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 라고 까지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는 쑨원이 청조를 타도하고 중국 땅에 국호 중화민국 이라는 공화제 국가를 세웠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라가 부패하고 시끄러워 지면 민심이 흉흉하고, 집권세력으로 부터 백성들이 등을 돌리면서
새로 주목을 받으려는 반정부세력 들이 곳곳에서 난립하기 마련 입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전 부터 중국전토를 휩쓸었던 국공내전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파도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중국과 독일의 관계를 잘 나타내주는 사진 입니다.
독일 군사고문을 받아들였던 국민당군의 복식이 다리에 가죽장화 대신 각반을 두른 것만 빼면 완전 독일군에 다름 아닙니다.
국공내전 때도 국민당군은 독일 군사고문 팔겐하우젠의 조언에 따라 공산군과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라 공산당과 싸우는 국민당을 적극 지워했던 것 같습니다.
국민당군은 팔겐하우젠의 조언에 따라 토치카전술로 적군을 포위하고 청야전술로 공산군이 얻을게 없게 만들었죠.
그래서 실제로 공산군을 조그만 해방구로 몰아넣고 국공내전에서 최후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장개석의 공산당 토벌에 대한 일념은 일본침략이 시작된 후에도 공상단 토벌에 더 신경을 썼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 장작림이 일본에 의해 죽은 만주군벌 장학림이 장개석을 감금하고 항일전을 강요하여
결국 장개석은 공산당 토벌을 멈추고 국공합작으로 일본과 싸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장학림의 서안사변이 숨통이 끓어지기 직전의 공산당을 살려준 셈이 된 것이지요.
만약 장학림의 서안사변이 없었고 그래서 장개석이 공산당 토벌을 끝가지 밀어 붇혔다면
중국에서 공산당은 멸망 하고 우리는 공산당이 아닌 국민당에 의해 통일된 중국을 맞았을까요?
우리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이나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민당군의 복식 입니다.
물론 국공내전 에서의 국민당군의 패배를 장학림의 서안사변 이나 일본의 중국침공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전후 국공내전 에서도 국민당군은 공산군에 비해 군사력의 우세에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은 물론이요 전후에도 계속된 미국의 지원으로 전보다 더 강화된 군사력을 가진 국민당군 이었죠.
국민당군에겐 미국으로 부터 지원받은 전차도 있었고 일본을 비롯한 다른나라들에 비하면 구식 이지만 공군도 있었습니다.
기갑부대와 공군 모두 공산군에겐 없는 것들 이었죠.
때문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민당군은 전후 내전 에서도 공산군을 벼랑 끝으로 몹니다.
지금 중국정부는 그걸 대장정 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해 듣기좋게 포장 하지만, 실상은 참패를 당하고 꽁지 빠지게 도망친 것이죠.
그러나 최후의 승리를 눈앞에 뒀던 국민당 스스로가 전세를 역전 시키는 불씨를 자초 합니다.
바로 국민당의 주체였던 군벌들이 극도로 부패하고 돌아선 민심을 공산당이 껴안으면서 전세는 바뀐 것입니다.
예전엔 국민당군에게 포위됬던 공산당의 해방구가 국민당을 포위하면서 국민당은 중국본토에서 지리멸렬해 가고
급기야 장개석은 중국본토를 버리고 대만행을 택하는 허무한 최후를 맞습니다.
역사가들이나 군사분야 전문가들은 여전히 중국 곳곳에 국민당군이 상당수 분포해 있었기 때문에
만약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치지 않고 병력을 재규합해 반격에 나섰더라면 전세는 또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장개석을 비롯한 최고지도부가 먼저 도망쳐 버리는 졸전을 보여 줌으로서 중국본토 곳곳에 분산되 있던 국민당군은
각개격파 당하고 결국 공산당이 중국본토를 차지하며 국공내전의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아무리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 했어도 그걸 다루는 인간의 의지가 없다면, 그리고 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가 백성들로 부터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그나라는 허무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 국민당의 비참한 최후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