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비둘기 / 정호경
나는 요즘 오동도에서 돌산공원으로 산책길을 바꾸었다. 오동도라고 하면 곧장 동백꽃을 연상하리만큼 아름다운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곳도 몇 년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좀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물색하다 고른 곳이 바로 이곳이다. 집에서 가는 거리도 가깝거니와 이곳은 지대가 높아서 돌산대교를 지나 거문도로 오가는 쾌속여객선이며, 통통거리며 물살을 가르는 어선들 그리고 안개 자욱한 앞바다에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있는 섬들의 정겨운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돌산대교를 건너면 바로 왼손에 잡히는 돌산공원도 꾸민 지가 꽤 오래 됐지만, 저녁 무렵 젊은 연인들이 잠깐 들렀다 가는 한적한 곳이다. 이곳에도 동백꽃을 비롯한 많은 꽃들과 관상수가 예쁘게 가꾸어져 있어 오동도 못지않은 휴식공간인데도 가끔 노랑가방을 멘 유치원생들이 젊은 지도교사 따라 와서 김밥을 나눠 먹고 놀다 갈 뿐, 매일 찾는 고정 손님은 등나무 넝쿨지붕 아래 앉아 졸고 있는 나와 배고파 기웃거리는 비둘기들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외지에서 찾아오는 관광버스가 이곳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쉼터를 어떻게 알았는지 서너 대나 몰려와서 남녀가 독한 소주로 한 판 어우러지는, ‘남행열차’의 신나는 가요무대가 되어버렸다. 그전에는 이토록 환경조성이나 전망이 좋은 돌산공원이 외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다.
한 열흘 전에 이곳을 찾아 나의 고정석인 공원 정상의 등나무 넝쿨지붕 아래 의자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여서인지 많은 산책객이 나와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등나무 자리 앞에는 등대처럼 높이 올려 세운 비둘기 아파트가 있어서 이들은 수시로 내려와 꼬마들이 던져 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고는 다시 둥지로 올라가곤 했다. 이들은 이제 사람을 겁내지 않고 발 앞에까지 바짝 날아와 놀다 갈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도 이들과 가까이 어울리고 싶어 공원 가게에 가서 보리튀김 봉지를 하나 사 들고 왔다. 이곳 비둘기들은 이제 과자봉지 색깔만 보고도 아는지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한 놈이 내 앞에 내려앉았다. 금방 열 마리 정도로 숫자가 불어나 과자봉지는 순식간에 홀쭉하게 돼버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던 비둘기들은 이제 볼일 다 봤다는 심산이었는지 모두들 날아가 버렸는데, 그들 가운데 한 마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한쪽 다리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깡충거리고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떨어져 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더니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와서는 다리가 아픈지 땅바닥에 배를 깔고 앉아버렸다. 시냇물 가의 황새가 한쪽 다리를 들고 서 있는 정경은 어렸을 적의 기억으로 여태 남아 있지만, 이 녀석은 그와는 사정이 다른 곡절이 있는 듯했다. 사연이야 어떻든 이 허약하게 생긴 할아버지를 믿고, 앞에서 편안히 앉아 쉬고 있는 양이 귀엽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여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의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바로 옆의 측백나무숲에서 달려 나온 듯한 황갈색의 들고양이가 자세를 낮추어 비둘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 내왕이 많은 공원에 웬 불청객인가 싶어 얼른 내 앞의 이 녀석이 걱정되어 돌아보니 이 갑작스러운 소동에 놀라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나는 절름거리는 그 녀석이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해서 안쓰러워 그 뒷날에도 보리튀김 과자 한 봉지를 사 들고 이곳을 찾았다. 고정석인 등나무 아래 앉아서 모이를 계속 던져 주니 많은 비둘기들이 모여 들었지만, 그 녀석은 끝내 보이지 않아 괜히 엉뚱한 놈들만 포식시키고 말았다. 나는 그 뒤 이곳을 2,3일 동안 계속 찾아왔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람 같으면 병원에 입원했으려니 하는 추측도 가능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짐승이고 보니 걱정이 되어 혹시 그 동안에 병이 도져 죽지나 않았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안했다. 병세야 어떻든 이 녀석의 다리 사고는 그 황갈색 들고양이의 소행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한 나는 혼을 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좀체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구러 한 열흘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이곳을 찾아 과자를 던지며 비둘기를 불렀다. 배가 고팠던지 순식간에 열 마리 넘게 모여 들었지만 다리를 절름거리던 그 녀석이 보이지 않아 그만 단념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녀석의 행동이 수상하여 자세히 살폈더니 털의 색깔로 보아 절름거리던 그 녀석임에 틀림없었다. 다리가 많이 나아 보이기는 했지만, 아직 완쾌하지는 않았는지 옆으로 돌아설 때는 날개를 파닥이며 아픈 다리를 받쳐 주고 있었다. 하도 반갑고 가엾어서 안아 주려고 가까이 다가갔더니 날아가 버렸다. 사람은 상처를 약으로 치료하면 되지만, 여기 사는 이 녀석은 약방도 없고, 병원도 없는데 상처가 이렇게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해질 무렵 돌산공원을 내려오면서 비둘기들에게 던져 주다 남은 보리튀김 과자를 한 알 두 알 집어 먹으면서 절름거리던 그 녀석의 쾌유를 빌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