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파도 약도 안 먹고, 물도 가려먹어, 내가 마시는 것은 네가 마시는 것이거든….” 모 정수기 회사 광고 카피처럼 임신한 여성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약물복용이다.
특히 계획 임신이 아니라면 무심결에 먹은 술 한 모금, 두통약 한 알도 걱정이 된다. 상당수 여성들은 무심코 먹은 감기약 때문에 기형아를 출산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낙태를 고려하기도 한다.
관동의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한정렬 교수는 “신혼여행을 위해 말라리야 예방약을 먹었다고 상담하는 이들 중 30%가 의사로부터 낙태를 권유받고, 이 중 6%의 임신부가 실제로 낙태 시술을 받았다”며 “낙태를 선택한 경우 대부분이 실제로 태아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어 의사로서 더욱 안타깝다”고 말한다.
실제로 약이 원인으로 기형이 된 경우는 1%. 신생아의 약 3%가 선천성 이상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 중 65%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형이며, 유전적인 원인이 4%, 모체의 기형에 의한 것이 7%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임신 중 약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편견을 갖게 된 원인으로 우리나라에서 태아의 기형 발생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미국 FDA의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FDA의 기준은 임신부가 병에 걸렸을 때 약을 먹은 경우를 위한 분류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 게다가 이미 연구를 통해 태아에게 안전하다고 인정받은 약품이 FDA에서는 여전히 위험한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따라서 FDA에서 태아에게 해로운 약물로 꼽았더라도 실제로는 태아에게 기형을 일으킬 위험이 거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많은 임신부들의 염려와는 달리 감기약이나 피임약, 항우울제, 가슴 X선이나 CT촬영 등을 이용한 신체검사 등은 대부분은 해가 없다고 전문의들은 설명한다. 또한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나 피부에 바르는 연고 등은 그보다 훨씬 안전하다.
이에 한 교수는 “기형아를 출산하게 한다고 규정한 약품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간질치료제인 ‘페니토인’, 고혈압치료제인 ‘레니텍’, 항생제인 ‘카나마이신’, 먹는 여드름 치료제인 ‘로아큐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임신 중 되도록 약물이나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다. 임신인 줄 모르고 실수로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라도 그릇된 상식으로 성급하게 낙태부터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교수는 “태아에게 기형을 초래할 수 있는 지 여부는 임신 어느 시기에 무슨 약을 먹었느냐 파악하고 진찰해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불안감에 쫓겨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보다 산부인과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하고 그래도 불안하면 임신 중기에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아 기형여부를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임신 중에 병이 났을 땐 어디까지 치료를 받아야 할까.
우선 지병이 있는 산모는 임신을 했더라도 치료제를 계속 복용해야 한다. 예컨대 당뇨병이 있는 산모가 약으로 혈당조절을 제대로 안할 경우 기형아를 출산할 위험성이 있다.
임신으로 인해 생긴 당뇨병 역시 혈당조절을 해야 한다. 거대아나 폐가 미성숙 된 아이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
간질환자도 임신 중 계속해서 약을 복용해야 한다. 간질 약 중 일부는 태아이상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임신 중 간질 약을 먹지 않아 생기는 태아손상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