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저하게 다르게 하라(1) - 고정관념 탈피,” “현저하게 다르게 하라(2) – 관용을
베풀어라”에 이어 이와같은 맥락의 현저하게 다르게 함을 통해 선으로 악을 이긴 경험을 나누고저 한다.
성격과 습관은 잘 바뀌지 않는다. 바뀌어진다고 하여도 이는 여간 어렵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레마
음성을 들으면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잘 바뀌어지지 않는 성격과 습관까지 바뀔 수 있다. 그만큼 그 음성이
개인교수처럼 일대일로 교정하고 가르치고
진리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현저하게 다르게 하라!”는 음성을 듣고 난 후, 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갖고 있던 고정관념에서 상당 부분 탈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정당하고 상대편이 잘못하였음에도 “관용을 베풀어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현저하게 다르게 하라”는 음성을 들었기에 가능하였다.
오늘은 이러한 음성을 듣기 훨씬 전임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성령의 감동에 이끌리어 한 일이 생각지도 못한
큰 열매로 나타난 경험을 나누고저 한다.
1987년 말에 인도 선교지에서 돌아온 이후로
1997년 말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부산지역에서 십년 간 목회를 하면서 여러 선교회 사역을 협력하고 있을 때였다.
인도에 있을 때 지금은 미얀마지만 그 당시 버마 랑구운 법대를 나와 지방판사를 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목사가 된
현지인 목사와 같이 공부한 적이 있다. 그가 미얀마에 돌아가 신학교를 설립했는데 너무나도 가난하여 한국교회의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내게 보내 놓고 5년간 기도를 하였다.
1996년에 혼자 미얀마에 가서 보니 우리나라
5-60년대 보다 못한 열악한 시설에 학생들 30여 명을 모아놓고 신학교를 하는데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돌아와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친구목사들과 5명이
미얀마선교회를 설립하여 지원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에 선교에 관심있는 은퇴한 목사님의 도움으로 그를
한국으로 초청할 기회가 생겼다. 여러 교회를 돌며 선교집회를 하던 중 한번은 신학교의 개강수련회에 초청받아
설교하게 되었다. 교무처장 목사님이 내가 협동총무로 섬기던 선교회의 총무였다.
미얀마 목사가 돌아가고 난 후, 연말에 선교회 총회가 있었는데 결산보고 시간에 통상적인 교회별 선교헌금 수입 외에 선교를 위해 어느 누군가가 천만 원을 헌금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예산에 미얀마 선교로 이백오십 만원이 책정되었고 칠백오십 만원은 중국과 다른
선교를 위해 배정된 것을 보는 순간, 즉시로 친구 미얀마 목사의 신학교 개강 간증설교를 듣고 누가 그 큰
돈을 헌금하였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임원들이 자기들 임의로 헌금한 사람의 목적을 따르지 않고
그것으로 다른 선교를 위해 분배한 것이었다.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 돈이 미얀마
선교를 위해 낸 선교헌금이라면 미얀마에 전부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 날따라 왠지 내 평소의
정의감보다는 가만히 있게 하시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
총회를 마치고 알게 된 것은 어느 장로님의 부인 권사님이
늦게 신학교에 입학하였는데, 학생들과 함께 한 달의 근 반은 굶으며 신학교를 하고 있는 미얀마 목사의 너무나도
가난한 사정을 듣고 즉석에서 천만 원을 작정한 헌금이었던 것이다.
그
때는
IMF 사태로 인하여 경제가 어려워져 교회마다 선교헌금을 줄이고 있던 때라 선교지 지원이 어려워졌는데, 그러한 큰 헌금이 들어오니 임원들이 의논하기를 자기들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선교사도 아닌 현지인 목사에게는 그 돈의 일부분만을 보내고
나머지는 중국과 다른 선교지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미얀마
목사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미얀마 신학교 사역을 위해 헌금하였지만, 헌금한 본인에게 양해를
구했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수입 항목에 미얀마가 아니라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
선교헌금이라 기록해 놓고 이백오십 만원만 미얀마에 보내기로 보고한 것이다.
친구 목사는 이미 자기 나라로 돌아간 후에 알게된 것이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어디서 어떻게 그런 마음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미얀마에 전화를 하여 그 이백오십 만원을
받는 것보다 그 돈으로 선교회 회장과 총무를 초청하여 선교지와 신학교 사역을 돌아보게 하고 선교회에서 미얀마 선교를 계속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니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바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미얀마에서 월 3만 원이면 현지 목회자 한 가정이 살 수 있는 경제상황에 이백오십 만원이면 한국에서는 그 20배인 오천만원 정도의 거금을 그렇게 하겠다고 선뜻 결정한 그의 배포와 믿음도 대단하였지만, 그런 제의를 했다는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내 생각이 아닌 어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결정을 통보하고 백만 원씩 두 분의 항공료와 나머지
오십 만원은 필요한 물품과 선물을 준비하기로 하여 두 분을 모시고 선교지를 다녀 온 그 결과는 그 후로 10여 년이 넘게 60개 교회들과 수많은 개인들이 처음 천만 원의 100배도 넘는 선교비를 지원하게 되어 그 당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신학교를 설립하고 현지 목회자들 수백 명 배출과 100여 개가 넘는 교회들을 설립하였을 뿐 아니라, 그 외 고아원 사역 등 많은 결실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한번의 관용으로 인해 미얀마 목사는 많은 한국
목사님들의 인정을 받게 되어 여러 교회들의 전적 지원과 함께 자신도 한국 장신대학원에 유학와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가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주님의 음성이 들린대로 관용이라고 하는
씨앗을 심었더니 풍성이라는 열매가 맺힌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하는 데는 내 것, 네 것이 없다. 모두가 주님의 것이다. 내 편,
네 편이 없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하나이다.
처음에 미얀마에 주어진 헌금인 그 선교비가 그 당시 선교비를 보내지 못하고 있던 중국과 다른 나라에 지원되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늦게 시작된 미얀마 선교가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한번 받고 끝날 선교비가 백배도 넘게 지속적으로 지원받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고 미국에 와서 선교학박사 학위를 하는 중에 리더쉽
강의를 통해 알게된 것은 어떤 단체든지 임원들이나 상관들이 결정한 사항은 비록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하더라도 회원이나 밑의 사람이 그 결정을 바꾸기는
힘들며, 정작 바른 말을 한 당사자는 결국 밀려나거나 떠나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체의 이익과 개인의 정의감이 충돌할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 때 젊은 혈기나 정의감으로 혼자서 선교회 총회
때 바른 말을 했었다면, 관계가 끊어짐은 물론 지난 20여 년간의 미얀마
선교의 결실은 없었을 것이다. 나의 정의감과 타협하여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성령께서 그렇게 감동하신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 나라와 선교를 위해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뜻은 합력하여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나도록 하심이었다. 참기 잘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동생 목사를 통해 미국에까지 들려온 소식은 형님이 그렇게도 마음이 좋은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한번도 자신에게 그것에 대해 묻거나, 섭섭한 내색을 보이거나 한 적이 없이 오히려 더 대접을
하는 모습을 보고 본래 그렇게 마음이 넓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 자신이 더 잘 안다. 지금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때 그 순간에 성령께서 관용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떤 정당치 못한 일을 당하거나 내가
분명히 옳고 상대방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관용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는데 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더라도 한 번만 양보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면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도 그러면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최소한 교회 안에서 같이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만에게라도 서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주님의 양들이다.
젊을 때는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잔소리가 많아지는
아내가 며칠 전에도 한 말이 있다. “당신이 참고 너그럽게 했을 때는 항상 결과가 좋았다고…
” 그 말은 평소에는 항상 그러지 않다는 말과 같다. 성격은 변하기가 쉽지 않고
변해도 오래 걸린다.
그러나 현저하게 다르게 하게 되는 속성코스도 있다.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순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에 같은 경우를
만나면 또 그렇게 할 수 있기에 어느새 바뀌어진 모습에 자신도 놀라워 할 때가 오게 될 것이다.
"현저하게 다르게 하라! 관용을 베풀어라!" 나를 향한 주님의 들리는 음성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다르게 하자! 믿음이 약한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다르게 하자!
작년보다 지난 달, 지난 주보다 이번 주, 어제보다 오늘 현저하게 다르게 해야 한다!
관용을 베풀자! 이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자비와 양선의 열매이다.
결국은 선으로 악을 이기게 될 것이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첫댓글 너무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전적으로 공감갑니다.
언제나 올려주시는 글들 기대하고 있습니다. ^^
아멘~~
아멘!
아멘..아멘..
제게 꼭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삶에 꼭 적용하겠습니다.
현저하게 다르게 하라! 관용을 베풀라!!!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깨닫고 적용하고 실천하면 내 것이 됩니다.
평생 지킬 수 있게 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은혜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영적체험과 성경지식이 많아진다고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교만하고
자기 주장이 강해짐을 늘 체험합니다.
어제 모세가 모든 지면의 사람들보다 온유하단 말씀
읽으며 그가 한 민족의 영적 지도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새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안에 살았기 때문이었겠죠.
저도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함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관용할 때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게 됩니다. 어린 소자에게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진리사수가 아닌 다른 일에는 진정으로 옳고 그름보다 용서, 양보, 관용, 선을 베푸는 것이 주님이 세우시는
지도자뿐 아니라 모든 주님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알지만 쉽지 않기에 하나씩 배운대로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다닐 때 노래가 기억납니다.
#온유한 마음은 주님의 마음 동무들아 이 마음 어서 배워요 주님이 제일로 사랑하는 맘.
오늘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을 본받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처음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참 힘든 상황가운데서도..순종했습니다.
그 결과..생각못할 정도의 반응을 보고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계속 순종할 상황이 오는데..힘이 딸리네요..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데..
...성도는 힘들어도 넘어가는데...그렇지 않은 분은 ..넘 힘드네요
그래도 선으로 악을 이기려고 힘쓰겠습니다.
결단한 2년을 기쁨으로 잘 감당하겠다고 했기에..
기를 쓰면서라도..잘 버티려고 애 쓰겠습니다.
다만..기쁨으로 하지 못하는 제가..아쉽네요.
견디기 힘든 용서와 관용의 말씀을 순종하면 두 가지 유익이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첫째는 믿음과 인내와 사랑의 폭이 넓어집니다. 둘째 주님이 보상하십니다.
일흔 번에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끝까지 승리하시되 항상 기뻐하시기까지
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