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선은 개통 80여년만에 크나큰 과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구불구불했던 자신의 척추를 쭉쭉 펴는 직선화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천안~신례원, 주포~남포 구간은 허리를 쭉 폈으며,
신례원~신성, 간치~장항 구간도 올해 이내로 허리를 완전히 쭉 펴게 될 것이다.
이 중 신례원~신성의 중앙에 위치한 화양역은, 이 '허리를 펴는 작업'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크다.
단순히 허리를 펴는 작업이 내년 착공 예정인 '충남도청 신도시'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충남도청 신도시가 비록 화양역 바로 옆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지만,
신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철도역으로서 무려 10만명의 배후인구를 수용하는 역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양역은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쓰디쓰고 아플지라도 잘 참고 견뎌내고 있다.
화려했던 시절, 그 때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여객 화물 모두 취급하지 않는 삭막한 간이역에 불과하지만,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한 나날에 젖어있다.

대부분의 철도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장항선은 큰 역과 작은 역이 번갈아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삽교역과 홍성역 사이에 끼인 화양역도 그 대표적인 예로서,
큼직큼직한 역들 사이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끊임없는 나락의 길을 걸은 역이다.
지역 주민들이나 겨우 알 법한 생소한 이름 '화양역'.
조그만 마을 도로에서도 지붕 너머로 겨우 보일 정도로 존재감이 미약하다.

화양역 앞은 인적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한산한 대표적인 시골 마을이다.
여기에도 도보로 약 10분 정도 이동하면 예산-홍성을 잇는 시원시원한 국도가 나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주변에 다니는 차들도 없고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도로 오른편의 조그만 논 너머로 이미 크게 뒤틀린 장항선이 보인다.
그런데 열차가 달리는 구불구불한 선로는 보이지 않고 흙으로 뒤덮인 거대한 언덕만이 보인다.
공사가 기존선 반대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선로가 당연히 보여야 정상인데,
선로는 커녕 노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큰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장항선과는 달리 화양리 마을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젊은 사람은 모두 떠나버리고 늙은 노인 분들 몇몇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
사실상 사람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북적거려야 할 마을의 중심지, 역 앞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남도청 신도시가 인근에 들어서기는 하지만 화양리와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화양리와는 전혀 다른 삽교읍, 홍북면 경계지역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옆 동네의 '벼락부자'들을 두 눈 뜨고 쳐다볼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도청신도시 주변의 무분별한 땅 투기지역으로 지정되어 몸살만 앓고 있는 상황이다.

갈수록 마을 사람은 줄어들고,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고...
그 때문에 화양역의 존재 가치조차 불투명해진 현실.
여객도, 화물도 모두 화양역을 외면해 버려 사실상 신호장의 기능만 하고 있다.
하지만 신호업무마저도 근처에 삽교역과 홍성역이라는 거대역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화양역은 역무원과 역장이 근무하는 '보통역'이다.
도데체 아직까지 화양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깨고 새마을호가 기적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구내를 통과한다.
아까 화양역을 찾아오기 전, 기존 선로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서야 찾았다.
벌써 화양역은 구선로를 철거하고 새로운 노반으로 선로를 옮겼던 것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니 작년 초까지만 해도 ,
간이역만의 아름다운 정취를 모두 잃어버린 특징없는 삭막한 역으로 변해버렸다.

현재는 여객도 화물도 취급하지 않는 화양역이지만,
새로이 모습을 탈바꿈하면 2폼 6선식의 거대한 역으로 부활할 예정이다.
역사도 매우 크게 들어서고, 여객홈과 화물홈 모두 그대로 존치된다.
앞으로 들어올 '도청신도시' 때문인 걸까, 아니면 신도시와 상관없이 원래부터 이렇게 큰 역으로 만들 생각이었을까.

하는 일이 없기는 해도 아직까지는 엄연한 보통역으로, 역무원이 근무한다.
그 때문에 역사 안은 굉장히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다.
내부 곳곳을 둘러봐도 흠 잡을 데 없는 평범한 시골 기차역이다.

벌써 열차가 서지 않게 된 것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화양역에 아담하게 놓여진 테이블과 나무의자를 보면 전혀 열차가 서지 않는 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의 오가지도 않았을 텐데, 탁자와 의자엔 먼지 하나 쌓여있지 않았다.
전혀 의외의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암담한 현실은 텅텅 빈 시간표에 그대로 묻어있다.
정차하는 열차는 아무 것도 없고, 정차하는 열차가 없으니 여객운임표 또한 텅텅 비어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시간표에 까만 글씨들이 가득 채워질려나.
그래도 그나마 신성, 원죽, 주포, 남포, 간치역들보다는 훨씬 밝은 가망이다.
'서해선'이라는 새로운 간선철도가 바로 이 곳, 화양역에서 분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청신도시가 들어선다고 해도 화양역 인근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객취급 역으로서 활기를 찾을지는 미지수이다.
설상가상으로 삽교-화양역 사이에 '충남도청'역을 만들 계획도 검토중이라고 하니...

그래도 혹시 모를 실낱같은 희망은 놓치기 싫었나 본지, 개량 후의 화양역은 이전보다 대규모로 커진다.
단선 장항선에 승강장만 2개가 들어서고, 선로는 6선이나 들어선다.
여객, 화물 모두 취급하지 않는데다 근처에 삽교와 홍성이라는 거대 기둥들이 위치한 역 치고는 엄청난 규모다.
현재 화양역은 이미 완성된 반쪽 노반으로 선로를 옮기고 나머지 반쪽을 높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화양역 특유의 평야를 낀 한적한 간이역의 풍경은 무너져버린지 오래다.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는 무참히 걷혀나가고,
쓰지 않는 승강장은 흙 속에 묻힌 채 잡초가 무성하다.
바로 옆엔 높다랗게 흙을 쌓은 노반이 반대편과의 접촉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한적해 보이기만 하는 역사도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화양역의 입장에선 그저 이대로 시간 속에 갇혀 있기만을 바랄 것이다.
이미 저 밑 동네의 주포, 대천, 남포역의 건물들이 주루룩 무너져 내렸기에,
역 바로 앞으로 건물을 덮어버릴 것 같은 높이로 흙을 쌓고 직선화 공사를 하고 있기에,
위기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당 못할 정도로 크게 느껴진다.

낡디낡은 붉은 승강장과 신노반의 붉은 흙의 경계는 무너져버린지 오래다.
화양역에 남아있었던 검은색 옛 역명판도 이미 뽑혀버리고,
선로 너머의 역목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붉은 흙이 지키고 있다.
모습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과도기의 기차역은 그 어떤 곳보다도 더욱더 삭막하기만 할 뿐이다.

바로 옆에서 걷혀나간 선로를 쓸쓸히 지켜보아야만 했던 신호기.
신호기가 있었던 자리엔 서글픈 추억만이 까맣게 자리한다.
멀쩡히 살아있는 바로 옆의 역목들까지 한 데 어우러져 폐역과도 같은 분위기는 더해간다.

1955년 개업 이후 일개 조그만 간이역으로 남아있었던 화양역이, 순식간에 거대한 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쓸데없이 몸집을 불리는 다른 역들과는 다르게, 화양역의 몸 불리기는 그만큼 타당한 이유가 있기에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서해선의 분기역이자 충남도청 거점역으로서 가망이 굉장히 밝기 때문이다.

이 곳 화양역으로 오려면 홍성터미널에서 홍북, 산수리방면의 버스를 타면 된다.
하지만 이 쪽 부근 자체가 개발이 거의 되지 않은 시골이라서 배차간격이 60~90분이나 된다.
너른 벌판 한 가운데의 아담한 '화양역'은 장항선에서도 충분히 손꼽힐 만한 오지이다.
물론 화양리를 지나가는 모든 버스들의 종점지가 충남도청 예정지와 맞물리기 때문에,
도청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면 도청신도시와 홍성, 광천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무궁화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 바로 옆으로 기관차형 새마을호가 무궁화를 위해 기다려주고 있다.
단선의 장항선에서는 새마을도 무궁화도 모두 평등하다. 위계, 서열 같은 것들은 통하지 않는 노선이다.
개량화 이후의 장항선도 마찬가지다. 단선의 노선에서는 열차의 등급이 사실상 무의미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장항선도 복선화가 되고, 전철화가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화양역도 화려하게 부활해 충남도청의 거점역이자 서해선의 분기역으로 명성을 떨칠 것이고,
흙으로 덮힌 조용한 승강장엔 용산, 천안방면으로 가는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물론 그들 뿐 아니라 안산, 남양, 발안, 안중, 합덕으로 가는 승객들도 열차를 기다릴 것이다.
현재의 모습만 보면 전혀 믿겨지지 않는 상황이지만, 엄연한 현실로 다가올 일들이다.
'화양역'.
1955년 개통 이후 언제나 주변 역들의 세에 눌려 숨을 죽여 살아야만 했다.
한 때 잠깐 태양중공업이 화양리에 들어오기도 했었지만,
주변의 삽교, 홍성, 신성역이 모두 주요 화물 취급역으로서 엄청난 위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태양중공업 공장이 너무나도 오지에 들어와 있는 관계로,
화양역의 화물 육성 노력은 얼마 가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여객도 화물도 취급하지 않지만,
머지 않은 미래엔 수많은 승객들을 토해내는 거대역으로 변모해있을 것이다.
차후 경의선과도 연결된다던 서해선의 분기역으로서,
그리고 예산-홍성의 완충지대에 들어서는 충남도청 신도시의 거점역으로서,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역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지금은 단지 부활을 위해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부활하며 그 숨을 한 껏 토해내는 순간,
삽교역보다 더욱 커지고 홍성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한 골리앗이 되어 있을 것이다.
첫댓글 버스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걸어서 50분이면 충분합니다. 21번 국도 따라서 쭉 걸어가기만 하면 되니 길을 찾지 못할 념려도 거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