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일강(Nile)
나일강은 근원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여 열대 초원을 흐르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의 산악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이루는 청나일이 수단의 카루틈 남방에서 합류하여
이집트의 젖줄이 된다.
여기부터는 전혀 유입되는 물 없이 곧장 지중해 까지 북으로 흘러간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하는데 대개의 홍수는 수해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나일강 홍수는 7월에서 10월에 걸쳐 이집트의 완만한 사막을 서서히 흘러 가면서 온갖 수목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뭇 짐승들이 서식 할 수 있도록 한다.
수백 Km 를 흘러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누어져 나일 델타란 넓은 대평원을 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땅이 한때는 세계의 곡창이라고 알려진 비옥한 땅인데, 이것은 홍수가 싣고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자연의 퇴비를 깔아주는 결과이다.
이와같이 해마다 부엽토를 더해 가면서 이 비옥한 땅은 검은 색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검은 땅이란 뜻에서 케미(KEMI)라고 불렀다.
이처럼 나일강은 자연의 선물을 남겨 주면서 서서히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약 6500 Km의 장구한 여행을 마친다.
연중 행사처럼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여 수해가 아닌 수해를 안겨주는 나일강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았고 또한 숭배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절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나일강의 범람과 연관 된 것으로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이다.
이렇게 수천 년을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을 사람의 힘으로 조종해 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 되어서
19세기초 케네디 모하멧 알리 (Khedive Mohammed Ali)는 이집트 현대화 작업을 시작하여 나일강을 알렉산드리아의
식수원이 되게 하였고 카이로 북쪽에 갑문장치를 설치하여 많은 농토를 확보하기도 하였고, 1972년에는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어 내년 범람하던 나일강은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강변의 많은 땅들은 전천후의 농토가 되었다.
그러나 나일강의 선물인 천연 퇴비는 영영 잃어 버리게 되었다.
■ 수에즈 운하(Suez Canal)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포트사이드 사이에 뚫은 운하로 총길이 195km, 수면의 너비는 365m, 수심 약 20m. 35피트까지의 배들이 항해가능하다.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에 의해 1869년 개통되었지만, 이 운하건설 계획은 고대 이집트인이 이미 착수한 것이었다.
하루 평균 100여 척의 선박이 이용하고 있으며 전세계 물동량의 14%가 이 운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통과 소요시간은 약 15시간이 걸린다.
최초의 운하는 기원전 2100년에 계획되어 네코가 지중해와 연결 공사를 시작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중단하였다.
그 후 기원전 500년경 다리우스 1세가 홍해와 대염 호수(Great Bitter Lakes)를 거쳐 부바스티스(Bubastis)의 나일강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이 수로는 7세기 아랍의 상인들이 이집트의 농산물을 실어 가는데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백 여년 동안 사용되다가
회교 내분으로 수로를 이용한 곡물 운반이 중단 되자 운하는 폐기되었다.
1798년 나폴레옹이 그 유적을 발견하고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므로써 훌륭한 통상로를 개척하려는 꿈을 꾸었다.
그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수석 기사의 계산 착오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새 운하의 건설공사는 주 카이로 불란서 영사였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 에 의해 1859년 시작되었다.
그는 토목기사로서의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젊었을 때부터 이 운하건설에 대한 집념을 품어 왔었다.
첫 삽이 떠진 후 10년동안 드 레셉스는 오로지 7460만 입방미터의 흙을 파내는 대규모 토목공사의 감독에만 전념했다.
드 레셉스는 먼저 건설기지로서 포트사이드에 인공 항구를 만들고, 2만명의 노동자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나일강에서 수에즈 지협까지 수로를 팠다.
북에서 남으로 공사를 진행시켜 나간 드 레셉스는 육지에 깊이 7m의 수로를 파서 도중에 있는 호수들을 연결해 나갔다.
그리하여 남부의 대비터호 (Great Vitter Lakes)와 소(小) 비터호가 홍해와 연결되어 호수가 바닷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수로를 파서 이들 호수를 다시 침사호와 연결 시켰다.
3,000마리의 낙타가 노동자들의 음료수를 싣고 사막을 지나 맨잘라호 까지 나르고, 거기서 다시 거룻배로 음료수를
포트사이드로 운반했다.
지방어민들이 징용되어 얕은 호수 위에 손으로 수로를 팠으며, 이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뗏목 위에서 잤다.
공사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약 8만명의 농민들이 고용되었는데, 그들의 일급은 3 피아스터 (약 3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1863년부터 운하가 개통된 1869년 까지 노동자수는 차츰 줄어들고 대신 준설기와 굴착기가 등장했다.
1869년 10월, 프랑스 기선 루이즈에 마리호가 이 운하를 통과하여 외해로 나간 최초의 선박이 되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왕가의 대표들이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는 식전에 참석했다.
개통일 자정 조금 전에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다. 이집트의 프리기트함 한 척이 포트사이드 밖 30km 지점에서 좌초했던 것이다.
개통식에는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선박이 새 운하를 통과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몰랐다.
파리에서 날아온 급전들은 개통식이 연기되어야 할 것이라는 뉴스를 전했다. 다음날 드 레셉스가 , 운하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각국의 선박들은 사고현장에서 불과 5분 거리밖에 안되는 곳에 육박하고 있었다.
1952년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대통령 압델 나세르는 1956년 7월 수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하였고,
기득권을 상실한 영국과 불란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강점 하는 등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그 후 1967년 6일 전쟁으로 운하가 폐쇄되었다가, 1973년 사다트 대통령의 시나이 반도 탈환과 더불어,
이 운하는 이집트 정부의 관리하에 폐쇄 8년만인 1975년 재개통 되었다.
하루 평균 100여 척의 선박이 이용하고 있으며 전세계 물동량의 14%가 이 운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통과 소요시간은
약 15시간이 걸린다.
운하의 폭은 200 미터, 평균 수심은 20 미터인데,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꾸준한 준설 확장을 계속하고 있고,
현재 운하의 길이는 173 Km에 달한다. 이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들어가는 연결 지점은 4곳의 나루터와
한 개의 해저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은 진입로를 포함하여 총 연장 4.5 Km이다.
운하의 항구는 홍해쪽이 수에즈 이고 지중해 쪽에는 포트사이드 이다.
■ 아흐마드 함디 터널
카이로를 출발하여 동부 사막길로 128Km를 달리면 수에즈 운하 남단에 아흐마디 함디 터널에 도착한다.
수에즈 시 북쪽 1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 터널은 1975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0년 4월 30일 개통된 수에즈 운하를
건너는 유일한 터널이다. 총연장 4.5 Km인 이 터널의 1.6 Km가 지하이다.
또한 이터널은 수에즈 운하 밑 37m에 자리잡고 있다.
터널의 이름은 1973년 10월 전쟁에서 죽은 뛰어났던 기술 고문관 아흐마드 함디의 이름을 기리기 위하여 붙여졌다..
■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중해의 진주'라 불리는 알렉산드리아는 따뜻한 기후와 밝은 햇살의 혜택을 입고 있는 도시이다.
카이로 다음가는 이 집트 제2의 도시이지만 차분하고 여유있는 분위기는 카이로와 대조적이다.
이집트 제일의 무역항으로서 유럽풍의 분위 기를 계속 지니고 있다.
시가에는 그런 과거의 역사를 말해주는 유적과 박물관이 있고, 동서 20km의 널찍하고 아름다 운 모래밭은 훌륭한 휴양지이기도 해서
국내외의 관광객이 많이 찾아간다. 이곳에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던 등대와 도서관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 해변을 따라서 클레오파트라와 줄리어스 시저와 마크 안토니 그리고 옥타비안의 비극이 연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 로마의 원형극장
콤 알디카 유적 속에서 1964년에 발견된 원형극장으로 좌석은 유럽산 대리석이고, 13단으로 700~800명이 앉을 수 있고
원주는 아스완의 화강암과 소아시아의 녹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의자에는 로마 양식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집트 유일의 그리스.로마 시대 극장이다.
■ 카이트 베이 요새 (The Citadel of Qaitbey)
항구를 둘러싼 반도의 끝에 있으며 일찍이 이곳에는 파로스섬의 등대가 있었으나 전쟁과 재해로 파괴되고
그 자리에 요새가 세워졌다.
카이트 베이는 마믈루크 왕조의 술탄으로 그가 재위중이던 15세기말 이 요새가 건설되었다.
세계7대불가사의의 하나로 등대는 높이가 125m에 아래에 노동자들을 위해 약 300개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폼페이의 기둥 (Pompei's Pillar)
지금의 알렉산드리아에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물이 적은데, 이 폼페이의 기둥은 그 적은 유물 중 하나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상을 얹기 위해 세워진 것이므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둥이라고도 부른다.
이 기둥은 항해중인 배들의 목표물로도 이용되었다 하고, 주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세라피스 신을 모시던
신전 세라페움의 유물들이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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