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공부 좀 한다는 목회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관하여>
▪️나의 이 주옥 같은 가르침을 이 무지몽매한 성도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지식적 우월감에 쩔어 따뜻한 우유를 쪽쪽 빨아 먹어야 할 대상에게
Ph.D.급으로 현란하게 문자를 구사하며 질긴 생고기를 던져주는 오류)
▪️저 목사 설교는 누구누구의 주석과 누구누구의 책을 제대로 보지 않은 티가 너무 나는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설교 시간에
학회 논평 수준의 설교 분석을 신나게 하고 앉아 있는 오류)
▪️어머, 이 책은 꼭 사야만 해
(책장에 꽂힌 책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늘어만 가는 소장파 특유의 우월감에 사로잡히는 오류.
안타깝게도 책을 소장만 하고 읽지는 않아서
지식의 총량은 카드 빚과 반비례하여 줄어가는 오류와 동반)
▪️무지몽매한 성도들이여, 내가 이 정도까지 주해하고 설교합니다
(설교 시간을 마치 주해 보고서 작성 시간으로 오해해
헬라어, 히브리어 파싱을 일부러 열심히 하는 척하는 오류)
▪️아, 그건 말이죠. 이러이러한 교리에 입각해서,
이러이러한 교회 역사 속 논쟁을 통해서 바라 볼 때,
그건 누구누구의 주장이었으며… 그 반대파는 누구누구였으며… 주절주절..
(성도는 그냥 특정 사안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뿐인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니
논점이 일탈 되어 성도를 더 헷갈리게 만들어 버리는 오류)
▪️아마 그걸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거에요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거대한 지식적 담을 의도적으로 쌓아 놓고
계급적 우월감과 상대적 굴종감을 불러일으키는 오류)
▪️이 정도까지 설교했고, 이 정도까지 가르쳤는데 감히 변화가 없어?
(씨 뿌리는 자와 그 씨를 자라나게 하시는 이 사이의 주객 혼동에 대한 치명적인 오류)
▪️나 아니면 이 정도 못 할걸
(무익한 종 프레임은 개나 줘버리고 ‘유익한 종’ 프레임으로 본인을 신성시하는 오류)
야고보 사도의 주옥 같은 가르침이 뇌리를 깊숙이 찌른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약 3:1)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던데
왜 목회자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고개가 더 빳빳이 들려지는가.
그것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아이러니가 내 삶 속 여기저기에 머리를 치켜 들고 꿈틀꿈틀 대기 시작하니
몸서리 쳐지지 않을 수 없다.
박재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