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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대중·노무현 정부 복지정책 통, 조재희 전 비서관 "現 한미 FTA, 재앙 야기할 것" "비정규직 4대 보험, 국가가 제공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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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통신=여용준 기자)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해로 한국 정치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한 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두 전쟁 가운데 1차전으로 오는 4월 치러지는 총선에서 여당과 야당은 각자 저마다의 칼날을 세우며 전쟁에 준비하고 있다.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관계를 내세우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고 반대로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야권 주요인사와의 관계를 어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 송파병에 예비후보로 출마한 조재희 전 청와대 정책비서관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 이전 10년여 동안 청와대 정책비서관으로 지내며 복지와 경제분야에서 대통령에게 많은 자문을 한 인물이다.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 이후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복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조재희 전 비서관으로부터 현재의 복지·경제에 관한 평가와 앞으로 이에 대한 개선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들어봤다.
- 지난해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로 한-미 FTA통과를 들 수 있다. 복지와 경제분야 전문가로써 FTA의 영향과 향후 문제, 그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해달라. "협상의 내용과 상황의 변화로 총량적인 이익을 볼 수 없는 조건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에 의한 한미FTA는 재개정돼야 한다. FTA를 처음 추진했던 참여정부 때와 달리, 협상의 내용은 그때보다 많이 후퇴해 변질됐으며 미국의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있는 만큼 FTA를 통해 선진금융기법 등 당시 기대했던 효과를 얻을 수 없도록 상황 역시 변화했다 후속조치로서의 제도 정비 가운데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 시점에서는 협상의 발효 이후 후속조치 가운데 중소기업, 농업 등 사회적으로 약한 계층이나 부문의 피해가 매우 클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사회현상에 대해 정부, 연구기관, 정치세력 등의 준비가 매우 부족하여 감당할 능력이 부족. 쇠고기 협상 이후 우리 축산농가의 피해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결과 재앙 수준의 소값파동이 야기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반드시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의 단일후보인 박원순 시장이 압도적인 서울시민 여러분의 지지로 서울시장에 당선된지 석 달 가까이 되었다. 전임 시장의 임기도중이라 업무인수인계 등으로 매우 바쁜 가운데에도, 온라인 취임식을 필두로 선거기간에 서울 시민들께 약속했던 시민이 중심되는 시정을 차분하게 추진해 가고 있다. 특히 취임 직후 어려운 서민들의 월동대책을 챙기고 삶의 현장 곳곳을 살피는 한편, 서울시의 비정규직 28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추진 등은 복지, 노동, 교육 등 서울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분야들을 모두 꼼꼼하게 챙겨, 이전의 시멘트 시정, 난개발 시정이 아니라, 복지 시민권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서울 발전의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경력사항에 있듯이 나는 1990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의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대학강사는 대표적인 비정규직이다. 또한 노동복지를 대학원에서 전공하였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대한 제 관심이 큰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규직 800만, 비정규직 800만이라는 지금의 현실에서 비정규직의 처우의 문제는 현행법이 만들어놓은 차별이기 때문에 법개정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정책대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4대 보험을 국가가 제공, 직종별 노조와 산별노조를 통한 노동권 등 보장, 비정규직 계약을 정규직과 차별없이 자동으로 강제화, 교육훈련을 강화해서 인적자원 개발 등이 실시되어야 한다"
- 에티오피아로 봉사활동을 종종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달라. "김대중 대통령님의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산하 삶의질향상기획단의 기조실장을 맡은 1999년에 내 나이가 딱 마흔살이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님의 참여정부에서 국정과제비서관으로 국정과제의 기획과 추진을 총괄하고, 통합민주당의 정책비전위원장으로서 일한 때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공공정책분야에서 일을 했다. 후반기로 갈수록 오랫동안 제도 내에서 일을 하면서 구도화된 사유체계를 갖고 사회의 문제점을 체계를 찾아서 정책화하려는 습관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면서 회의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근 4년간은 ‘현장주의’를 택했다. 도시의 봉제공장으로, 비정규직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울산으로, 성남 수진리 새벽 일용노동시장으로 등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의 한숨과 체념어린 삶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봉사활동을 간 것도 이러한 현장주의의 연장이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김의숙 교수님이 이끄시는 팀과 함께, 에티오피아의 오지에 가서 한달 동안 온몸으로 노동자들에게 집을 짓는 건축기술을 가르쳐주고 함께 집을 지었다. 에피소드로는 한달 안에 집을 완성하기 위해 아침에 바쁘게 나오면서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 온 얼굴이 화상으로 타버린 일이 있었는데, 얼굴이 까만 암만이라는 청년이 자신의 선크림을 내밀었다. ‘아, 흑인들도 선크림을 바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깜짝 놀랐었다. 이 일은 두고두고 편견과 무지는 우리의 일상 어디에나 있다는 깨달음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걸어서 평화 만들기"를 하면서 선배인 신계륜 전의원과 함께 전국을 걸었다. 한라산에서 시작해 완도, 해남, 강진, 영암, 영산포, 나주, 광주, 함평으로 군산, 천안, 오산으로 걸었다. 걷는 도중에 내가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봉하마을로 달려가 49제까지 지켰다. 그 이후 부산에서 김해 봉하 마을까지 걸었고, 울릉도 일주도로도 걸어서 다녔다. 하동 노량에서 남해, 삼천포로 통영으로도 걸었다. 삼척에서 동해, 강릉, 속초까지 평화의 깃발을 꽂고 걸었다. 인제 원통에서 양구해안면에 있는 펀치볼까지도 걷는 길은 계속되었다. 순천 갈대밭길, 여수 오동도, 고흥 녹동 길도 걸으면서 느꼈다. 백두산도 이러한 생각으로 갔다"
"우리 사회는 IMF 경제위기이후 근대화 과정에서의 고성장-거점중심 불균형 발전전략의 결과 초래된 계층간·부문간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정치세력들마다 서민생활안정과 복지정책의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 30대 후반에 가족들과 함께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박사후연구원으로 갈 기회가 있었다. 불과 월100만원 정도 지원금을 받고 했던 유학생활이었지만 유럽에서 가장 복지 수준이 낮다는 영국조차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복지경험이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 청와대 삶의질향상기획단 시절 영국과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여러 날 동안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내가 직접 경험한 병원이나 장애인 복지는 필요한 사람에게 꼭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최근 몇 년간 유럽 경제가 휘청일 정도의 위기를 겪으면서 복지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그 나라의 예산이나 경제여건 등은 복지정책을 펼칠 수 있는 범위를 정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작년에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을 가지고 엄청난 논쟁과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의 복지정책의 방향과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소위 복지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 복지가 가장 크게 변해야 할 점은 세부적인 정책보다도 복지가 기본적인 인권인자 시민권이라는 철학을 정립하는 일이다. 그 시작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의 하나인 생산적 복지라고 생각된다. 복지에 대한 기본철학을 정립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과 논쟁이 상황론으로 빠지거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을 지양하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되게 하는 근본적 출발점이다. 얼마전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차이를 느끼느냐고 묻자 ‘영국에서는 적어도 지금처럼 비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여기에 돌아오니 내 자신이 사회에서 분리되어 떠다니는 부유물이 된 듯하다’고 했다. 복지는 단순한 시혜나 은전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비록 시장경쟁에서 뒤졌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일원인 동시에 시민의 일원으로서 생존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 정치적 소견으로 정당정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고 이명박 정권을 지나면서 소득불평등은 심화되고 특히, 비정규직, 실업자, 서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은 거의 파탄수준이다. 세대갈등, 노사갈등,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갈등 등 중층적인 사회갈등이 첨예화되고 골이 깊어지는데, 정치세력들은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일부로서, 정치와의 매개로서, 이러한 사회 갈등을 정치의제에 반영하여 조정하는 역할을 정당정치가 해내야 한다. 사회통합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정당정치의 이러한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 유일한 기획단이 있었는데 그것이 삶의질향상기획단이다. 복지노동수석이 단장이고 저는 기획단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이었다. 당시 김유배 복지노동수석은 보건사회연구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작은방 하나를 마련하고 컴퓨터 한 대를 주었다. 그리고 한달후 기획단은 청와대에 설치되었고 이후 김대중대통령의 생산적 복지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4대보험, 특히 의약분업과 의보통합을 추진하여 국민건강보험체제를 정비하였으며 실업대책,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추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삶의질향상기획단에서 일하면서 치아가 여러 군데 내려앉을 정도로 일했다. 이 시기 기억에 남는 일은 소득분배 구조개선 3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부유세 등을 검토하였고 논란 끝에 우선 주식양도차익과세를 하자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단장이 발표한 기조발제에 이 부분을 넣었는데 주가가 일시적으로 50포인트 빠지면서 경제부처의 반격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 일로 인해 소득분배구조개선 아젠다는 초안이 만들어지고 기조실장인 나는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여 진념, 이헌재 장관 등 경제수장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참여정부 때의 에피소드중 하나. 노동연구원에서 파견나온 이장원 박사가 소개한 EITC(earned income tax credit)제도가 참여정부 때 시행될 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보고를 듣더니 즉석에서 ‘그렇게 어려운 말로 하지 말고 근로장려 세제 같은 쉬운 말로 표현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수혜를 받는 서민들이 알기 쉬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선택해달라. 내년 총선은 우리사회가 과거로 회귀할 것인가 미래를 향해 진보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중요한 선거다. 우리정치에서 그 동안 구태 정치를 일삼아온 사람들이 내년 총선에서도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이제 송파(병)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과거 사람이 아닌 미래를 위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능력있는 인재를 선택해 송파(병)에서부터 선거혁명을 이룩해달라. 국회는 특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대표라는 점을 몸으로 실현하겠습니다. 지역사무소는 지역주민의 민원을 받고, 해결하는 365일 민원창구를 설치 운영할 것이다. 민원 접수 없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