘과 인도와 같은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AI 시대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세상을 이끌고 있고, 여전히 정답만 외우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언제나처럼 변화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어떻게 AI 인재를 키워야 할지 고민과 해답 없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윗세대들의 고민이 길어지는 이 시기에 오히려 학생들은 스스로 실행해 보고 운영하면서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챗GPT를 활용하여 과제를 하거나 문제를 풀어보며 학생들 스스로 생성형AI의 장단점과 한계에 찾아나가고 있고, 레고블록처럼 잘만 조립하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인공지능 API들을 조립하며 창업에 나서기도 한다. 이미 전 세계적인 AI 경기는 시작되었고 공격수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상황 속 패스하는 법, 슈팅하는 법을 고민하는 것보다는 당장 내 앞에 공을 가지고 상대방의 골대를 향해 달려 나가는 청년들이 있기에 그래도 대한민국의 앞길을 조금이나마 밝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 아이언맨의 능력을 극대화해 주는 인공지능인 자비스가 등장한다. 음성으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주거나 아이언맨의 문제를 함께 풀고 새로운 기기를 함께 만드는 자비스는 영화에서는 아이언맨만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하지만 2023년, 우리에게 자비스와 같은 녀석이 찾아왔고 챗GPT를 비롯한 다양한 생성형 AI 기반의 도구들은 우리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생성형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것인가?
알파고 이벤트가 벌어진 뒤 한때 인공지능 봇이 우리의 일자리 다 가져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했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인공지능 봇에게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 스스로가 봇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인공지능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닌 무엇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나만의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 인공지능 시대에 내 일자리와 미래를 만드는 첫걸음이 아닐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