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의 추억
2023.10.06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되었지만 저희 가족은 조용하게 보통 여느 연휴처럼 시간을 보내
고 있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보름 정도 전에 고향을 미리 다녀왔기도 했고 코로나19 문제도 좀 있어서입니다.
보통 추석이라고 하면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이름 하에 발생하는 교통체증에 많은 분들이
즐거운 마음과는 별개로 차에서 고생을 하시는데 저는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 감사
한 일이죠.
다만 추석이라는 명절의 이름하에 특권처럼 허용되는 기름진 고칼로리 음식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것은 못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추석이 되니까 제게는 추석과 관련된 어떤 추억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억
에 제일 많이 남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생일 쯤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죠. 이제부터
추석에는 서로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지 말자고 어른들끼리 정하신 것이죠.
.
설날과 추석 때 받는 용돈은 어머니께 대부분 제 대학 등록금에 쓰인다는 명분(?) 하에 압
수당한 적이 많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용하게 해 주셨기에 일종의 보너스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를 포함한 네 분의 형제는 그렇게 결정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타격이
제일 큰 아이들이 학생이었던 셋째인 우리 집과 막내 삼촌 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께도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있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큰 아버
지께서 퇴직을 하신 상태에서 당신의 자녀들은 장성을 해서 출가를 했으니 많은 조카들에
게 나가는 비용이 부담되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말이죠. 아마 이 정책을 시행한 이후로는 마
음이 한결 편해지셨을 겁니다.
.
추석용돈 지급 전……………..지급 중지 후………….
물론 저는 어른이 되기까지 속 쓰린 추석의 추억으로 남았지만요.
그 뒤에 있었던 또 하나의 추억은 결혼한 뒤에 있었습니다. 결혼하고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저, 아내, 남동생은 선물을 이것저것 사서 큰 집으로 갔습니다. 첫 시댁 친척들까지 만나는
자리여서 아내는 한복을 입고 갔었죠.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큰 어머니께서 한 말씀을 하십
니다. “다음에는 일하기 편한 옷으로 입고 온나”라고 말이죠.
.
보통 다 함께 진해의 친가에 가서도 제가 설거지를 하기에 큰 어머니의 그 말씀은 그리 반
갑게 들리진 않았죠. 그 뒤로는 큰집에 가지는 않았고 금세 잊혔지만 이 사건도 나름대로
추석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추석의 추억을 곱씹고 있기에는 너무 날씨가 좋았기에 일단은 다 함께 나
왔습니다.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로 와서 나들목을 거쳐 한강으로 갑니다.
.
이 동네에서 아이들과 7살 때까지 살았는데 오랜만에 다 함께 왔네요. 쌍둥이용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서 지나다니던 길인데 아이들과 걸어서 오니 새롭습니다.
.
아이들이 오리배를 타고 싶다고 해서 선착장까지 갔는데 가격이 25,000원입니다. 아이들
에게 너희들이 돈을 보탠다면 아빠가 함께 타 주겠다고 하니 고민 끝에 타지 않겠다고 하네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요.
※ 그리고 아시다시피 참고로 저는 물을 싫어합니다.
.
한강변에는 햇볕도 따사롭고 사람들도 많아서 나들이 기분을 많이 내고 돌아왔네요. 북적
북적하게 친지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보내는 추석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는 하루였습니다.
by. 페르세우스 https://brunch.co.kr/@wonjue/371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행복한가 이 외의 공간에 무단 복제 및 도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