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가 전에 없이 매우 치밀하고 강력했고, 공수부대에 의해 진압되었다는 사실은 같다.
부마사태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를 초래했고, 광주사태가 대한민국으로부터 분리를 의미하는 해방구는 미완에 그쳤으나 전두환 대통령 죽이기에는 성공했으니 성과도 비슷하다.
이 두 분의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세계10위권의 부국강병 선진국으로 올려놓아 김일성 김정일의 한반도공산화 야망을 좌절시킴으로서 너무나 증오해 몇 번이나 암살을 시도했다. 그 중에서도 특공대를 투입한 대담한 청와대습격과 버마 아웅산테러의 참혹성은 사실상 전쟁선포였다.
북한이 그토록 깊은 원한과 분노를 품고 국력을 기울여 시도했던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죽이기는 다행히 미수에 그쳤는데, 마침내 부산 광주사람들이 해낸 셈이다. 북한이 광주5.18을 전국적으로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부마사태에 이어 7개월 간격으로 일어난 광주사태는 그 사이 큰 차이점 혹은 발전이 있었다.
광주에서는 부마사태에는 없었던 악성유언비어 유포와 무기고 탈취로 시위대를 무장시킨 것. 덕분에 광주5.18은 시위대가 부마사태처럼 공수부대에 진압당하지 않고 광주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로서 광주5.18은 부마사태와 달리 민주화운동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었다.
난 진즉부터 부마사태 기획 주동자가 광주사태도 기획 주동했다고 보았다. 같은 배후세력이 부마사태 실패원인을 보완해 성공시킨 게 광주사태이고, 그 핵심이 유언비어 유포와 시위대 무장이었다고.
두 곳 다 시위전략의 탁월함과 천재성은 그전까지의 운동권대학생들 수준이 아니었다. 부마사태 때도 광주사태 당시의 연고대상 600명 유언비어유포와 마찬가지로 연고대생 200명이 왔다는 유언비어를 시민들 사이에 유포하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청년들이 있었다.
부마사태 당시 이런 시위양상 변화를 주목한 공안기관 혹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이 전말을 박대통령에게 소상하게 보고했더라면 달리 대책을 세웠을 것이므로 김재규에게 시해당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광주사태가 부마사태와 다른 1차 특징이 악성유언비어유포로 시민을 분기탱천시켜 시민을 모두 시위대로 만드는 일이었다. 광주사태 책임을 묻는다면 첫 번째가 바로 악질유언비어였다. 괜히 공수부대와 전두환을 끌어들여 덤터기씌우는 건 이 유언비어를 덮기 위함으로 본다.
경상도군인이 광주사람 씨를 말리려 왔다, 여고생 유방을 도려냈다, 공수부대에 환각제를 먹였다, 임산부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냈다는 광주로부터 들려오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참혹한 유언비어를 차례로 들으며 나는 직감적으로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광주사태 발발과 거의 동시적으로 이런 악성유언비어를 차례로 유포시켜 광주시민을 분기탱천시켜 시위대로 참여시킴으로서 대한민국최강의 군대 공수부대를 물리치고 광주를 장악할 수 있었다. 부마사태는 간단히 진압했던 공수부대가 광주에서는 오히려 매타작당하는 참담한 처지가 된 게 바로 이 유언비어효과였다.
공수부대를 이렇게 무력화시킨 다음에는 사전계획대로 44개 곳의 무기고를 털어 시위대를 무장시킴으로서 공수부대를 광주로부터 축출하고 광주해방구를 선포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광주외곽 진출이 봉쇄당해 본래 계획이 차질을 빚었고, 27일 공수부대에 의해 도청이 탈환됨으로서 해방구 꿈은 무산되었다.
이로서 비록 전국봉기로 최규하정권 뒤엎고 정권 탈취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광주시민에 이어 호남전체를 공범으로 묶는 데는 성공함으로서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을 불구로 만들어 놨으니 5.18은 성공한 거사임이 분명하다.
오늘 문재인은 광주에서 이 성공을 기념하고 있겠지? 미완의 성공 나머지를 내가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그렇게 실현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거 상상하고 추측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나는 광주5.18당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악성유언비어에 수긍하는 광주 호남 친구 선후배들 모습을 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예감했다. 광주 호남이 원하는 대로 되면 대한민국은 그만큼 죽는다고. 그리고 대한민국은 결코 이 장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