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경 울산 민주시민교육 교사네트워크(이후 네트워크) 공모가 있었다. 교육경력 16년차, 학교와 학생이 그리고 교육이 변했다. 그리고 학업에 대한 의지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준비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학생들을 바라보며 교사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공모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되었든 교실에 앉아만 있는 학생들을 배움의 장으로 끌어만 낼 수 있다면 하는 아주 작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산 시내 초중고에서 모인 선생님들과 9월 첫 모임이 있었다. 학교폭력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학교에서 오신 선생님은 학생들이 민주시민이 된다면 학교폭력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교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네트워크에 참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9년 현재, 일 년의 시간동안 네트워크는 민주시민교육 관련 독서, 협의회,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교육기본법 제2조에 `민주시민 자질 함양`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왜 대한민국의 교육은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시키지 못했는가? 비판적 사고력을 가진 시민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교육은 무엇인가?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2019년 8월 5일 새벽 6시, 과거사 청산 뿐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는 독일을 향해 날아갔다.
8박 9일 동안 유대인 추모지, 훔벨트 대학, 부헨발트 수용소 등 독일인들이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기억하는 방식을 배우고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하여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았다.
또한 민주시민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교육의 현장으로 피히텐 고등학교, 함부르크 주 정치교육원, 하이델베르크 연방정치교육원 분원을 찾았다. 독일 마인츠 대학의 케르스틴 폴 교수와 토론회에서는 한국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성을 찾게 되었다. 폴 교수에 따르면 독일의 정치교육은 정치체제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사회체제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일상에서의 민주주의 세 가지 영역을 정치교육과 민주주의교육으로 구분하여 균형을 맞춰 교육하고 있다고 하였다.
반면 한국의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교육과 정치교육을 구분 없이 혼용하여 쓰고 있으며, 학생 참여, 협력, 봉사등 가치 교육에 치중하여 정치교육에서 비판능력, 체제・제도에 대한 이해, 분석능력이 소략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민주시민교육은 정치교육을 포함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며 비판능력과 문제해결력 함양을 위해서는 정치교육과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연수를 가기 전, 독일의 정치 교육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했다. 일 년 간의 네트워크 모임, 5번의 독일 연수 사전 모임을 통해 우리가 그리고 내가 보고 와야 할 것은 독일 민주시민교육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정치교육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수 기간 내내 독일과 한국은 역사적 배경이나, 삶의 양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방식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주정치교육원 분원 슈테판 아트만은 세 가지 정도의 주의할 점을 조언해 주었다. 첫째, 인적구성원의 균형, 둘째, 확고한 목표와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하는 것, 셋째, 거부감 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친근감 있게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설립한다면 교육 현장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아트만씨의 조언을 바탕으로 어쩌면 제일 먼저 17개 시・도 교육청 중 울산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육 관련 기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기도 하였다. 민주시민교육은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직면하고 조정, 극복 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평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한 교육이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수업에 민주시민교육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내용을 통해 배우고 다양한 갈등 상황을 분석적으로 비판하고 조정의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계사 중심의 동아시아사 수업에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가 간의 갈등 상황(특히 한-일관계)을 분석적으로 비판해보고 해결방안이나 학생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서로 논의해 본다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과 평화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