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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콩나물국/ 강종원
은하수 추천 0 조회 129 18.12.16 14: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콩나물국/ 강종원

 

냄비에 물을 붓고

콩나물국을 끓인다

끓는 물속에서

오그라진 콩나물들이

자지러지게 떨고 있다

노랗게 물든 물방울은

본체만체 춤추고 떠들면서

노래하고 있다

 

냄비 속으로 적조처럼

흐르는 비린내가

물방울 속을 헤집고 다닌다

마침내 파르르 떨던 물방울도

무아지경 속에서 춤추던 콩나물도

모두 숨이 죽고

한편의 뮤지컬은 막을 내렸다.

 

- 경기도 광주 경안천 생태습지공원에서

..............................................................

 .

누구나 시를 쓰면 시인이라는 말에 동의하면서 본디 수필가인 강종원을 시인이라 칭하고, 이 글도 시로서 극진히대접한다. 이 시는 광주시의 지원을 받아 판넬로 제작해 경안천 습지공원에 상설 전시중인 너른고을문학(한국작가회의 경기광주지부) 회원들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서민적인 범용 식재료가 콩나물이고, 콩나물국은 쉽고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국물요리이다. 시인은 이 콩나물국을 끊이면서 그 관찰기록을 시로 옮겼다. 콩나물국 하나도 시인에겐 이렇듯 훌륭한 시적 관찰대상이 된다. 콩나물대가리를 음표에 비유한 것에 착안하여 콩나물국이 되어가는 과정을 한 편의 뮤지컬로 형상화한 것이다

       

실제로 혼자 밥을 끊여 먹다보면 제일 만만한 게 콩나물국이다. 전날 술이라도 한잔했다면 숙취해소를 위한 해장국으로는 아주 그만이다. 예전에 비해 콩나물 다듬기도 수월해졌다. 어느 시인은 콩나물에게 이렇게 물었다. ‘무엇에 놀란 삶이기에 노랗게 질린 얼굴이냐고, 얼마나 생각이 많은 삶이기에 무거운 머리를 이고 있냐고, 온몸이 뿌리가 되어버리고도 어떤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저토록 힘든 모습이냐고, 얼마나 지독한 사랑을 앓았기에 허연 뱃속까지 드러내고,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일생 고개를 들지 못하느냐고콩나물의 형상을 여러모로 잘 묘사한 시다. 이렇듯 콩나물 하나에 머무는 상념만도 수십 가지는 될 것이다.


그런데 조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비린 맛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국이 끓기 전에 뚜껑을 열면 콩나물에서 비린 맛이 난다는 상식이 널리 퍼져있다. 시인은 아마 뚜껑을 덮지 않고 열어둔 채 짧은 뮤지컬을 감상했던 모양이다. 실은 생각만큼 비린내의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설익으면 떫은 내가 나고 너무 푹 익으면 씹는 맛이 떨어지므로 그 점을 유의해야 한다. 콩나물은 콩에다가 다른 일체의 영양소 공급 없이 그저 물만 주어 키우는 순수한 식재료이다. 그것도 어두운 곳에 빼곡히 가두고선 보자기를 덮어 씌어 무슨 형벌인양 키우는데, 죄 없는 콩알들을 그리 막 대해도 좋을지 생각하면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콩나물국은 우리들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들이 서려있는 먹을거리가 아닌가. 옛날엔 군대에서 사흘도리로 나오는 것이 콩나물국인지라 제대하고서도 콩나물반찬이라면 질려서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값싸고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얕잡아볼 일은 아니다. 알고 보면 콩나물국은 암 예방에서부터 성인병인 고혈압, 동맥경화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뛰어난 약용 음식이라 하겠다. 동의보감에도 '콩나물은 온몸이 무겁고 저리거나 근육과 뼈가 아플 때 치료되고 제반 염증소견을 억제하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기록되어있다. 숙취해소는 물론 겨울철 감기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피부미용에 좋을 뿐 아니라 머리를 좋게 하는 물질까지 들어있다고 한다. 물끄러미 보자면 올챙이의 생김새를 닮았는데 무아지경 속에서 춤추던 콩나물이 마치 뮤지컬에서 멋진 연기와 노래를 들려주는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이다. 바른대로 말하면 콩나물은 콩으로서의 특성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모습이다. 그만큼 자연의 변형을 통해 편익을 취하는 인간에게 복무하는 형태이다. 너무 자주 해먹으면 저렴하게 보일까봐(보는 사람도 없지만) 가끔 한 봉지씩 사는데 다 못 먹고 반은 버릴 때가 많다. 지난밤엔 소주를 넉 잔밖에 안 마셨지만 아침에 콩나물국을 끓여야겠다. 냄비 속에서 저네들끼리 마음껏 춤추고 떠들며 노래하는모습도 흘낏 훔쳐봐야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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