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전당 함창향교
함창은 고녕가야 왕능이 있고, 오봉산에 고분이 있으며
공갈못이 있는 가야의 도읍지로 유명하다
상주에는 두 곳의 향교가 있다,
상주향교와 함창향교이다.
상주향교는 198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남산중학교의 소유로 되어있다.
1426년(세종 8)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8년(광해군 10)에 중건하였다.
보물 제2096호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2길 111 (신봉동)
함창향교는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398년(태조 7)에 세우고, 1417년(태종 16)에 옮겼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경사진 산 언덕에 3단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남북축선을 기준으로 전학후묘형으로 배치하였으며,
동재와 서재를 명륜당 뒤에 두어 안마당을 형성하였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24호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7호로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교촌리무운로 1557-4
교촌리에 소재한 함창향교
향교나 학교가 있는 마을의 이름에 교촌리가 많다
배움과 가르침이 있는 곳이다(校村, 敎村)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서원이 사립 교육기관이라면 향교는 국립 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이름을 떨친 유학자 27명의 위패를 모시고
중국의 5현(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 송조 4현(주자(주희), 정자(정이), 주돈이, 징호)
한국의 18현(문창후(文昌侯) 최치원, 홍유후(弘儒侯) 설총, 문성공(文成公) 안유,
문충공(文忠公) 정몽주, 문헌공(文憲公) 정여창, 문경공(文敬公) 김굉필, 문정공(文正公) 조광조
문원공(文元公) 이언적, 문순공(文純公) 이황, 문성공(文成公) 이이, 문정공(文正公) 김인후
문간공(文簡公) 성혼, 문열공(文烈公) 조헌, 문원공(文元公) 김장생, 문정공(文正公) 송시열
문경공(文敬公) 김집, 문순공(文純公) 박세채, 문정공(文正公) 송준길
음력 2월과 8월 성정일에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향교의 구조는 거의 비슷한데요, 배치가 약간 다른 곳이 있긴 하다.
상주 함창향교는 교육공간을 앞에 두고, 그 뒤 높은 곳에 제사 공간을 둔 전학후묘의 배치되어있다.
함창향교의 현판이 보이는 곳에 외삼문이 있다
문이 세 개가 있어 삼문이고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곳은 닫혀 있어서 함창향교로 들어가실 분은 옆 협문으로 들어가시면 된다.
함창향교의 담장이 아름답다.
푸른 가을 하늘을 따라 함창향교의 협문으로 이동해 보면.
예쁜 조명이 달려 있는 이곳은 명주서가로 되어 있는데,
함창향교와 함께 세워진, 구옥으로 향교의 교육과 제사의 준비를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된 고사이다.
제사와 교육의 역할이 축소되어 비어있던 공간을 명주서가로 변경하여 대관하고 있다.
숙소로도 예약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숙박하고 공부를 하면 고택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다.
함창향교의 전사청이다. 전사청은 향교에서 제사 지내는 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향교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건물 중 하나인 명륜당이다.
요즘의 교실이라고 보시면 된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장소이다.
7칸으로 누각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앞, 뒤 현판의 글씨체를 비교해 보는 것도 포인트이다.
향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지내는 공간을 동재, 서재라고 한다,
이곳 함창향교는 기단이 매우 높은 것이 특이하다. 선배들이 동재를 사용한다.
함창향교에서 높은 곳에 위치한 6칸의 대성전있다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양측 면에서 방풍관을 설치하였다.
대성전은 석천대제 외에는 공간이 개방되지 않고 있어 옆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대성전 입구에서 바라본 함창향교의 모습은. 내삼문이 있고
삼문의 중앙은 신들의 공간이며 왼쪽과 오른쪽을 통해 출입한다.
향교는 조선 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다고 한다
조선 후기 이후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해 교화 기능을 담당하였다.
현재는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으며,석전대제 때 향교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상주의 역사와 함께한 함창향교이다.
담장 아래에서 보는 청암서원(淸巖書院)
상주 공검면 예주리에 있는 청암서원은 1752년(영조 28)에 도계정사(陶溪精祠)와
아곡정사(雅谷精祠)를 합사하여 유포(柳砲), 유달존(柳達尊), 박눌(朴訥), 이겸(李謙)·
유종인(柳宗仁), 홍약창(洪約昌), 남영(南嶸), 정윤해(鄭允諧), 박성민(朴成敏), 이영갑(李英甲)
남근명(南近明)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81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효령대군 영당(孝寧大君 影堂)은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에 있다.
조선 태종의 제2왕자 즉 세종대왕의 형이되는 효령대군(孝寧大君,1396~1486)의 영정을 모신 영당(影堂)인데, 임진왜란 때 효령대군(孝寧大君) 9대 종손 성민(聖民) 공이 난을 피하여 이곳 상주 함창(咸昌) 땅에 들어와 정착하여 가묘(家廟,사당)에서 대군의 제향을 드렸으며, 숙종 12년(1686년) 외예(外裔,외손)
10대손 경상감사 이규령(李奎齡)이 공검면 율곡리에 사당을 건립, 위패를 모셨다.
이후 가은읍 왕릉리를 거쳐 이곳 오태리 청권사(淸權祠)에 이안(移安)하게 되었다.
청은재(淸隱齋)는 다섯명의 정승이 난다는 전설의 오태리는 뒤로는 오봉산이 있다,
상주 함창향교와 청암서원 그리고 효령대군의 영당을 차례로 둘러본다.
먼저 함창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세우고, 1417년(태종 1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경사진 산 언덕에 3단으로 대지를 조성하고 남북축선을 기준으로 전학후묘형으로
배치하였으며, 동재와 서재를 명륜당 뒤에 두어 안마당을 형성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7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고사(庫舍) 등이 있다.
교문화재로는 신봉동에 상주향교, 함창읍 교촌리에 함창향교,
모동면 수봉리에 옥동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52호), 연원동에 흥암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61호),
양촌동에 연악서원, 도남동에 도남서원....
은척면 두곡2길 84-7(두곡271)에 동원정 배롱나무가 유명하다
동원정은 따실마을 야산 기슭에 자리한 조선시대 향토 유림들이 1746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배산임수인곳은 옛 선비들이 정자나 사당을 지어놓고 학문도 익히고, 풍류도 즐기고,
좋은곳은 다 자기들 땅이된다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마을회관을
지나니 무구한 역사를 지녔을 은행나무가 나온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 75호인 수령이 500여년으로 추정되는 민속적 ,생물학적으로 가치가 크다.
한국전쟁을 피해간 두곡마을은 그게 다 은행나무의 덕이라 생각하며 가을에 잎이 한꺼번에 떨어지면
풍년이 들고 몇날을 두고 잎이 떨어지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첫댓글 함창향교에 대한 많은 자료 감사히
보았읍니다.
근데 무릉리 은행나무는
목은선생의부친
가정 이곡 할배가
심은사실도 아시지요
덕원군 9세조
택자 할배의 사위
얼마전 상주 박물관 관계자와
한산이씨 종중 사학자 셋이서
가정선생의 거처지
가정이란 마을을
찿아보았지만
흔적이나 구전을
알수가 없어서
우리 함녕군 할배가 건립한
청향정의 위치도
대충은 알아
보았읍니다.
청향정은 목은
선생이 지어주고
함녕군 할배가
후학을가르첬다고
비문에 수록되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