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면 罪(죄)를 지은 被疑者(피의자)가 옷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는 장면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감히 ‘얼굴을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경을 칠 놈!’이라는 욕은 옛날 이마에 먹을 쳤던 형벌 '경'[刖의 月대신 京]에서 나온 말이다.
경을 당하고 나면 평생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지금은 ‘얼굴에 X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 역시 얼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름 석 자가 이렇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니는 象徵性(상징성)에 있다.
즉 얼굴이 개인의 肉身(육신)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이름은 精神(정신)과 存在(존재)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고이 간직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 孝道(효도)의 첫걸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인가? 일찍부터 ‘豹死留皮, 人死留名’(표사유피, 인사유명: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김)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처럼 有名하고 揚名(양명:이름을 날림)하여 靑史(청사)에 留名이라도 한다면야 최대의 보람이겠지만 자칫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떳떳하지 못해 이름을 숨기면 匿名(익명), 더럽히면 汚名(오명), 억울하게 뒤집어쓰게 되면 陋名(누명)이 된다.
또 함부로 팔면 賣名(매명), 그럴 듯하게 내세우면 美名(미명)이다.
또 못된 짓으로 惡名(악명)을 떨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이름은 자기 하기에 따라얼마든지 榮辱(영욕)을 달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름을 바르게 잘 간직하는 것이 ‘正名’으로 孔子 할아버지가 主張(주장)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혼란스러웠던 春秋時代(춘추시대)였다.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으며 백성은 塗炭(도탄)에 빠졌다.
가옥과 전답은 깡그리 파괴, 약탈되었으며 도처에서 悲鳴(비명)이 들려왔다.
그는 왜 세상이 이렇게도 혼란스러운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다들 자기 職分(직분:곧 名分)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천자는 천자대로, 諸侯(제후)는 諸侯대로 나름대로의 職分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이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외쳤다.
“다들 자신의 職分을 바로 잡자!”
이른 바 正名論이다. 이름, 직분을 바르게 하자는 뜻이다.
반대로 직분을 다 하지 않는 사람을 ‘似而非’(사이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