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같은 범선이 쪽빛 물살을 가른다. 하늘을 찌를듯한 돛대에서 뻗어 나오는 여러 갈래 밧줄과 펄럭이는 거대한 돛은 처음 범선에 타보는 초보 세일러(?)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망루에 오르면 바다 저 편 외로운 섬이 부르는 유혹의 세레나데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름도 오죽하면 여수(麗水·아름다운 물)일까. 무려 317개의 보석같은 섬들을 총총 박아놓은 여수 앞바다를 범선을 타고 항해하는 기분이란 경험하지 않은 이는 모른다. 아무렴.
◇낭만 실은 돛단배
지난 주 여수시 소호 요트정박장에서 처음 만난 국내 최대(배수량 85톤) 범선 코리아나호의 탑승객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낭만을 만끽하려는 듯 갑판을 뒤덮었다. 수영복 차림은 아니지만 뭐 어떠랴. 하얀 갑판에 누워 구름 떠가는 하늘을 보노라면. 모두가 패리스 힐튼이 되고 또 리플리(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들롱 분)가 된다. 그리 옛날식도 현대식도 아닌 코리아나호는 선장 정채호(60)씨가 키를 잡았다. 현직 전라남도 요트협회장이면서 초대 민선 여천시장을 역임하기도 한 정씨는 ‘바다 사나이’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과 함께 전라 좌수영을 책임진 정철 정대수 정인 장군 등 창원 정씨 13대 조인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 지 바다만 만나면 즐거운 정 선장 때문에 승선객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작가도. 혼자 선수(船首)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는 아가씨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남녀 모두. 이곳 갑판 위가 아니라 그냥 보통 교통수단인 여객선이었더라면 의자에 기대어 잠이나 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모두들 즐겁게 바다를 보며. 배를 기다리고 있을 고향집같은 섬 사도(沙島) 선착장으로 향했다. 세일링 과정에서 ‘상륙’이란 또 하나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다. 비싼 돈을 들여 크루즈 여행을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항구에 내리는 즐거움이 특별하기 때문인 것처럼. 상륙은 배에서 내리는 이들에게나. 섬에서 이들을 맞이하는 이들에게나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다. 절경의 섬 사도에 닿은 후 범선에서 내리자 마자 마중나온 이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아따 어서오소. 시장하시지라 잉?” 곧바로 고불고불 담쟁이가 얹힌 돌담길(등록문화제 제367호)을 따라가니 민박을 겸하는 이장님 댁에 차려놓은 깔끔한 맛의 ‘어촌밥상’을 맛볼 수 있다. 회와 생선구이. 된장국을 기본으로 다슬기 무침. 문어 숙회 등이 오랜만에 보는 흑백TV가 놓인 안방에 차려졌다.
◇그 섬이 나를 부른다
중생대 백악기(약 1억 4400만~6500만년 전)에 형성된 퇴적암 속 수없이 많은 공룡 발자국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유명한 사도는 여수 화정면 낭도리에 딸린 작은 섬이다. 먼 옛날 호숫가 였던 석으로 추정되는 이곳에는 용각류·조각류·수각류 등 다양한 공룡의 발자국이 지층 속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것만도 부지기수다. 2003년 천연기념물(제434호)로 지정됐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 신청을 준비중이다. 본섬인 사도를 중심으로 추도·중도(간도)·시루섬(증도)·장사도·나끝·연목(바위섬) 등 자그마한 7개 섬이 줄줄이 붙어 있다.이 중 선착장 근처 나끝과 시루섬은 육계도로로 연결돼 있어 걸어서 갈 수 있다. 추도는 연중 가끔 열리는 3㎞의 바닷길로 이어진다. 사리때인 보름 전후에는 이 장관을 보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전체가 절경이라지만 사도에서 가장 멋진 곳은 바로 얼굴을 닮은 얼굴바위와 양면바다 해수욕장이 있는 시루섬(증도)이다. 기자가 지금껏 취재를 다니면서 본 전 세계 각지의 ‘인면암(人面岩)’중 가장 사람 얼굴과 닮은 얼굴바위는 그 아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쉬거나 낚시를 즐기기 좋다. 양면바다 해수욕장은 증도와 이어지는 기나긴 모래톱인데 이곳에 텐트를 치면 앞뒤로 근사한 해수욕장이 펼쳐지는 이색 풍경을 연출한다. 시루섬에는 이밖에도 용의 꼬리를 닮은 용미암이 있는데. 바다쪽으로 향한 용미암의 끝은 제주도 용두암이라는 설화가 전해진다.
여수 | 이우석기자 demory@
⊙ ‘여수 범선 세일링 즐기기 빅5’ |
●붕우동주(朋友同舟·벗과 함께 한배에 타다)=오랜 벗이나 시작하는 연인이라면 배안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나란히 앉아 바다를 감상하기 좋다. 낭만이나‘사진빨’은 둘째치고 ‘한 배를 탄 운명’이란 서로를 가깝게 만드는 말이다. 가끔 외신에 등장하는 요트 위 할리우드 스타들은 그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촬영유희(撮影遊喜·디카찍고 놀기)=범선안에서는 어딜 배경으로 찍어도 이국적인 풍경이 압권이라 설정된 포즈를 취해가며 ‘디카놀이’를 즐길 수 있다. 물론 타이타닉의 디카프리오나 피터 팬은 어렵겠지만 어쨌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선장이나 후크 선장 정도는 될 수 있다. ●여야회동(麗夜回動·여수야경 돌아보기)=야경 또한 바다풍경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여수는 특히 오동도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일품이다. 남산동에서 돌산도를 잇는 돌산대교(450m)에 불을 밝힐 때면. 미항의 또다른 매력에 빠져든다. 해질 무렵 오동도 등대에 올라 전망대에서 360도 펼쳐지는 여수 앞바다의 근사한 야경을 관람하고 내려와 음악분수를 즐기는 것도 여수여행의 숨겨진 팁이다. ●인천상륙(人踐上陸·항구에 내리는 재미)=산은 오르려고 존재한다던가. 그럼 배는 내리려고 타는 게 맞다. 처음 탄 곳이 아닌 물을 건너 새로운 땅에 내리는 재미야 말로 크루즈 여행의 즐거움이다. ●식만끽회(食鰻喫膾·회와 장어먹기)=여수 앞바다에서 잡은 우럭·광어·병어 등 신선한 횟감을 즐기거나. 제철을 맞은 서대회와 갓나오기 시작한 갯장어(하모)를 맛보는 것도 빼놓으면 섭섭한 코스다.
이우석기자 demory@ |
⊙ 여수 여행 정보 |
●여행상품=요즘같은 고유가시대에는 여수까지 운전하기가 겁난다. 또 낭만의 요트·크루즈여행은 소유하거나 임대하기에 다소 비싼 것이 흠이다.이때는 기차(무궁화호·KTX)와 연계한 상품을 이용하면 좀더 여유있고 저렴하게 범선 크루즈여행을 즐길 수 있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차로 이동해서 범선 세일링을 즐기고 난 후 남해안 관광지를 돌아보는 코스로 일정에 따라 남해안 전역을 관광할 수도 있다. 상품은 ●무박2일(범선 선상일출~사도~풍물시장·진남관~오동도). ●1박2일(송광사~범선 디너파티~숙박~향일암 일출~오동도~보성차밭~담양죽녹원). ●2박3일(거제도~한려수도~해금강~숙박~남해 보리암~범선 세일링~선상 해산물파티~오동도~숙박~향일암~순천만 갈대밭~율포해변~보성차밭)일정이 있으며 1인당 18만 6000~39만 9000원(어른기준)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남해안투어 1588-3848. ●둘러볼만한 곳=전라 좌수영의 국내 최대단층 목조건물 진남관(국보 제304호). 돌산도 일출명소로 유명한 향일암 등이 있으며. 때가 초여름이니 만큼 검은 모래의 만성리 해수욕장을 비롯해 돌산 방죽포. 유림. 사도 양면바다. 안도. 장등. 모사금. 신덕. 이금포. 손죽리. 대풍. 정강 등 해수욕장을 찾으면 딱이다. 여수시청 문화관광과(061)690-2037. ●먹을거리=봄에 제일 맛있다는 서대회. 눈이 몰려 우습게 생겼지만 못생겨도 맛은 좋다. 오이. 깻잎. 양파 등 야채를 넣고 고추장과 막걸리 식초에 무쳐서 내는데 이 맛이 별미. 중앙동에 있다가 연안 여객터미널 앞에 새로 둥지를 튼 구백식당은 서대회와 금풍쉥이(군평선이) 구이로 유명한 집이다. (061) |
첫댓글 가보구싶다~~~~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