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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소백산 지역 조령산에 들다.
지난 구간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같이 못했지만 이제부턴 한 구간 빠짐없이 열심히 잘 해볼 생각이다.
이화령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계에 있는 고개로서 조령산과 갈미봉(葛味峰/783m)이 맞닿은 안부에 위치하고 이화령의 남동부에는
조령천의 지류가 흐르며 북서부에는 쌍천의 지류가 흐르는 산자분수령의 대간 안부이다.
과거(過去)에는 이화령의 북쪽에 있는 조령이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용 되었으나 이화령보다 산세가 험준하기 때문에
이화령을 따라 국도가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조령은 괴산군 연풍면의 고사리마을과 문경시 문경읍의 상초리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될 뿐 차량은 물론 인적도 매우 드문 곳이나 요즈음엔
옛길 찾는 사람이나 관광객이 상당히 내왕(來往) 하는 목이 좋은 곳이 된 반면 이화령은 아래에 1600m터널이 개통함에 따라 완전 옛길로 탈바꿈 되어 버렸다.
조령 제1관문(주흘관)에서 제2관문(조국관), 제3관문(조령관)으로 이어지는 새재길이 지정된 것은 조선 태종때(1400-1418년)의 일이고 이곳에는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이라고 불리었다고도 한다.
이곳의 박달나무로 만든 다듬이방망이나 홍두깨가 전국으로 팔려 나가기도 해서 새재 박달나무는 복도 많아 큰 애기(처녀)손길에서 놀아난다는
민요가 나올 정도였다.
문경새재 민요*
문경새재 물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 좋아 큰 애기 손길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 갈재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조령산은
기암 괴봉으로 변화무쌍한 산세를 지닌 주흘산(1106m)과 나란히 자랑이라도 하듯 양립해 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흐뭇한 장관의 일면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장송이 곳곳에 진을 치듯 바위에 수를 놓은 덧 한 것은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느낌이지만 어찌 좁은 소견의 머리로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산이 험한 만큼 매력 있는 산이라 등산애호가 들로부터 사랑과 애무를 독차지 하고 있는 명산중의 명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十里不同音이면 百里不同俗이라고 십리 간에 말이 다르고 백리 간에는 풍속도 다르다했다.
고개 하나로 경상도와 충청도를 가르니 말 그대로 말씨와 모든 풍습도 많이 틀린다.
조령산은 대부분 암벽지대이지만 산림이 울창하고 능선 남쪽 백화산(1063,5m)과의 경계에는 이화령이 있고 능선북쪽 마역봉(마폐봉,927m)과의
경계에는 조령 3관문이 있으며 관문 서편엔 조령산 자연휴양림이 조성 되어있다.
그래서 이곳을 예로부터 문경새재라 하였으며 이로 인해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이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험난한 지세를 이용할 수 있어
군사상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근래엔 영화 촬영장까지 생겨 좋은 산과 유적지를 겸한 복합적인 관광지로 발돋움 하고 있다.
주 능선상의 북쪽엔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大小암봉과 암벽지대가 많고 능선의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수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되어 있고 멀지 않은 곳 에 유명한 금란서원이 명당자리에 터를 잡고 있다.
문교부 장관과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옥길여사가 지은 집으로 요즘에는 이대 교직원 휴양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동쪽으로 흐르는 조령천 옆으로 만들어진 길은 조선조 제3대 태종이 국도로 지정한 간선 도로였으며 윈터, 교구정터 등의 사적지가 있으며 완만하게
흐르는 계곡에는 와폭과 潭이 산재하며 이 일대를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지정 하였으며 수안보 온천과 월악산 국립공원과도 가까운 거리이다.
정상에 오르는 시간과 그 고생에 비하면 정상에서 머무는 시간은 언제나 인색하다.
버릇처럼 한번 둘러보고 필요한 사진 몇 장 찍으면 더 있을 필요가 없다.
험하고 머나먼 길이 나에겐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에 항상 쫒기는 심정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때로는 동료의 원망도 받는다.
쉬어 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허지만 인생의 마지막 보루(堡壘)는 결국 나 자신 뿐이다.
누가 대신 걸어 주는 것도 아니고 또한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이 대간종주는 언제나 열심히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백두대간 종주인 것이다.
기우는 해는 우리보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빨리 이동해 늦기 전에 하산하여 뒷사람을 기다려야지 나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나친 여유(餘裕)와 자만심(自慢心)은 때로는 화(禍)를 불러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산신령과 하느님 부처님 모두 찾아봐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오로지 자신이 알아서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기에 산에서는 항상 여유만으로 해결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입산을 일찍 하게 되면 자연 하산길이 여유롭게 되는 것이다.
산에서는 시간을 맞추려 하지 말고 시간을 아껴 비축하는 습관을 하게 되면 절반의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등산이나 사회생활 모두에 제일 중요한 것은 기본(基本)이다,
그 기본은 지나쳐도 안 되지만 모자라도 안 되는 것이다.
기본이란 보통이고 꼭 구분을 지운다면 중간쯤이다.
그러니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꼭 알맞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본을 중요시 하며 지키는데 신의(信義)를 걸어야 할 것이다.
바위벼랑에 외롭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그 끈질긴 생명감에 감탄할 것이다.
우리 인간사회에서도 서로서로 주고받는 대화에 미소가 흐른다면 고목나무에 꽃 피는 것과 같다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메마른 세상이라고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살만 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간종주는 본인의 노력과 뚜렷한 사고방식에서 결정 되어 지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변의 진심어린 관심과 격려가 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니 만큼
같이하지 않는 회원이라 할지라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음양(陰陽)으로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 싶다.
백두대간이란 하루 이틀에 종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심심풀이로 장난삼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장장 4-50일 걸려야 하고 경비도 보통으로 드는 거 아니다;
그런 장기계획을 세워 우리 큰 산줄기를 답사해 보려면 장애물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형적인 장애물은 슬기롭게 대처 하고 다른 준비적인 장애는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면 쉽게 해결 되지만 험한 산길도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도 아닌
국립공원지역이 제일 큰 장애이다.
공단에서는 휴식년제니 하면서 길 막으며 단속 하는데 이력이 나 있고 이제는 그들이 앞장서서 자연을 파괴하려하니 이런 문제는 누가 단속을 해야 하나?
대형 훼손은 국영업체에서 다 하고 1m폭도 안 되는 대간 길 막아가며 돈 물리는 행정 앞뒤 안 맞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니고 무엇인가!
작은 것은 기를 쓰며 지키고 큰 것은 방치하니 오히려 경제적 타산이 맞지 않는 행정 하루빨리 결단 시정해야할 일이라고 보아진다.
설악산 황철봉 구간과 속리산 문장대구간 그 암벽길이 어떻게 종주꾼 지난다고 훼손 된단 말인가.
아무리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산을 찾는 다는 것은 영혼을 쥐어짜는 극치의 예술구도가 아닌 순수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또 어찌 보면 아직도 꿈을 키우며 고목에 꽃을 피워 보겠다는 부단(不斷)의 노력하는 모습은 젊은 사람에게도 귀감이 되어 지리라 보아진다.
허지만 그저 소박한 도락(道樂)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 백두대간에서 하루를 보낸 우리 대원들과 무사산행을 자축하며 다음 구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오늘의 산행 얘기를 접는다.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
첫댓글 백두대간의 험준한 구간이네요. 밧줄도 많고 암릉이 많아서 고생하셨습니다. 이런 구간은 좀더 계단을 해주면 좋을 텐데 힘든 구간을 잘 다녀 오셨네요. 항상 열심히 다니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항상 멋진 산행하시는것을 보니 정선생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멋진 사진과 글 잘 보았습니다.
예전에비해 많이 개선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조령산은 조령산이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