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한화, 두산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구조조정과 사업재편 속에서도 반도체 사업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제조보다는 후공정, 장비, 설계 서비스 등 부가가치가 높은 특정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을 진행하는 양상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C 자회사 ISC는 최근 유리기판용 테스트 소켓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ISC는 반도체 칩셋의 전기적 특성을 검사하는 테스트 소켓 기업으로 매출의 80%를 미국 빅테크 등 해외에서 올린다.
SKC의 또 다른 자회사 앱솔릭스는 차세대 반도체용 유리기판을 생산하는데 ISC와 앱솔릭스의 기술협력을 통해 유리기판용 테스트 소켓을 만들어냈다. 최근 박원철 SKC 대표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성과를 설명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됐다. 이 회사는 내년 상반기에 미국의 빅테크 기업에 앱솔릭스의 유리기판과 ISC의 소켓을 함께 공급할 계획이다.
SK는 그룹 차원의 사업재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SKC는 지난해 자회사 SK엔펄스의 전공정 사업을 매각했다. 또 전 공정에 해당하는 연마부품 CMP 패드 사업은 매각이 막바지 단계다. 그러나 SKC는, "ISC는 매출의 10%를 특허와 신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앱솔릭스는 공장 내 장비의 독자화를 추진하고 있다" 고 밝혔다. 반도체 사업 중 전 공정은 정리하고 후 공정에 집중한다는 기조가 뚜렷하다.
한화는 반도체 장비 사업을 키우고 있다. 한화정밀기계는 광대역 메모리(HBM)용 패키징 장비인 TC본더를 SK하이닉스에 납품하려고 개발과 협의를 진행 중이며, 22일 김승연 한화 회장이 경기 성남 판교 한화연구개발캠퍼스를 방문해 TC본더 시연을 직접 봤다. 이날 김 회장은 "반도체는 세계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 산업"이라고도 했다.
지난해 12월 한화의 전략통으로 알려진 이성수 사장이 한화정밀기계 대표로 취임했고, 직후 이 회사는 한화의 반도체 공정장비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한화는 지난 9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보안·장비 부문을 떼어내 중간지주회사인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을 설립하는 개편을 단행한 바 있는데 한화정밀기계가 그 핵심이다.
두산은 웨이퍼 테스트 기업인 테스나를 2022년에 인수했다. 최근 2~3년의 메모리 불황으로 한국의 후공정 업계는 실적 부진에 빠졌지만 웨이퍼 테스트에서 한국 1위인 두산테스나는 흑자를 이어왔다. 두산은 국내 유력 디자인하우스(반도체 설계서비스) 업체인 세미파이브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지분 추가 취득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