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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8일 아침 10시, 카자흐스탄을 떠나는 날이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키르키스스탄 국경까지는 약 220키로, 자동차로 약 4시간 걸린다. 국경까지 가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좀 밋밋한 길이었다. 가끔 가다 좀 특이한 것이 있다면 산 위에 또는 들에 무덤으로 보이는 비석과 조형물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
<역시 자동차 안에서 보는 카자흐스탄 농촌>
오후 2시 경에 국경 도시 코르다이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쓰다 남은 카자흐스탄 돈 "팅게"를, 키르키스스탄 돈 "솜"으로 바꿨다. 그때 약간 시시껄렁한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는 강릉에서 몇 달 동안 있었다고 어설픈 한국말을 했다. 운명인지 뭔지 이 청년과는 키르키스스탄까지 같이 가서, 두 번이나 같이 저녁을 먹게 된다. 우리는 이 사람을 "강릉"이라고 불렀는데, 이 여행기에서 두 번 언급될 것이다. |
<키르키스스탄 출입국 관리 직원>
카자흐스탄에서 키르키스탄 입국할 때는 아주 신사적이고, 민주적이고, 편한 과정이었다. 출입국 관리원들도 인상이 좋고, 도와주려는 의지가 몸 구석구석에서 배어 있었다. 전체 9명의 여권을 걷어다가 사무실에 들어가 한번에 처리하여 웃는 낯으로 나눠주었다.
키르키스스탄에 입국하여 강릉의 도움을 받아 봉고차와 흥정하여 약 20키로 떨어진 비슈케크까지 가는데 500솜(=약 8,500원)에 흥정을 끝냈다. 두 대를 타고 가니까 한국 돈 17000원에 10명이 가는 셈이다. 값이 저렴함에 놀랐다. |
<후투로 호텔(Futuro Hotel= Future Hotel)에 도착하여 짐을 꺼낸다. 맨 왼쪽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앞에서 언급한 "강릉"이라는 이름의 키르키스스탄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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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키스스탄은 면적 약 198,000평방키로, 수도는 비슈케크, 언어는 키르키스어와 러시아어를 쓴다. 인구는 560만이다. 키르키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는 인구 90만으로 해발 800미터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도착한 날, 최저 기온은 10도 최고 기온은 27도였다. |
도착한 그 날, 즉 9월 28일 오후에 알라투 광장에 갔다. 사실 비슈케크는 역사적인 도시가 아니라,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므로 구태여 유적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국에 왔으니 시내 중심부는 어떠한지 궁금했다. 중심부의 광장에 왔을 때, 갑자기 일진광풍이 몰아치고 장대비가 내려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날아가는 듯 했다.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전쟁이 일어나서 포탄을 피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달려가 피난처를 찾았다. 우리도 심장이 쿵쿵 거릴 정도로 달려, 무조건 거친 날씨로부터 몸을 피해야만 했었다. |
비바람을 피해서 어떤 계단 밑에 있는데, 같이 있던 감천님이 빗속을 뚫고 20미터 떨어진 곳에 가서 여인들을 근접촬영하고 있었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의 사진을 찍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더군다나 사람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하는 촬영은 더욱 어렵고, 히잡을 쓴 이슬람 여인을 찍는다는 것은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천님이 붉은 히잡을 쓴 검은 옷의 여인의 사진을 1초에 한방씩 찍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망설이다가, 안되겠다 싶어 수류탄을 투척하는 일등병의 심정과 자세로 촬영전선에 뛰어 들었다. 여인들이 떠나기 1-2분 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촬영을 해댔다.
촬영이 끝나고 카메라를 보니, 아뿔사, 노출 1/60초 정도에 찍어야 하는데, 1/200초로 놓고 찍었다!! 너무 어둡게 찍혀 시커멓게 보였다. 거의 못쓰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이렇다. 보통은 거리를 다니면서 사람 사진을 찍을 때, 똑 바로 사람을 찍을 수가 없어서 지나가면서 알게 모르게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때는 당연히 1/200초 어떤 때는 1/500초까지 조절해서 아주 짧은 시간에 찍어야 제대로 사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 날도 흐린데다가 벽이 옆에 있어서 빛이 거의 없는 상황인데 1/200초로 찍었으니 검게 나온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는 것이 아마치오 사진사가 흔히 겪는 일이니, 눈물을 머금고 인내해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항상 준비하라, 이것이 사진 잘 찍은 비결이다. |
<감천님이 바로 앞에서 이슬람 여인을 찍고 있다.>
사진 설명: 맨 위의 3장(1, 2, 3)은 감천님이 카메라를 적절히 세팅하여 얼굴에 카메라를 가까이 대고 촬영한 것이다. 그 다음 3장(4, 5, 6)은 얼떨결에 카메라의 세팅을 확인하지 못하고 실수로 1/200초로 필자가 촬영한 것이다. 너무 어둡게 나왔다. 그 아래 3장(5-1, 5-2, 5-3)은 필자가 촬영한 5번 사진을 어떻게든지 살려보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좀 밝게 하면 노이즈(수 많은 점)이 나타나고, 또 다른 방법을 쓰면 장미 꽃에 진딧물처럼 검은 실타래가 나타났다. 하여튼 이런 저런 방법으로 Photoshop과 치열한 씨름 끝에 나온 결과물이 5-1, 5-2, 5-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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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아가씨 옆에 있던 사람들>
비가 그친 후 알라투 광장은 다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장 바닥은 물기가 남아서 근처 건물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넓은 광장 공원에 분수, 꽃밭, 쉼터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시원하고 한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청주시가 인구 100만이라고 하는데, 비슈케크는 인구 90만의 도시이므로 모든 것이 아담하고 올망졸망하고 귀엽다고 말하면 적절할 것이다. |
광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한국말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자주 우리에게 접근하여 한국말을 연습하고 싶어했다. 한 여학생은 글자는 깨끗하고 귀엽게 잘 쓰는데, 말은 아주 더듬고 초보티가 났다. 그녀가 배우는 한국어 교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기본 회화를 가르치는 것이어야 할텐데, 너무나 충격적인 교재였다. 예를들어 <확>이라는 글자가 있으면 "ㅎ ㅏ ㄱ"이 맞는지, "ㅓ ㅎ ㄱ"맞는지 골라보라는 것이었다. 즉 한글이 아닌 글자와 한글을 섞어 놓고, 한글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이런 글자가 빽빽히 적혀 있는데, 나는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제정신으로 책을 만들었나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우선 많이 듣고, 말해 본 뒤에, 읽기와 쓰기를 공부할 것을 제안하였다. 즉,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기본인,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순으로, 배울 것을 조언하였다.
잠시 뒤에 또 다른 여학생들이 나타나서 한국말을 연습했는데, 이들은 근처의 세종학당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나는 이들의 한국말 솜씨에 놀랐고, 배우려는 열정에 감탄했다. 이런 나라에 왜 한국어 열풍이 부는지 궁금하게 되었고, 원인은 한국의 경제력 그리고 한류열풍이 주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
<한국어를 잘 하는 학생들>
<광장 근처의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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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9월 29일 해가 뜨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돌았다. 이른 새벽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어른들은 직장에 가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Good morning, Hello"등을 큰 소리로 외쳐도, 이들은 못 들은 척 못본 척 별 반응없이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공산주의 사회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성일까, 아니면 내 말을 못 알아들었을까, 하여튼 그들은 무덤덤 대꾸 없이 지나갔다. |
<하얀 빵 모자를 쓴 학생은 처음 학교에 들어온 초년생이라고 한다>
<마당을 쓰는 아줌마가 공중으로 먼지를 쓸어 올린다.>
<우리 나라 순두부와 비슷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
다음 날, 즉 9월 29일, 아침 식사를 끝내고 알라메딘 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났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앞을 보니 저 멀리 흰 산이 그림처럼 놓여있었다. 눈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보면서 계곡을 따라 걷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이다. 빨리 걷지 못하는 나로서는 적절한 트레킹 코스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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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 보면 이런 곳이 나타나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잘 따라갔으나, 어쩌다가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길이 나타났다가 없어지고, 또 나타났다가 또 없어졌다. 그러다가 몇 번 가시에 찔리게 되어 어쩌면 좋을지 판단을 못 내렸다. 큰 소리로 몇 번 소리쳐봐도 일행은 대답이 없고 메아리는 고사하고 근처 개울 물 소리만 귀에 따갑게 종알거렸다. 나는 이런 경우 끝까지 가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으므로,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되뇌이며 온길을 찾아 후진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뒤돌아 보니 내가 온 길이 어떤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온 길이 없으므로 다시 길을 찾아야 했다. 하여튼 아래로 가면 계곡이 있고, 계곡을 따라 아래로 가면 출발점이 있다는 평범한 원칙을 고수하여 간신히 되돌아 오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
<계곡 건너편 모습>
<카자흐스탄 여행객>
돌아오는 길,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여행객이었다. 사실 소련이 건재했을 때는 서로 같은 나라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카자흐스탄 국민이 되고, 또 어떤 가족은 키르키스스탄 국민이 되었다. 그래도 이들은 바로 이웃에 있고 서로 왕래할 수가 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남한과 북한은 언제 이렇게 될 것인지, 통일은 늦더라도 왕래라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점점 더 원수지간으로 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
거의 계곡 입구에 왔을 때,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바비큐를 하고 있었다. 사실은 이곳이 비슈켁 사람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 겸 유원지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 자연에서 음식을 장만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모르겠다. 땅은 넓고 사람의 수는 많지 않으니, 이런 것이 가능하리라. 젊은 남자들이 있어서, 혹시 여자들은 같이 오지 않았는지, 술은 없는지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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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켁 시내의 오쉬 바자르>
다시 시내로 돌아와 바자르에 갔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또 돌아다닌다 한들 보통 이곳의 물건들도 어느 바자르나 다 볼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래서 시장에 있는 어떤 찻집에 갔다. 보아하니 냉장고는 중국제품인 듯 한자로 씌어있고, 옆에는 메뉴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파는 차 한잔 값으로 가장 비싼 것이 50솜(850원)이고 대체로 20솜(340원)이니, 이 나라 물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차를 나르는데,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여기서 차를 나르다니 좀 의아하기도 했다. 이쪽의 아가씨들이 예쁘다고 하는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미인이 많기는 많은 나라같다. |
<아마 노인들이 나와서 하루 종일 있다 가는 곳인 듯 보였다.>
<약초인지 뭔지 나뭇가지를 꺾어다 놓고 팔고 있었다.>
<어떤 허름한 아파트 앞에서 쉬고 있는데, 꼬마가 재롱을 부려서 사진을 찍어 건네주었다.>
우연히 만났던 "강릉"과 오늘 저녁을 같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나타나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강릉", 그도 우연히 만난 우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신기한 듯 보였다. 그가 알고 있다는 식당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10분을 걷고 20분을 걸어도 식당은 나타나지 않고, 걷고 또 걸어 그의 꽁무니만 따라갈 뿐이었다. 마침내 그가 소개한 집은 어떤 만두 집, 만두도 메뉴에 나와있는 모든 것이 다 되는 집이 아니라, 1-2가지만 되는 집,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안되는 것 같아 근처에 있는 다른 집으로 갔다.
식사를 하는 중, 길을 가던 거지들이 우리 어깨를 툭 치면서 돈을 달라고 했다. 모른 척을 해도, 떼를 쓰면서 돈을 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너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기분이 나쁘기도 하였는데, 결국은 종업원이 자주 나와 보초를 선 뒤에야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새벽에 시내를 돌고, 알라메딘 산으로 트레킹을 가고, 오쉬 바자르에 들르고, "강릉"을 따라서 음식점을 찾고, 거지한테 충격을 받고, 길고 긴 하루였다. 역시 여행을 한다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면, 하루하루가 별 차이가 없는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역시 여행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익숙해진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되돌아 보게 하는 최고의 촉매제임이 틀림없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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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강릉'의 진짜 이름은 '쟌'이에요. 정말 특별한 인연의 미스테리한 사나이. 달고 단 과즙의 하미과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예, 정말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 여행기를 읽다보니 비쉬베크 거리를 돌아다니는 착각이 듭니다. 미스터 강릉은 미스테리 남자!!!
빨강히잡 아가씨 사진 다양한 시도로 보정하셔서 아름답게 만드셨네요.
버릴 수가 없어서, 그냥 해 봤시유.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알라메딘은 아주 쉬운 트레킹 코스인데요..
지나번 4월 알라메딘 트레킹에서는 약수터님이 고생...이번에는 알바트로스님이 고생...두번 모두 원인은 본진과 이탈 후에 길을 잘못 들인 거네요...
그리고
히잡 쓴 여인은 이쁘기는 해도 고려인 이리나 따라올라면 멀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