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이 아픈 하루였다.

[박영도]

 요즈음은 온통 4계절의 날씨가 뒤섞여 하루에도 몇 번씩 여름에서 겨울을 같이 겪는 혼돈 속에서 살고 있다.

월요일에는 검시준비로 주말 6시간을 보충수업을 해서인지 목도 잠기고 감기 기운도 있고 해서 출근을 오후 늦게 할 요량으로 장모님이 올여름 폭우를 걱정하며 몇 일째 노심초사하시는 뒷집 빗물받이에 대적하는 단도리를 해드릴 요량으로 처갓집에 들렸다.

 인근 철물점에서 선라이트와 못을 사서 간단하게 손을 보고 돌아서려니 장모님 등살에 어쩔 수 없이 뒷수발을 든다고 왔다갔다하시는 빙부님이 마음에 걸렸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시고는 소주 한 잔하시는 취미 외에는 친구도 별다른 소일거리도 없이 지내시면서 지나치게 깔끔하고 완벽주의자 이신 장모님과 늘 갈등이 있으면서도 지병을 핑계로 마지막 취미이신 소주마저 저지당하시고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모습이 안됐다 싶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모님의 눈을 피해 소주라도 한 잔 하시게 하는데 그마저도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처럼 잘못하고 있어 눈빛을 대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곤 했다.

 점심때도 어죽 되고 나선 김에 밖에서 점심 드시기를 권하니 장모님은 싫다고 해서 빙장님만 모시고 나서면서 내심으로 다행이다 싶기도 해서 역전시장 순대국밥 집으로 향했다.

 평소 가끔 들리는 가게를 들어서니 점심때라 소찬을 앞에 두고 너댓 군데에 손님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입구 테이블에 자리를 하고 국밥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켜 놓으니 단순하시게도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며 인사치레를 몇 번 하셨다.

 뜨거운 음식을 잘못 드시는 습성으로 인해 소주 한 병을 거의 비우다시피 하도록 밥에 수저를 못 대시는데 나는 벌써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식사시중을 들다가 한 치 건너 옆을 보니 한쪽 구석에서 나이가 많고 연로하신 할머니가 혼자서 고개를 떨군 채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테이블 앞에는 맑은 국물에 말은 밥 한공기와 반찬이라곤 김칫국물 한 숟갈이 전부였다. 순간 공짜로 동냥해서 드시기에 반찬을 하나만 그것도 제일 저렴한 깍두기 하나만 준다고 생각하니 주인장의 완전치 못한 인심에 마음이 언짢았다.

‘이왕 좋은 일 하시는데 좀 넉넉하게 하시지.... ’

 커피를 핑계 삼아 가까이 가서보니 얼굴에는 검은 검버섯에다 인생의 굴곡을 말해주는 겹겹이 굵은 주름하며 웃음이라곤 전혀 남아있지 않은 건조하게 무감정의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밥술을 뜬 손은 앙상한 손가락으로 겨우 수저를 받쳐 들고 불규칙한 템포로 오가는 생존의 관습적 반복으로만 보였다.

 주인에게 대충 전후 사정을 묻고 있노라니 장인어른이 식사를 마치셨는지 얼굴에 홍조가 오르고 주인과 밥값 흥정을 하시는 목소리가 계산을 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호주머니에서 만원짜리 몇 장을 빼다 넣는 것이 취기가 오르는듯 하였다.

차를 가게 앞으로 가져와 부축해 집으로 모셔 드리고 돌아서 나오는데 술 드셨다고 장모님께 언성을 들을까 ‘5분만 있다가 가라’고 잡는 모습에 연민의 마음이 가슴에 와 박혔다.

 오늘도 인근에 볼 일이 있어 점심을 생각하다가 그저께 할머니 생각이 났다. 시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디카를 챙겨들고 가게로 행했다.

주인과 인사를 나누곤 할머니를 챙기자 가게 앞에 계시다고 해서 나서보니 한나절 햇볕이 드는 입구 옆에서 작은 노전을 펼쳐 놓고 쪼그리고 앉은 모습이 웅크린 강아지만한 덩치로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나는 사람들마다 쳐다보는 눈빛이 눈에 걸리는 모양이었고 가까이에서 보니 차마 무슨 말로 인사를 챙겨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비닐 봉지봉지 담은 잡곡 열두서너 봉지가 다인 노전 가게를 지키시며 졸고 계시는지....

 가게로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할머니 식사를 챙기니 아직 전이라해서 오늘은 “제가 살 테니 할머니의 식사를 같이 부탁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주인이 가서 식사를 권하자 꾸부정한 걸음으로 들어오셨고 내가 앉은 식탁을 피해 구석자리를 찾자 주인에게 내 자리에 같이 차려주기를 청했다.

 할머니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앉으며 냅킨 세 장을 빼어서는 세 겹으로 다시 접고 계시다가 밥이 오자 익숙한 동작으로 맑은 기름이 뜬 국그릇에 접은 냅킨으로 밥그릇을 감싸서 밥을 말았다. 그리고는 반찬으로 김칫국물이 세 술쯤 나왔다.

 나도 4,000원짜리 시래기 해장국을 시켰건만 깍두기, 열무김치, 콩나물 3찬은 나왔는데 의아해하자 주인은 이내 치아가 없이 반찬을 못 드신다고 했다. 순간 그저께의 밥상이 이해가 갔고, 곡해를 한 내 자신의 경솔했음을 후회했다.

                        

 주인은 가끔은 무료로 드리고 더러는 돈을 받기도 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자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점심은 꼭 여기에서 드신다고 했다. 그리고 오산에서 오신다고 해서 짐도 저녁에는 가게 귀퉁이에 맡아둔다고 했다.

 잘해 드리고 싶은데 점심때는 배달도 있고 해서 바쁠 때는 소홀하다고 고백을 하면서 나보고 “보기가 흉하지요?”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 속에서 지난 날 나의 할머니와 나의 어머님의 보습이 보였다.

 시골에서 농사로 걷이를 한 잡곡이며 푸성귀며 한 움큼씩이라도 있으면 십오 리 읍내 5일장으로 가져가서는 추운 한겨울 학교를 파하고 들리면 어느 가게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한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을 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어찌 낯설기만 했겠는가!

 가슴이 싸하고 아려왔다.

 연세를 여쭈니 여든이라고 하시는데 그것보다는 10년 이상 더 보이시고, 집은 여기 근처 사신다는 데 주인 왈 오산이라고도 하고, 누구랑 같이 사시느냐 물으니 아드님 내외와 손주들과 같이 살고 있다고 하시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안 계신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계시면 절대로 저 모습으로 삶이 억센 시장바닥에 일생을 같이한 아내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단정하고 싶었다.

 같은 상머리에서 마주하고 점심을 먹고 일어서며 ‘할머니 천천히 많이 잡수세요.“라고 했으나 대답하지 않으셨다.

 둘이 밥값 10,000원을 지불하고 돌아서는데 ’살아 있다는 것이 왜 그리도 죄스러운지.....‘ 내 부모님의 모습들이 비치고 가슴은 답답한데 시장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끌하게 그렇게 살고 있었고, 나서는 가게문 옆, 주인이 출타중인 할머니의 작은 곡물가게에는 오랜만에 냉기가 남은 바람 사이로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고 있었다.

산다는 것이 아픈 하루였다.

[미소천사]

교장선생님......산다는것이 무엇인지......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모습들이 지금은 가까이 피부에 와닿는것~같습니다 .....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 허리가 구부러져서 걷는것 조차 버거워보이는데.....양손에는 ~손주들 줄거라고 바리~바리 싸들고 자식집을 찾아가시는 할머니를 뵈올때......세월의 무상함과 자녀로서 부모님을 섬기는 마음이 상실된 이 세대가 가슴을 아프게 하네요......어르신들을 섬긴다고 하면서 진정 어르신들이 원하시는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혹시 내방식대로 하고있는건 아닌지....조심스럽게 되돌아 봅니다~*이번 시험 잘봐야 될텐데......샘~* 기도해 주세요...*^^*

[young58]

모든 것이 소망하시는 데로 잘 되실 겁니다. 모두를 위해 성실하게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