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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만리 신목 비자나무. 마을사람들의 다정한 쉼터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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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몸통-1, 몸통에서도 새입이 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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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주민, 나뭇가지들이 제몸 무게를 지키기도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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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를 사진으로 담는 일행, 나도 저런 모습이었을 테지만. |
[한국문화신문=최 우 성 기자]
상만리 구암사를 들러 내려오는 길에 거대한 정자나무가 있었다.
그 나이는 대략 600년으로 추정된다는
이 비자나무는 한국의 남부지방에 자라는 난대성 상록침엽수로 주목계통의 나무였다.
이 비자나무는 오랜세월 상만리 주민들과 함께 살아와서 마을의 수호신 당목으로도 여겨졌다.
옛날에는 주위에 색동띠를 두르고 마을 당제때에는 신내림을 했을 법한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목이었다.
보통 비자나무는 4월에 꽃이 피어 10월이면 그 열매가 익는데,
그 열매가 약재로 긴요하게 쓰인다.
비자열매가 활용되는 병으로는 급체, 가래, 기침, 변비, 탈모, 관절염, 피부질환,
여성병 등에 특효하다는 아주 긴요한 약재라고 한다.
그 처방에 쓰이는 병이 다양하여 가정 상비약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그만큼 신비한 나무인 것이다.
또 비자나무는 나무의 속성질이 따뜻하고 부드러워 딱딱한 바둑알을 비자나무 바둑판에 놓을 때
그 부드러운 성질로 바둑돌이 바둑판에서 튀질않아
그 감촉이 부드럽고 좋아 바둑애호가들은 평생 비자나무 통바둑판을 갖고
그 바둑판에서 멋진 바둑을 한판 두고 싶은 열망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통비자나무로 만들만큼 큰 나무란
적어도 수백년을 살아온 나무여야 되기에 귀하기 이를데 없어
대부분 비자나무 바둑판 대신 그에 버금가는 은행나무 통바둑판에 만족하고 만다.
하지만 언젠가 비자나무 통바둑판을 갖고자 하는 열망만은
이루지 못할 꿈처럼 마음속에 안고 산다고 하니 여러모로 긴요한 나무로 생각된다.
상만리 비자나무는 그 몸통의 둘레가 6m가 넘을 만큼 거대하지만
지상에서 높이 5m 정도만 올라가면 커다란 몸통은 없어지고,
아프리카의 바오밥나무처럼 가는 가지들이 뻗어나와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산발한 푸른 가지와 잎들이 얼기 설기 뻗어 있고,
또 보통 나무들처럼 잔 가지에서만 잎이 나는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도 가느다란 잔가지와 잎들이 수북히 돋아나,
사람으로 치면 마치 털많은 털복숭이 서양인 같이 느껴졌다.
상만리 비자나무는 마을의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주변은 낮은 판자로 담장을 둘렀다.
나무아래에는 의자도 하나 놓여있는 것을 보니, 동네 주민들이 자주 들어와 쉬는 듯 하였다.
주변에 햇볕가리는 시설도 없고, 색동천을 두르지도 않을 것을 보니,
친구처럼 여기는 나무이지, 당목이나 신목으로 여기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주민 한사람이 여유있게 쉬고 있는데
기자 일행이 비자나무 주변을 왔다갔다하면서 사진을 찍는 데도 무심한 듯 휴식만 취하고 있어
오히려 사진을 찍는데는 자연스러웠다.
600년을 살아온 비자나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600년 동안 사람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또 열매를 주어 병을 치료해주고,
마을의 정신적 의지까지 되어주는 거목으로 수백년을 주기만 하는 보살 같은 나무다.
이 정도면 그 수령으로보아도
이미 당산목으로 신이 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 같은데
친구에서 더욱 신비한 동네 수호신으로 오래도록 살길 바란다.
기자는 신기가 느껴지는 상만리 비자나무를 둘러보고,
해가 떨어지기전에 진도의 다른 명소를 찾아 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